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녕, 엄마
김하인 지음 / 쌤앤파커스 / 2022년 4월
평점 :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게 되면서 내가 어렸을 적부터 본능적으로 불렀던 그 이름이 얼마나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드는지 새삼 느끼는 일이 많아졌다. 특히, 요즘은 금쪽같은 내새끼라는 종편 육아프로그램을 보면서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양육 태도가 자신들이 어린 시절 겪었던 경험과 감정들로 이루어지고, 그들안의 '어린이' 들을 보듬어 주어야 비로소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아이들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지켜보며 어찌나 눈시울이 붉어지는지 빨개진 눈으로 시청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참 많이 공감하고 있구나하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자식들보다는 조금 더 위, 전쟁을 겪고 나라가 재건되는 동안 근현대 산업사회에서 부모가 자식들을 위해 어떻게 헌신하였는가하는 대단한 스토리는 아니지만, 경북 함창이라는 작은 도시의 읍,면 단위에서 자란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 그 속에 , 김하인 작가의 엄마는 몸뻬를 입고 농사꾼<(농투사니. 농부를 낮춰부르는)으로 다섯형제의 씩씩한 여인네로 그려진다. 화자인 작가는 시골 고향 집에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러 온 막내 아들, 물건들과 엄마의 기억을 하나씩 소환하면 잘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현재는 상주시 함창읍, 그는 장터 가의 함석지붕 집에서 나고 자랐는데...내 부모의 고향이 상주시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그가 말하는 슬레이트 지붕 집과 창고 부엌 특히 마당의 펌프가를 이야기할 때는 자연스럽게 어릴 적 왕래하던 조부모의 본가 혹은 이모와 외삼촌댁 모습이 단편적으로 떠올랐다.
예전 그 시절에 아버지들이 흔히, 아이들에게 술 심부름을 시키고 엄마들은 동네 주막이니 맥줏집이니 하는 곳으로 아이들을 보내 아버지들을 데려오거나 했다는 걸 드라마에서 보긴 했다. 작가 또한 귀염둥이 막내아들로 천성적 귀여움을 장착하고 아버지가 술을 푸는 곳들로 찾아가곤 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아버지는 타고난 가난을 엄마와 나누었지만 이 젊은 부부는 집을 넓혀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5형제를 먹이고 입히는 데 최선을 다하셨고 '피와 살을 갈아넣어' 키웠다고 할 만한 일들 고생을 마다 않는다고 나온다.
아들들은 아버지의 체면을 지키려 했던 생업과 달리 엄마의 끊임없는 희생, 독학으로 잠사 기술자들처럼 펄펄 끓는 대야에 손을 담그는 희생까지 마다했다는 장면은 특히 눈물이 나면서도 웃음이 지어졌다. 당시 대구에서 모셔오는 아주머니들이 목화솜으로 원단을 짜게 해 그걸 팔아 집안 생계유지를 하는데 그녀의 연습과정과 장면 설명이 생생하고도 재치있게 표현되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형들과 달리 엄마 젖을 못먹고 말라버린 채워지지 않는 젖에 대한 막내의 비애가 막내라는 특별한 위치에서도 그를 사무치게 엄마를 찾는 이유 중에 하나였을까?
아버지는 낳으시고 어머니는 길렀다는 노랫말의 이유를 들은 적이 있는데, 남자들은 아이를 만드는 것에는 관심이 많지만 아이들은 '먹어야' 자란다 기르신다는 것은 곧 먹거리를 책임진다는 말이다. 지금과 같은 편리한 시대에도 2-3일에 한번씩 장을 보고 밥상도 여러번 차려보지만 각기 다른 아이들의 식성을 맞추는 것은 쉽지가 않다. 특히나 가난한 시절 가난한 시골에서는 몇배의 고민과 노력이 들었으리라. 그래도 밭을 가꾸고 가축을 건사했던 시골은 기발한 먹거리를 많이 갖고 있었던 듯하다. 특히 경상도에서 부르는 씨래기(시래기), 갱시기, 정구지(부추) 들의 명칭은 지금도 우리 엄마와 나 자신도 공유하고 있는 먹거리라 반가웠다.
시골에서 먹던 온갖 남은 반찬을 김치와 푹 끓인 갱시기죽을 어릴 땐 죽어도 안먹었단다. 작가가 중년들과의 동창회에서 모든 음식 세상의 산해진미보다 이를 최고로 친다는 말을 인용한 것도 인상깊었던 부분이다.
한 처녀가 약간 수줍은 미소를 띤 채 만개한 수국 나무 앞에서 한 손에 양산을 들 고 서 있었다. 탐스런 검은 긴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내렸으며 위에는 꽃무늬가 들어간 은색 저고리에 무릎 아래까지 덮이는 깜장 치마를 입었다. ...흑백사진의 열일곱 열여덟 무렵의 엄마는 예뻤다.
늦둥이 막내로 태어나 자라 40대 후반, 50대 초반의 엄마 모습의 언제나 목이 늘어난 헐렁한 셔츠에 몸빼를 입고 수건을 머리에 두른, 일하시는 엄마만 보았던 작가 자신은 한 번도 엄마가 예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대학입시에 실패해 고향에 돌아와 실의에 빠져있던 그에게 엄마의 또래 모습은 눈부셨고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와, 젊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음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누구나 부모의 자식이었고, 이제는 세월이 흘러 부모로 그 입장을 달리 하지만, 기억해야할 것들이 과거와 현재 속에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야말로 뱃속 태아들이 느끼는 본능적인 안정감으로 표현 될 수 있는 '품안'의 자식이 온전히 사랑을 받고 온전히 엄마를 떠나보내는 모습이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건강하지 않은 부모자녀 관계, 비틀어진 자식을 향한 사랑 등으로 그려지는 수많은 이야기들과 서로를 살해하고 은폐하는 등의 사회 범죄를 다루는 뉴스들이 넘쳐나는 와중에 만난 이 책은 실로 오랜만에 가슴이 아프지만 따뜻해져오는 이야기로 다가왔다.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그리고 부부의 날까지 있어 가족들이 서로의 입장을 한번쯤 되새겨보며 책을 읽기에 좋은 기회일 것이다.
이 리뷰는 쌤앤파커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