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책장을 덮었는데 가슴 한 켠이 묵직하다. 가족돌봄의 현주소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소설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단 현실에 답답하다. 갑작스런 사고로 남편을 잃은 윤주. 슬픔과 상실에 멍하니 지내다 며칠을 초코파이와 우유로 연명하는 딸아이를 보고 정신을 차린다. 배우자의 사망이 스트레스지수 100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 고통 속에서 윤주는 작고 어린 딸의 온기로 견뎌낼 마음을 먹는다. 🏮 결국 삶의 무게를 가르는 것은 가진 것이 아닌, 곁에 누가 있는가였다. 특히 여자들에게는 더욱 그랬다. 53P 여자 혼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은 세상이다. 친정엄마에게 도움을 구하지만 거절당한 윤주는 시어머니에게 온기를 느끼고 같이 살기 시작한다. 시어머니와 함께하는 일상은 따뜻하고 편안한 시간이었다. 무얼 먹을지 웃으며 이야기나누는 아무 걱정 없는 찰나의 순간들이 행복이라고 느꼈다. 행복한 시간도 잠시, 시어머니는 중증치매에 걸렸다.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가정에 벌어진다. 윤주와 예린인 점점 지쳐간다. 이때 손녀의 도움의 손을 맞잡은 친정엄마가 집에 들어온다. 윤주와 예린, 시어머니와 친정엄마. 4명의 여성이 서로를 돌보며 함께 사는 특별한 가족이 삶을 이어간다. ☘️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이 하루가, 누군가의 마음을 데워주는 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오랫만에 찾아온 조용하고 따뜻한 하루였다. 208P 사람의 길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하고 친정엄마는 위암 말기 판정을 받는다. 친정엄마는 끝까지 자신의 병을 숨기고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는 길을 택한다.엄마가 되고나니 엄마의 삶의 무게가 와닿는다. '나도 엄마가 필요해' 외치고 엄마 없는 삶이 버겁게 느껴진다. 아이를 돌보며 유치원이나 학원으로 픽업하고, 일을 하면서 나의 휴가는 온통 아이들의 일이나 나의 병원에 가는 일로 소모될 때 힘에 부친다. 오죽하면 일적인 성취보다 일도 하며 아이를 키우기 위해 친정 근처로 이사까지 왔겠는가. 이젠 제법 아이들이 커서 예전만큼 부모님께 손을 덜 벌리긴 하지만 그래도 급할 땐 제일 먼저 전화하게 된다. 돌봄이란 몸을 돌보는 일인 동시에 마음을 품어주는 일이라는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가족돌봄이 더 이상 한 사람의 삶을 깎아내는 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올해 읽은 치매 관련 책에서 계속 언급되던 가족돌봄과 여성의 이야기가 우리 사회의 현주소란 생각이 든다.어쩌면 올여름 살인적인 더위만큼 내게 벌어졌던 끔찍한 일도 돌봄의 무게에 짓눌린 여성들의 발악이었는지도 모른다. 가부장제와 남성우월주의를 답습하고 있는 그녀들로부터 자유를 찾을 것이다. 가족돌봄은 더 이상 개인의 일이 아니며 사회구조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한 사람의 존엄한 가치가 가족돌봄이라는 무게 아래 깔리지 않도록 여성부터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위 서평은 도서출판 세종마루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sjmaru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