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치미 떼듯 생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고정순 지음 / 길벗어린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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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에세이, 소설, 만화 등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작가 고정순 신작 에세이. 고정순 작가는 정진호 작가라는 모종의 인물과 일 년 동안 편지를 주고 받으며 이 책을 펴냈다고, 책 서두에 밝혔으니 아마도 생을 사랑하는 당신은 정 작가일 수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독자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둘이 쓰는 에세이' 제안받았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는 그녀는 불편한 몸으로 고통에 신음하며 홀로 써가는 그녀만의 글 여정에 기꺼이 기쁘고 설레고...

우리가 눈을 맞추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한 시절을 함께했기에 지니는 소망. 사랑한 존재를 기억하는 하나의 방식이 죽음 뒤에 별이 될 거라는 믿음. 친구로 여기는 정 작가와 엮는 달, 사랑, 자유, 커피, 고양이 등등.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가 나열한 삶의 단상의 주제들은 정진호 작가 에세이의 <꿈의 근육>에서 같은 순서지만 각자 다른 의미들로 채워진다.


전자 붓과 팔레트를 장만한 고 작가는 날마다 영상을 보며 기계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고, 그녀만의 우울은 너무나 일상과 가까워서 산책할 때 가끔 동네 산책을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무덤 앞으로 간다.

남의 무덤 앞에서 내 우울을 들여다봐요.

끝이 주는 위안이 있어요.

새침한 시작/ 시작 중에서.

라고 편지글에 썼다. 부끄럽고도 부끄러운 고백, 어른들에게 분노하던 어린아이가 이제 '말 못할 사정'이 있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어 자기가 옳다고 조금의 양보도 없이 목소리를 높여 9살 친구와 말다툼을 하고 있다고...

사실 나는 좋은 어른이 될 줄 알았어요.

아이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섬세한 어른이 되어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내겠다고~~~

이제 그런 다짐을 하는 어린아이는 없고 시시한 어른만 남았다고 고백한다. 권위적인 말투로 한 수 가르치겠다고 고함을 지르는 자신을 문득 발견하고 돌아보는 작가. 그녀는 거짓과 위선을 위로와 위안으로 포장하고 있지는 않을까 독자들에게 고백하고 싶다고 말한다. 같은 작가로서 정 작가에게 말하며 그런 마음이 매번 자신을 돌아보는 태도로 독자들에게 위로가 되도록...


가슴 뛰는 일 없이, 가슴 졸이는 일만 생길까 봐 걱정하는 중년이 되고 보니 계절마다 과하게 의미 부여해요. 봄은 봄이라, 여름은 여름이라, 가을은 또 가을이니까. 겨울도 역시. 사계절이 각자의 빛과 색으로 나에게 오겠죠.


슬리퍼를 끌고 편의점 맥주 한 캔과 휴대폰의 음악을 들으며 소소한 일상으로 여름을 채우겠다고, 의미를 부여하려면 바로 흔하디흔한 생활 속에서도 가능한 그녀의 작가적 감수성이 나로 하여금 피식~ 웃음짓게 만들었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파란 풍선, 그 풍선을 보고 시선과 마음을 뺏긴 아이는 엄마를 지체하게 만들어 아이 엄마는 잡아 둔 택시를 타기 위해 옥신각신 실랑이 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두 사람에게 조율이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작가 자신에게도 그러한 사람이 있어 독자와 자신 사이 설득과 이해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편집자들이 있다고 말한다. 복고풍의 락발라드 연주를 꿈꾸는 '문방구 밴드'의 리더로 실패한 것은 다른 멤버들의 생각은 아랑곳없어한, 조율하지 못했던 자신 때문이라는 오묘한 깨달음이, 합주나 합창 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예술은 불특정 다수가 만든 공동 작품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 작가들이 하는 노력은 독자들에게 한 줄의 안부 인사를 위한 노력, 이 모든 편지들도 그 멋진 인사와 같다고 한다.


나는 요즘 시간을 쪼개 소설을 써. 사실은 사람은 시간에 아무런 흠집도 낼 수 없잖아. ...새롭게 시작할 무엇이 있어 좋다가도 금세 빚쟁이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우울감이 몰려와....

작업을 시작하는 순간, 모든 세간살이가 나를 향해 손짓해...



집중력은 까치발 신세고 비싼 커피값을 내고 카페에서 몇 줄 못쓰는 작가지만 주어진 시간, 허락한다면 독자들을 위한 인사와 마음을 모아 울고 웃을 수 있는 그들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사실 서평을 쓰기로 하고 책을 읽고 틈틈이 집안일을 하면서 항상 느꼈던 바로 그것, 좋다가도 스스로 대견하다가도...시간에 쫓기듯 이 글을 써야하는 나도 작가와 너무나 공감하는 것이다.

그녀가 고양이나 비둘기 같은 일상에서 애정을 쏟거나 신경을 썼던 생명들에게 그리고 혈연은 아니지만 가족이 되어 준 친구들과 그림책 동료들과 같은 과분한 인연들에게 말한다. 서로 이름을 부르고 가족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그림책에 담고 싶고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이, 대수롭지 않은 일상을 공유하는 이들이 그냥 모여서 가족이 되는거라 믿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작가만큼 세상에서 대가족을 가진 직업이 있을까 싶다.' 시치미를 떼듯 생을 사랑하는 당신'이 바로 독자들 그리고 작가자신과 함께 해준 동료작가들에게 부치는 헌사같은 것이 아닐까?

이 리뷰는 길벗어린이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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