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읽기 - 역사가가 찾은 16가지 단서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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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은 독일에, 로마인은 로마에, 튀르크인은 튀르크에 산다. 그러나 영국인은 집에 산다.


그녀는 런던에서의 신혼집을 제외하고 이혼 후 자신의 명의로 집을 수없이 사고 팔았고, 집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두번째 결혼 후 고고학자인 남편을 따라 그리스나 서아시아로 잠시 떠나있을 때도 집이나 땅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낡은 집을 사서 고치고 실내를 장식하고 가구를 들이고 되파는 일(지금으로 치면 단순한 복부인이 아니라, 인테리어나 부동산 전문가에 가까운 일을 즐겨했던 것 같다)

일례로.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런던에 무려 여덟 채를 소유했고 전쟁 때문에 전쟁피해보험에 가입해 부담이 되긴 했으나 훗날 이 집들은 모두 큰 이익을 남기고 되팔았다고 하니, 영국인들이 집에 대한 특별한 집착(대항해 시대 제국주의)이 있다고 해도 여성으로서의 그녀의 대담한 수완은 그녀의 어린시절의 영향으로 영혼의 안식처로서의 '집', 지켜야 할 생명체 같은 가치로 여겼다고 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엔드하우스의 비극><침니스의 비밀><복수의 여신> 작품들에 나오는 '남의 집에도 관심이 많고 멋진 저택을 구경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영국의 유서깊은 저택과 정원 관광 패키지'가 언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부동산 불패, 강남불패 신화로 이루어진 근대 이후 광적인 집착이 있고 나역시 무관하게 살았던 적이 없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할 게 없을만큼 공감가는 문화적 모티브인 건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세계대전과 같은 굉장히 큰 사회적 불안정성이 존재할 때 나도 그녀처럼 할 것 같지는 않다. 한국도 종전이 아닌 휴전중이라는 역사적 조건이 아파트 값이나 거래를 억제하는 현실적인 억제제가 되지는 못하니 모든 시장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돈을 버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 건가 싶기도...ㅎ


독약의 여왕 Queen of Poison

애거서가 쓴 66권의 장편 소설 가운데 살인, 살인미수, 자살과 직접 연관되어 독약이 등장하는 작품은 무려 41권에 달한다고 한다. 비소, 아스피린, 키니네, 요오드, 인슐린, 모르핀 사이안화칼륨, 탄산수소나트륨,비타민 등 약물조제법 90종이나 되며 소설 <벙어리 목격자>에서 그녀의 지식은 주인공 탐정 푸아로 입을 빌려 전문적으로 나타난다. 서양에서는 식물에서 추출한 활성 성분에 주목하고 린네의 식물학 라부아지의 화학적 성과(과학혁명)을 겪으며 약제학이 표준화되는 시점이었다. 이를 '약전 개혁' 이라하는데 <죽음과의 약속> 등의 소설에서 그녀는 '디기톡신의 강력한 활성성분을 예로 들며 4가지 중 독성이 가장 강한 약물이 프랑스에서는 금지되었지만 영국에서는 규정이 없어 판매가 되고 있다'는 것을 인용한 것을 보면,

역사적으로 국가마다 표준화가 시기적 공간적으로 용법과 규제가 다르며, 이로운 약이 독약으로 쓰일 수 있고 그 경계가 유동적이고 모호했음을 말해준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그녀는 5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런던대학병원 조제실에서 일했으며 시중의 여러가지 약에 대한 정보를 업데이트 할 수 있었고 그 조제방법 등을 <깨어진 거울> (1962)에 녹여내거나 <카리브해의 비밀>(1964) 에서 암의 통증을 줄이기 위한 모르핀, 기침약, 류마티스약, 관장약, 수면제 등 성인병들과 관련된 약물 21가지에 이르게 나열하기도 했다. 비극적인 전쟁에 반해 신약들은 끊임없이 개발되고 대중들에게 소비가 되었고 페니실린과 같은 항생제 외에도 생명을 살리는 약이 아닌 온갖 소화제 강장제 등의 알약들이 슈퍼마켓에서 사듯 쇼핑이 가능해진 것이다. 실제로 애거서는 약이 유행을 타고 남용되는 현실을 꼬집어 전쟁 중에 쓴 시에서 말했다.


약이 가진 힘, 그것이 좋든 나쁘든, 과연 사라질 수 있는 것인가?

그녀가 쓴 시 '조제실에서' 중에서

이 모든 것이 끝났다. 전쟁이 끝난 것이다... 영혼의 위험, <쥐덫> 이라는 작품에서 몽스웰 여관 손님인 보일 부인은 전쟁이 끝나자 갑자기 엄청난 상실감에 시다린다. 전쟁은 의욕이 넘치고 능률과 조직의 중요성을 그리고 활기찬(?) 생활을 하게 했지만,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자 삶의 자극과 도전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심리를 경험했다고 묘사했다.

사회적으로 일상으로 돌아간 여성들은 '임시직'(군수공장이나 병원)을 놓아야 했고 이제 남성처럼 '중요한'일을 더이상 할 수 없어 가정에 머물러야 한다는 상실감이 자리했고 영국정부는 그 보상으로 국민대표법(1918)을 제정해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했다고 한다. 남성과 동일한 21세 조건으로 선거권을 갖게 된 시기는 1928년이었다고 하니 남녀평등 문제는 그녀에게 무시할 수도 도전할 수도 없었던 것 같다.


어떤 해석은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복수의 여신>의 구도나 <예고 살인>의 캐릭터들이 퀴어Queer 적이이라고 해석하지만 그 시대에 명확하지 않으나 여성간의 감정을 그리고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독신남 푸아로는 헤이스팅스가 결혼과 가족과 함께 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항상 함께 하며 남성간의 사랑 혹은 진한 우정을 보여준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영국의 중상류 남성성 자체가 기본적인 동성애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고 한다. 남자 기숙 사립학교, 런던의 금융계, 제국의 영광까지 말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나 문학작품에서의 '버디buddy문화' 수사물의 '파트너십'은 이런 사회상에서 파생되어 평생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증오하기도 하지만 둘 사이 애정은 절대 불변의 요소이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셜록홈즈와 존 왓슨 사진이 실려있어 한참 인상깊게 느껴진 챕터이다.

배트맨과 로빈, 맨인블랙, 미국 헐리웃 코미디에선 자주 쓰는 코드라 너무나 익숙해 생각해보지 못했던 역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호텔에 관한 소설을 많이 썼던 이유는 그녀가 실제로 기차여행을 사랑했고, 사건이 벌어지는 무대로 기차를 택했기에 단순한 이동수단 이상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텍스트의 지리학' 즉, 작품 속 장소의 의미를 탐구하는 학문에 기여했다고도 한다. 작품들 속에 등장한 영국의 최초이기도 하고 호화로워서 유명한 사보이 호텔, 리츠 호텔, 버트램 호텔 등은 그녀뿐아니라 지금까지도 관광객들이 사랑받는 곳 중에 하나라고 하니, 혹시라도 훗날 런던 여행하게 된다면 들러보고 싶어졌다.


그녀는 자동차에도 관심이 많아 벤틀리, 크라이슬러, 롤스로이스, 다임러, 메르세데스, 폭스바겐, 피아트 등의 다양한 국가의 여러 차종들을 소설에 등장시켜 등장인물의 소품으로 사용하는 디테일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1939)의 원래 제목이 '열 명의 흑인 꼬마들 Ten Little Niggers' 였다가 미국에서 모욕적인 nigger 때문에 indian 조차도 문제가 되어 제목을 바꾸고 내용도 고쳐쓸 정도로 그녀의 작품엔 인종이나 민족 혹은 젠더 차별과 편견이 산재있다고 저자는 소개한다. 동양은 마약을 흔히 사용한다 인도 와이프들이 남편에게 사용한다던지 아프리카 출신은 문명화된 런던 유학생마저도 주술에 의존하는 낙후된 곳으로, 베트남 국민성은 싸우길 좋아한다 등의 소설에서 그리고 있다. 혹은 유럽 내 프랑스인은 히스테릭하고 잔인하다는 식, 이탈리아 인은 화를 잘내고 거짓말쟁이, 그녀의 아버지가 미국인이었으나 신경질적이고 걱정이 많고, 온갖 바보같은 것들을 다 의심한다는 등의 미국을 비하하는 대목도 서술했다. 영국인은 모든 나라를 싫어하거나 깔보았을까? 저자는 애거서가 섬나라(고립성) 근성뿐만 아니라 냉정하고 평정심을 잃지 않는 영국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한다. 평정심과 더불어 영국인들이 내세우는 것은 페어플레이 승리보다는 공명정대함을 중요시한다. 또 그 근거로 근대 스포츠를 만들어낸 영국은 도박과 내기에서도 이런 특성을 보이며 합법적인 복권을 발행해 스포츠와 게임을 즐기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돈, 계급, 미신이라는 챕터도 흥미롭게 읽었지만 마지막 챕터 16 제국은, 저자가 남달리 애거서의 세계관에 대해 좀더 심도있게 바라본 관점이었다.


하지만 코끼리 사냥꾼이나 고고학자, 식물학자 같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애거서는 1928년 이라크 발굴 현장에 갔다가 맥스 맬로윈이라는 14살 연하의 고고학자와 만나게 되고 이전의 단순한 여행이 아닌 유적 발굴을 위한 장기 출장에 동행하게 되는데 유물을 닦고, 사진을 찍는 등의 정식으로 강의를 들으며 축척과 사진기술을 배워 <메소포타미아의 죽음>과 <바그다드의 비밀>에 그 발굴 경험을 반영했다. 그녀의 자서전에 발굴 현장에 속한 사람이고 자신은 고고학자와 동일시 되고, 코끼리 사냥꾼을 제외하고 식민지에서 이익을 취하는 사업가 즉 전형적인 식민주의자들과 자신을 분명하게 구분지었다. 저자는 그녀가 제국주의적인 죄의식에서 도피하는 전략일 수 있고 객관적인 과학 중립적이고 순수한 학문 추구라는 외피에 가려진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이로써 애거서는 세계를 광범위하게 동원하는 작품들을 동원해 엄청난 인기를 끌고 그 이유는 영제국의 노스탤지어, 제국적인 헤게모니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대영제국의 영광을 그려내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작가가 어린 시절 그녀의 소설을 읽으며 모험심과 낭만에 가득 차 상상에 빠졌던 경험에 비해 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불편한 역사적이고 문화적 맥락들이 내용의 몰입을 방해한다고 한다. <갈색 옷을 입은 사나이>에서 영제국 박람회의 홍보 여행에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애거서가 드러낸 영제국에 대한 신념과 충성이 바로 그것 중에 하나라는 사실이다. 또한 설혜심 작가는 21세기에도 애거서의 콘텐츠는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그녀의 소설 속 '영원한 영국Forever England'을 단순히 문화적 현상이 아닌 좀 더 냉정한 '역사적' 시선으로 봐야하지 않을까하는 의견을 견지하며 책이 마무리했다.


이 리뷰는 출판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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