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백민석, 그는 인문교양 매거진 《월간 유레카》에 연재되었던 〈백민석의 물음표 미학〉 원고를 모은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 을 이번에 출간하셨고 소설가인 그가 현대 사회에 던지는 철학적 질문들로 목차를 구성하였다___________




01 자네는 집을 지으려 했던 것이 아닌가?

02 아빠, 내 이름은 알아?

03 언니, 집 없어요?

04 우리는 왜 매끄러움을 아름답다고 느끼는가?

05 우린 그냥 벌레야, 모르겠니?

06 당신들, 정체가 뭐야?

07 도저히 사람 살 데가 아니더군, 이해하겠나?

08 왜 사람들은 최악의 상황은 끝났다고 장담하는 거죠?

09 당신은 계속 당신인 거야?

10 선생님은 자기가 싫어진 적이 있으세요?

11 많은 재즈 거장들이 요절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12 우리 삶을 충분히 표현하다 보면 나오지 않겠어요?

13 백 년 후엔 이걸 볼 사람도 없을 텐데 왜 모아?

14 함께 연주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지?

15 활동 증명을 통해 예술인으로 인정, 등록되었는가?

16 한국인들이 이 전쟁을 원했단 말인가?

17 어째서 흐르는 피는 남들에게 충격을 줄까?

18 한심한 외다리 꼴로 춤을 왜 추냐고?

19 생각 근심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의 말

사실, 질문들을 보면 어느 정도 책에 대한 감(?)이 오는데 전혀 감이 안 온다 ㅠㅠ 즉시 내용으로 다이빙...

...시작부터 단순하지 않은 작품과 심상치 않은 작품의 제목. 인도네시아 작가 F.X. 하르소노의 작품<만약 이 크래커가 진짜 총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은 총 모양으로 만든 핑크색 크래커를 바닥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적당한 거리에 책상과 의자를 가져다 놓은 설치미술이다. 관람객이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득고, 노트에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보고 그 결과를 적기를 주문하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총을 들고 밖으로 나가 싸울 것인가, 아니면 그냥 무시하고 내버려둘 것인가. 총을 들겠다는 결정을 하자마자 우리는 또 '총이라면'이라는 가정을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게 된다고 한다. 밀가루 음식이라는 총의 물성 때문이다. 관람객들은 머릿속의 사물 개념과 실제하는 사물의 재료에서 괴리를 느낄 것이고 '소비'하면서 그 의미를 '사유'하게 되고 사유의 과정을 통해 '윤리적 판단'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예술은 사유하게 한다. 사유를 촉발하는 힘까지 예술의 일부이다.

p. 018

저자가 이 책의 전반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이 문장에 함축되어 있다고 본다.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악몽의 형식으로 형상화해 온 화가 안창홍을 소개하는 저자는 <이름도 없는...>연작을 소개하며 우리가 둥그런 윤곽에 점 두 개와 선 하나가 그려져 있는 것만 보아도 기계적으로 인간의 얼굴이라고 판단하고 이 얼굴들은 정치적 폭력의 희생자들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작품에 별다른 말을 붙이지 않았기에 우리 현대인들은 다양하게 이를 해석할 수 있는데 고단한 일상을 사는 우리, 개개인의 내면에도 죽은 것 같은 얼굴이 몇쯤 들어 있을 거라고, 종종 이름조차 잃어버린 실존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해석한다. 화가의 그림에서 자연스럽게 저자는 영화<미성년>(2018년, 김윤석 감독) 과 책 <인간증발>(레나 모제, 스테판 르멜,2017년)을 예로 들어, 사회적 관계를 끊고 아프고 괴롭고 수치스러운 이름을 스르로 지워버리는 사회적 자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들이 흔하게 받게 되는 풍선아트의 롱런아이템을 발견해서 반갑게 한~ <풍선 개>(제프쿤스,www.jeffkoons.com) 이 작품은 현대미술의 주요 작품중의 하나이나, 이 '매끄러움'은 아직 상품과 대중문화의 영역이지 주류는 아니라고 한다. 또한 저자는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제독학자 한병철은, 매끄러움은 상품의 미학일 뿐, 긍정적인 즐거운 뿐인 긍정성의 영역이라고 했으며 독일의 철학자 가다머는 '부정성이 예술의 본질적이라고 보았다고 인용'하고 있다. 제프쿤스의 풍선 개는 사실 스테인레스로 만들어져 있고 작품을 만져볼 수 없는 관객들의 눈속임을 통해 흠 하나 없는 표면 아래 매끄러움의 미학에 의해 쫓겨난 육중함, 투박함, 딱딱하고 거침, 비가역성 등의 성질들이 억압되어 잠재되어 있도록 의도한 것. 어쨌거나 '흔한'(대중적) 이미지를 통해 표현했다는 것 자체가 예술로 소통가능한 영역임을 증명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생'을 증명할 수 없음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거나 마찬가지'

영화 <가버나움>에서 삶이 파괴되는 인물들은 모두 난민이며 살기 위해 레바논을 선택했지만 주인공 자인의 가족, 라힐의 가족은 레바논에 살 수도 없고, 떠날 수도 없다. 그들에게 서류 없는 삶을 인정하고 살든지, 창밖으로 뛰어내리든지 둘 중 하나밖에 없는 현실은 가혹하게 그려진다.


우린 그냥 벌레야, 모르겠니?


매력적인 영상과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의 시선에 의해 이 영화는 난민들이 벌레같은 삶을 실제로 산다는 사실을 잊지만 출생 자체가 차별의 대상이고 불법이 되는 가차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윌리엄 포크너의 <윌리엄포크너의 단편소설 中 그날의 저녁놀>에서 흑인은 개인이 아니며 백인에게 개인이라는 독립적 주체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부재하며 인종차별을 합리화하는 더욱 비정한 백인의 노예적 위치의 그들을 인용한다.

난 지옥에서 태어났단다. ...나는 곧 사라져버릴 거야

<윌리엄포크너의 단편소설 中 그날의 저녁놀>

또한 차별을 발생시킨 근원에는 동일자와 타자와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고 두 지위는 인종이나 세습 신분처럼 타고난 것도 계급처럼 후천적으로 주어진 것도 아니다. 작위적으로 그어진 경계에 의해 그때그때, 역사적으로 구조적으로 만들어지고 해체되는 일시적인 지위들이고 인공적인 경계이므로 우리는 의식적인 노력으로 긍정적인 관계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종말의 상상은 예술의 영원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의 세계에서 죽는 건 개인이 아닌 인류이다. 2009년 태어난 청년이 살해 당하고 인류가 더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 뉴스를 지켜보며 비통해하는 것이 영화의 시작이다. 인류의 마지막 한 사람까지 죽었다면, 이후의 예술과 부는 무슨 소용일까 무엇을 위해 살아야할까...주인공 테오는 세계의 걸작 다비드상이 왼쪽 무릎이 사라졌지만 철골로 지탱해 가지고 있으며 바티칸의 피에타 상을 갖고 싶으나 파괴되어 슬퍼하는 그의 형에게 묻는다. 백년 후에 이걸 볼 사람도 없을 텐데 왜 모아? 그러자 형은 난 미래를 생각 안해. 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저자는 인류의 오래된 관념을 끌어낸다. 식물은 사치품이라 제배했으며 인류가 무역을 시작한 것도 흔히 보는 소비재가 아닌 희귀한 장신구를 위한 것이었으며 취향과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들이 예술의 발명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경제적인 부 즉 재산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미적인 물건'이라는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가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에서 시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술의 불멸성은 인류가 사라진 시점에서 여전히 유효한가? 저자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영화의 결말이 인류의 종말을 멈추게한 의지의 승리였다면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기후 붕괴와 그에 따른 기근, 올지도 모르는 대공황으로 불안함은 영화와 현실과의 괴리를 깨닫게만 해 줄 뿐이라는 결론없는 질문만이 남게 한다.


저자는 활동 증명을 통해 15장 예술인으로 인정, 등록되는가? 라는 소제목의 본문에서, 예술은 직업이며 일한 만큼 돈을 받길 바라는 것은 공정한 계약과 정당한 작품료를 요구해야 하는 당당한 일로 여겨져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워크플로우>(2020년) 에서 임가영은 예술가-노동자로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플로우 차트로 정리한 작품을 전시했다.

예술가는 작품을 창작, 생산하는 과정을 통해 이미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다.

나도 증명을 했고 예술인으로 등록됐다.

p197


영화 <핀란드 메탈밴드>는 작품의 완성에 이르는 지난한 우여곡절을 희극적으로 보여준다. 죽은 드러머를 무덤에서 파내고 전쟁을 낼 뻔한 또라이 핀란드 메탈밴드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들은, 시골마을에서 흔한 청년들이 모여 지하연습실에서 한 곡만을 지루하게 연습하다 드디어, 노르웨이의 록 페스티벌로 간다. 주인공 뚜로는 무대 울렁증을 이기지 못해 구토를 하는데 이조차 멋진 쇼맨십으로 열광적 환영을 받는다.

이들이 무대 위에서 부르는 노래는 놀랍게도 숭고하고 고귀하고 원초적인 느낌이 들게 하지만, 그 경지에 이른는 과정은 우연투성이에 세속적이고 거칠며 실망스러울 뿐이다. 저자는 이것이 예술가 대부분이 작품을 완성해 세상에 내놓기까지 거치는 실제 과정일 것이라고 말한다.

행복은 오로지 하나의 창조적인 활동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행복은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자기 손으로 무언가를 창조했을 때 얻어진다.

<더 레슬러> 의 주인공의 마음처럼 흐르는 배경음악의 한 구절이 메세지를 축약해준다.

한심한 외다리 꼴로 춤을 추는 것일지라도, 자유로운 외다리 춤이 내 인생...

완성에 이르는 과정으로서의 삶, 그리고 소수의 사람만이 도달하는 삶의 행복. 행복의 극치에 도달한 이 영화들의 주인공은 운명을 걸고 '극단적인 한계'에 이르는 창작 과정인 삶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작품 <도열하는 기둥>이승조는 1960년대 우리나라 기하추상의 흐름을 여실히 보여준 작가이다. 파이프들은 실제 이미지가 아닌 망막 속을 스쳐 지나갈 뿐인, 눈을 뜨면 사라지는 이미지를 나타낸 것이고 추상회화는 그의 메모처럼 '아무것도 없는'이미지이며 우리는 읽어낼 수 없지만, 작품을 보며 그 작품으로 떠오르는 생각, 즉 사유를 하게 되고 사유의 깊이는 사실상 관람자마다 다르다. 자신과 상대방의 사유의 깊이를 논쟁을 하기도 한다. 인간의 일임에도 사유란 쉽지가 않은데, 작품을 찾아다니며 즐겁게만 여긴다면 좋겠지만.

저자는 사유라는 말은 원래 고뇌, 고통을 의미했다. 고통을 받고 있다는 뜻의 이탈리아 어도 있음을 인용했다. 사유는 언어를 통해서 가능한데, 언어도 이미지도 없는 추상회화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즐길 수 있는가? 예술의 이해되지 않는 아름다움은 때때로 충분한 '즐길 만한 고통, 무해한 고통'이라고 결론짓는다.‘미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현장 비평’ 으로 전작 <리플릿>에서 미술을 주로 이야기했다면 이번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은 세계 곳곳의 사회 · 문화적 현상과 연관된 철학 이론, 미술 작품, 도서, 영화 등을 자유롭게 다룬만큼, 영역의 확대와 동시에 주제들이 집약적으로 담겨있는 책이다.


 

이 리뷰는 알에이치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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