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서른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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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 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잠시 머물러 쉬어갈 수 있는 한 뼘의 그늘을 펼치듯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가랑비메이커, 이번에 처음 접하게 된 작가인데, [한낮의 서른]을 통해서 많은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소리 없이 변화하는 계절의 변화를 목격하기 위해 매일 산책에 나선다는 작가는, 그런 섬세함을 문장으로 잘 표현해 내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가랑비메이커의 문장들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용히 독자들의 마음에 스며들게 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처음 [한낮의 서른]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는 가장 빛나는 청춘일 때의 찬란한 모습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 갔을 거라고 상상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하루 중 한가운데 머문 한낮, 인생의 전환점처럼 놓여 있는 서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즉, 이 책은 여전히 무엇이든 일어나고 사라질 수 있는 미지의 시간들에 대한 기록인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나보다. 


p.17

서른, 

완벽하지 않아도 온전하지 않아도 괜찮다.

내게는 아직 더 시간이 있다.

이제 겨우 한낮에 도착했을 뿐,


이라고 말이다.


그러고보니 나에게 '서른'이라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고민들과 불안들, 그리고 새로운 설렘들이 가득했을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니 무난하게 지내온 날들이라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것 같다. 늘 그렇듯이 지나고보니 너무도 소중한 시간들인데 말이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이야기들로 나의 서른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들로, 평범하게 써내려가는 이야기들이 오히려 더 공감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거기에 작가의 예리한 관찰력과 섬세한 문체는 이 책에 오롯이 빠져들게 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p.41

맑은 기대를 찰랑이는 꽃병이 되어 사뿐사뿐 걷는 길은 늘 짧았고 그 끝에 마주하는 봄눈처럼 짧은 미소의 기억은 길었으니, 내게 꽃을 사는 일은 언제나 남는 장사였다.


p.76

여전히 내가 사라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때면 악착같이 무엇이든 쓰기 시작한다. 쓰는 동안 만큼은 나는 그곳에서 언제나 주인공이 된다. 이야기를 시작할 때면 모든 세계는 나로부터 시작되고 음미되고 반짝이며 무너지고 흩어진다.


p.98

나는 문장들을 더듬는다. 다음으로 이어져야 할 말을 까맣게 잊어서가 아니다. 수많은 모래 속에서 반짝이는 별 가루를 모으는 심경으로 문장을 더듬는다. 


p.138

한때 매분매초를 쫓기듯 살았다. 그때 늘 바라던 것이 내게 느슨한 시간이 있다면 빌려다 쓰는 것이었다. 그때 빌렸던 시간을 되돌려 받은 걸까..., 우스운 생각을 하며 다시는 시간을 빌려다 쓰지 않아도 될 노인처럼 느리게 흘리는 하루가 있다. 내일이면 허둥대며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서툴고 설익어서 이따금 서러워지더라도 희미하게, 진정 그러하기에 아름다운 한낮의 서른께의 문장들로 독자들을 위로해 주는 문장들이 많아서 읽으면서 나의 서른에 대해 많은 생각들로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p.25

서른이 되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가장 쉬운 믿음이자 착각이었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페이지가 펼쳐졌고 그 전에 외웠던 공식들은 모두 까맣게 잊어버려야만 한다. 다시 처음부터 하나씩 깨우쳐 나가는 것이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한 서른에게 남겨진 숙제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서른이에게 전하는 환하고 다정한 위로의 언어들이라고 했는데, 서른이 훌쩍 넘은 독자들에게도 잔잔한 위로를 전해주는 책인 듯 싶다. 





*리뷰어스클럽으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 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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