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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작별 - 돌보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남유림 지음 / 도서출판 독 / 2026년 7월
평점 :
이 책을 읽으며 이 세상의 모든 감정이 하나의 언어처럼 다가왔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상실, 그리움과 희망까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마음들이 문장 사이를 흐르며 조용히 나를 흔들었다.
10년 7개월. 아이는 3,865일 만에 죽음으로써 엄마로부터 독립했다.
'아이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고통스럽지만 용기있고, 순수한 사랑의 기록이다.
👨🍼 남편을 보며 사랑은 감정이 아닌 선택의 문제라고 느꼈다. 사랑하기로 하면 사랑하는 거다. 살기로 결정하면 사는 것이다. 나는 항상 잘 살기보다 죽기를 선택했다는 것을, 마지못해 사는 것을 택했음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43p
이른둥이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 일주일만 건강했다. 이후 열이 나고, 여러가지 병명이 붙었으며, 뇌가 완전히 망가졌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는다. 듣지도 보지도 먹지도 숨쉬기도 어려울 거라고 했다. 아빠는 아이가 사랑받는 것만 느끼고 알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볼 수 없지만 들을 수 있고, 목소리를 낼 수 없지만 표정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아이. 엄마 아빠에게 딱 붙어 스킨쉽으로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해든이다. 24시간 해든의 곁을 지키는 엄마는 딸로 인해 스스로를 필요하고 쓸만한 존재로 인식한다.
👶 해든의 생을 붙든 건 사랑이다. 열아홉 번의 전신마취에도 매번 그를 흔들어 깨운 건 그 사랑이다. 75p
장애인복지관 사례관리팀에서 일했을 때, 재가장애인 가정에 방문했던 적이 있다. 청소년이었지만 어린아이처럼 왜소한 체구였다. 침대에 누운 아이의 몸에는 호흡기와 각종 의료기기가 연결되어 있었다. 엄마는 매우 지쳐있었고, 외출을 하지 못한지 오래 되었다고 했다. 아이엄마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으며,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책에서 저자는 숨구멍을 원한다. 우리 사회에 중증 장애아이를 받아주는 기관이 거의 없다. 의료적인 행위라는 이유로, 의료 및 복지 종사자들이 함부로 이야기한 것에 대해 대신 사과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닿지 않는 지원은 존재하지만, 그건 부재와 다르지 않다. 어떤 친절은 때로 받는 이에게 구걸과 다르지 않다. 나는 구걸하며 산다. 110p
만성질환을 앓는 가족을 돌보는 이의 심경과 부모가 되어 아이를 극진히 돌보는 마음을 이보다 더 솔직하고 담백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딸아이의 고통과 용기는 이미 차고 넘쳤다며, 이제는 엄마의 차례라고 생각해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한다.
이후 74일이 지나 해든의 삶이 멈춘다.
🫄해든 덕분에 나는 죽음을 좇다가 죽음을 통과해 드디어 삶에 안착했다. 죽음에의 갈망은 완전히 사라졌다기보다 사랑으로 눌러진 것, 덮인 것이다. 198p
책장을 넘기며 문장을 눈에 담을 때마다 먹먹해져, 몇 번이고 숨을 골라야 했다. 해든이 없는 세상에서 엄마 아빠는 재밌게 살거라고 말하고, 해든의 숨이 멎는다.
죽음을 갈망하던 여자가 아이의 죽음을 마주하며 죽음을 통과해 오늘을 살아간다.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 이 책이 말하는 건 결국 사랑이다.
저자는 창백한 푸른 점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안, 사랑 없는 삶은 존재할 수 없음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했다.
@dokk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