공감대화 - 존중과 치유로 가는 한 사람, 한 시간의 이야기
정병호 외 지음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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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300여 명과의 만남을 통해 대화를 하고 이를 기록했다는 표제에서 먼저 관심이 갔으나, 여는 글과 목차를 읽은 후, 내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 책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전문가가 만난 여러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하는 내용인 줄 알았던 것이다.

여기서의 '공감대화’는 이야기의 내용이 아니라 어떤 이야기도 들어주는 사람들과의 모임, 한 시간 남짓이지만 한 개인이 살아온 다양한 역사와 그 스펙트럼을 관통하여 각각 단편소설과 같은 울림을 주는 의미있는 '도구'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실험이 있었다.' 남북한 주민의 삶이야기'프로그램을 이주민, 남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2012년부터 한양대학교 글로벌다문화연구원을 중심으로 시작해, 그밖에 중국 조선족, 러시아 사할린동포, 중앙아시아 고려인, 재일동포, 재미동포를 비롯한 다양한 배경의 남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한민족다문화 삶의 역사 이야기’와 ‘경계를 넘는 삶이야기’로 확장되었다.10년 간 50차례의 모임이 아홉살 어린이부터 아흔 살 노인까지 모두 약 300명이 참가했고 이를 1부 평등한 시간, 평등한 공간:아이들의 해방 체험 2부 개인으로 이야기하기:국적과 이념, 가해자와 피해자의 벽을 넘어 3부 공감의 연결 고리를 찾아서: 여성, 이주, 가족 마지막으로 4부 공감대화란 무엇인가를 통해 집대성하고 정리한 여러 저자들이 이 한 권으로 묶은 것이라고 한다.


한국의 다문화 아이들이 모였다.한국에서 다문화 학생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질문은 이렇다.

- 차별받은 경험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왜 그렇게 했나? 그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 나는 어떻게 반응했나?

- 앞으로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대응하겠나?[이야기를 듣고 나서]나라면 이렇게 느꼈겠다, 나라면 이렇게 대응했겠다.

- 사회,학교,친구가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

한국에서 대학과 연구소에서 일하고 지금은 영국 이주 후 런던한겨레학교 교장으로 어린이들이 '코리언'으로 잘 성장하도록 돕는 교육자인 이향규 저자는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의 요청으로 청소년을 위한 다문화 감수성 교육 프로그램 개발 연구의 일환으로 1:1 인터뷰 대신 또래 아이들이 둘러앉아 각자 겪은 차별 경험을 서로 나누게 하고 이야기 방식을 취함으로써 더 풍부한 사례 수집을 하고 이야기 캠프 참가 학생들이 신뢰와 유대감을 갖도록 해 수고 사례비나 기념품 지급 형식이 아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보상이 되도록 하는 방법을 택했다고 한다.


진행 과정은 연구원 학부생 조교 두 명이 초등반을 맡고, 저자는 과제의 연구책임자로서 중등반을 맡았다. 세 사람 모두 글로벌 브릿지 프로젝트(이전 프로젝트로 유대감과 친밀감이 있었던듯)를 담당하고 있어서 참가 학생들과의 충분한 라포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조건이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탈북이주자녀, 부모가 외국인인 자녀, 고려인2세인 아이들은 다양한 형태의 차별을 경험했고, 아무도 곁에 오지 않거나 콕 짚어 뭐가 문제라고 말하기 어려운 은근한 배제, 외국인이라고 놀리는 언어폭력, 밥을 먹을 때 반찬을 가져가거나 아이의 물건을 함부로 망가뜨리는 직접적인 공격까지 당했고 이에 대응하지 않은 아이 혹은 치고받고 싸운 적이 있는 아이까지 자신의 경험을 나누었다. 속상한 일에 공감을 표하고 그 일을 겪는 아이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등 공감의 언어는 아이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서로 위로하며 연대 의식을 갖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초등반 아이들과 달리 중등반은 진행자가 이야기의 주제만 던져줄 뿐 학생들이 자기 경험을 제법 길고 상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독도는 누구 땅이라고 생각하냐? 위안부를 어떻게 생각하냐? 같은 질문으로 누구 편인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심리에 맞서 부모 중 하나가 일본인인 아이들은 자신이 갑자기 가해자 입장에 선 것 같이 당황했다.그리고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의문을 가진 것 중 하나는 '다문화'라는 명칭 문제였는데,

말이 문제예요. 왜 똑같은 사람인데 거기에 명칭을 붙여서 얘기하냐고요. ...그냥 사람마다 개인으로 이렇게 판단하면 될 텐데 꼭 그렇게 다문화라는 명칭을 써서 다른 사람 차별 대우하는 것처럼 하는 행동은 별로라고 생각해요. ...소외되는 느낌이 들고 솔직히 다문화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가 않고,

다문화라는 특별한 명칭이 있으니까 더 놀림을 받는 것 같아요.

다수자가 소수자를 집단으로 부름으로써 차별을 알게 모르게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이다. 지금껏 이 아이들은 그동안 속상했던 마음이 이렇게 모여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풀리는 듯하다고 했다. 다문화의 좋은 점, 나쁜 점을 짚어보고 서로 답답했던 것을 털어놓고 속시원히 말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이것이 온전히 이야기의 힘 덕분이라고 말한다.

다문화 중 고려인, 주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국가에 거주하며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민족 동포들에 대한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 좋았다. 한국에 취업할 수 있는 비자를 이들 대상으로 확대하는 정책이 도입된 2007년 이후 그들의 한국 이주는 갈 수록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중도입국 자녀들은 한국어 미숙으로 학교 적응이 어렵고 같은 언어권 친구들하고만 어울리며 학교를 그만두는 사례가 늘고 있어 한국살이에 우려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 한국어 수업 학생들을 가르쳤던 저자가 삶이야기 프로그램에 6명의 청소년을 섭외했고, 2018년에 진행한 내용은 이렇다.

1박2일이 아닌 1일로 바꾸고 놀이전문가가 진행하는 몸으로 놀기와 마음 풀기 시간으로 시작해 라이프사이클 그리기 인생에서 경험한 사건, 전환점이 된 시기 등을 그리며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하고 자신의 라이프사이클을 다른 참가자들과 나누게 했다. 삶이야기는 성인이 아니기에 한 시간이 아닌 15분간 이야기하고 5분 동안 서로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질의응답 시간으로 구성했다. 식사, 간식, 휴식 시간을 신경써서 배정하고 러시아식당을 예약해 본국에서 먹었던 맛과 지금의 맛을 비교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했다.

'헤어짐과 이산' 이주를 받아들이는 감정은 설레고 기분 좋았다는 것보다 본의 아니게 한국으로 오면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과 관련이 깊어보였다. 부모의 부재, 엄마의 부재를 경험하고 재결합한 청소녀는 정서적 유대를 잃었을 경우 재결합 이후 가족관계를 어떻게 회복해갸야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한다.


이주 청소년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걱정과 염려로 가득한 현실에 '혼란'이라는 딱지를 쉽게 붙이거나, 심리치료, 미술치료를 받아야 하는 치료 대상으로 이들을 보는 것을 경계하고 단지, 우리 곁에 단지 끊임없이 흔들리고 어울리는 존재로 인정하고 받아들여 준다면 이런 삶이야기 등의 전환점을 통해 그들이 소통할 장을 마련해주는 일이 어른이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국, 탈북, 다문화가 어떻게 어울릴지에 관한 의미있는 실험 캠프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타인을 향한 고정관념이 어떠한지 탈북 학생, 다문화 학생 그리고 서울 학생 총8명이 모여 1박2일 동안 사전 활동- '사람책 도서관' '내이야기 나누기' 2040년 상상하기 그리고 정리활동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위로하며 '다름'을 뛰어넘어 미래 통일사회에서의 자신의 삶을 상상하는 데에 까지 이르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대화는 어떻게 화해의 도구가 되는가,

부분에서 문화인류학자 조일동은 '한민족다문화 삶의 역사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한반도 거주민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 삶을 보낸 한국인 이주민들의 삶이야기에 공감대화를 실었다.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한국인 디아스포라) 최근 한민족 공동체로서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해외 한인들을 포함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의 중요성도 부각되어 그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여섯 명의 참가자가 모였고, 구체적으로 그들은 10월 항쟁 희생자의 딸과 아들, 중국 출신 조선족 여성, 사할린 출신 영주귀국자 남성, 탈북민 여성, 중앙아시아 출신 고려인 남성들이다.빨갱이로 낙인찍힌 10월 항쟁 유족들은 남한에서 연좌제 탓에 평생 제약을 받고 터부시되어 그 상처를 안고 살았으며, 반공주의를 가치관 삼아 살아온 전직 국군 그리고 북한에서 탈주한 전직 인민군들은 모두 이념 대립과 그 대립이 자아낸 폭력 역사를 경험했고, 서로의 다른 입장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상대의 고통을 듣고, 묻고 더 자세히 알아가며 상대방을 그저 고통을 감내한 개인으로 바라보게 했다.첫날 자기소개의 팽팽했던 긴장감은 어느새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며 의례적인 모습을 띠고 명확히 규정된 시간 동안만 아무런 제재 없이 이야기하며 이 규칙이 공고하고 자신감을 되찾았다. 반공투사도 북한군 출신 탈북민 그리고 중국 출신 조선족도 이념 대립의 희생자였으나 참가자로서 그들은 한국 술과 북한 술 중국 술을 비교하는 취향을 나누고 각자가 확신했던 자신의 정체성을 뛰어넘어 눈앞에 있는 서로가 너무도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 평등한 대화를 나누는 시공간에서 변화하고 헤어질 때는 악수를 나누었다고 한다.

공감은 동감아니 동정, 연민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판단력을 유지하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인지적 능력이지 정서적 영역이 아니라고 한다.인간이 동물과 다른 큰 집단을 만들고 협력한 덕분에 지구에서 가장 번성할 수 있었고 인간에게 공감 능력은 인류의 생존 열쇠다. 공감 대화의 이론과 방법론에서 저자 정병호는 공감의 능력에 대해 자세히 소개한다.

인지적으로 알고 정서적으로 느끼며 배려하는 마음의 통합과정으로 사람 간 거리를 뛰어넘게 하는 일종의 정신적 초능력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자 자밀 자키

공감 능력 계발은 최근 교육 분야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며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평화교육 프로그램으로 협동심, 배우려는 욕구, 사고 능력이 향상되어 학업성취도가 높은 성과를 내었다고 한다.공감대화 프로그램 즉 이 책에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자 유용한 도구는 문화 차이가 크고 정치적 입장이 달라 서로에 대한 편견이 강한 집단 구성원들이 다른 문화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문화상대주의적 대화 에 대한 필요성을 가지고 집단 대화 프로그램을 꾸준히 시행하는 것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비록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국어 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을 향후 지도하게 되면 여기서 수행한 공감대화 프로그램에 한번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던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이 리뷰는 푸른숲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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