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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하유지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3월
평점 :
오랜만에 읽은 소설책이다.
에세이와 다르게 초반엔 잘 모르겠다가도
조금 지나고 나면 그 이야기 속에 몰입되는 매력을 가진 소설,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해하며 읽었는데,
어느새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눈 감짝할 사이 서른 셋'처럼.
이 소설은 참고서 편집자 서른세 살 영오가
죽은 아버지가 유품으로 남긴 수첩에 적힌 세 사람을 찾아나서며 시작한다.
참고서 편집자 영오는 새해가 되는 순간까지 야근한다.
어머니가 사 년 전 폐암으로 죽은 뒤로 예닐곱 번 만난 아버지마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남긴 거라고는 월세 보증금과 밥솥 하나,
그 안에 담긴 수첩이 전부다.
수첩에는 세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있다.
'홍강주', '문옥봉', '명보라'
영오는 이 사람들을 차례대로 만나게 되고,
그러면서 기적과 감동이 찾아온다.
이 소설은 주인공 영오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또다른 소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열일곱 살 소녀 미지이다.
미지는 영오가 일하는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질문을 퍼붓는다.
그러면서 영오와의 전화 친구가 된다.
그리고 발코니 칸막이 벽을 사이에 두고 옆집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할아버지의 심부름꾼이 된다.
그러면서 잊고 지냈던 가족을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데,
중요한 것은, 영오와 미지를 연결해 준 사람이 바로 영오의 죽은 아버지라는 것이다.
둘의 관계는 그렇게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이런 서른세 살 영오와 열일곱 살 미지가 사는 모습은 그리 녹록하지는 않다.
어딘가 절반쯤 비어 있는 것 같은 삶.
그런데 돌이켜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너무 멀리 와 있고, 돌아갈 수는 없다.
어딘가 심하게 부족한 사람들이 부족한 사람들을 만나
유쾌하게 삶을 채워가는 이야기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책속으로 p.40---
오영오. 난 너라는 문제집을 서른세 해째 풀고 있어.
넌 정말 개떡 같은 책이야.
문제는 많은데 답이 없어.
삶의 길목마다, 일상의 고비마다,
지뢰처럼 포진한 질문이 당장 답하라며 날 다그쳐.
책속으로 p.53---
이제 영오는 서른셋, 둥지를 떠난 새처럼 홀로 살아간다.
등불처럼 깜빡거리면서.
---책속으로 p.272---
공항 안은 활기가 넘치는데 영오는 고즈넉한 마음이 된다.
시간을 생각한다. 집과 회사 사이로만 흐르던 영오의 시간은
강주를 만났을 때, 다른 방향에 샛골목을 내었다.
그리고 옥봉이 세상을 떠나자 골목길 담벼락에서 돌덩이가 떨어지며 땅바닥이 파였다.
비가 내렸고, 파인 곳은 웅덩이가 되어 물이 고였다.
영오는 물이 얼굴을 비추어 본다.
그 얼굴 뒤에 강주가 보인다.
보라가 보인다.
그리고 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