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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 서른 살 빈털터리 대학원생을 메이지대 교수로 만든 공부법 25
사이토 다카시 지음, 김효진 옮김 / 걷는나무 / 2015년 6월
평점 :
독서법에 관한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예담>출판사에서 나온 ‘이동진 독서법’과 병행하며 읽었다. <이동진 독서법>은 가독성이 좋고,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선명했다. 사이토 다카시의 이 책은 이동진 독서법의 내용에서 좀 더 심층적으로 써내려간 느낌이다.
독서법이라는 단어엔 익숙하다. 하지만 처음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땐, 조금 의아했다. 독서하는 데에도 어떤 방법이랄 게 있나, 그냥 읽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독서법에 관한 책들에겐 딱히 손이 가질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나의 독서가 어쩌면 제대로 된 독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어떤 회의가 들었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든 것이다. 그제야 독서법에 관한 책들에게 눈길이 갔다.
사이토 다카시의 이 책은 독서의 중요성과 더불어 저자만의 독서방법, 일종의 독서의 노하우랄까, 그런 것들을 전하고 있는 책이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자기 계발서 라고도 볼 수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자기 계발서에 관한 나의 생각을 잠깐 기술하자면 이렇다.
자기 계발서의 내용은 대부분 비슷하다.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익히 알고 왔던 삶의 지침 정도가 대부분이다. 자기 계발서가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조언들 있지 않은가. 예를 들면, 시간관리를 잘해라, 책을 많이 읽어라, 메모하는 습관을 길러라 등등. 이건 당연한 얘기다. 문제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이유만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잊고 산다는 점이다. 자기계발서는 바로 이런 틈새를 공략한다. 사람들이 잊고 지내던 것들을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스스로에 대한 경각심을 두드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 책 역시 그런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볼 때, 자기계발서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넓은 범주에서 보자면 말이다.
독서는 왜 중요한가, 라는 물음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인생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여기서 말하는 ‘읽었다’는 기준에 대해 사람들 저마다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자칭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이들만 봐도 그렇다. 누군가가 자기자신을 두고, ‘나는 책을 좋아한다(독서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그가 말하는 책이란 곧 자신이 좋아하는 한 분야일 확률이 높다. 쉽게 말해 편협한 독서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소리다. 어떤 사람은 경제경영서만 읽고, 또 어떤 사람은 문학서적만 읽는다. 또 누군가는 장르물만 읽는다. 내 주변에도 그런 이들이 꽤 있고, 과거엔 나 역시 그랬다.
언젠가 지인과 함께 밥을 먹을 때의 일이다. 어쩌다보니 소설가 김훈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상대방은 김훈을 모른다고 했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책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게다가 소설가 등단을 꿈꾸는 사람이 김훈을 모른다고. 김훈은 문학에 관해선 문외한인 사람조차도 알 법한 사람 아닌가. 그는 대체로 장르소설이나 만화를 좋아했다. 편협한 독서를 했다는 증거다. 이 사람, 소설가가 되기엔 독서력이 너무나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속으로 잠깐 했던 것 같다. 느슨한 의미의 독서란 대체로 이런 것과 같다.
‘단 한권의 책만 읽은 사람은 한권도 읽지 않은 것과 같다’, 이 말을 누가 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이 말 역시 편협한 독서의 위험성을 말해주고 있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독서가 주는 이로움에 대해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독서는 삶의 고난에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을 준다고. 또한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고통을 훨씬 잘 견뎌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은 그 사람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결정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금 추상적으로 얘기하자면, 그것은 곧 자기만의 방을 갖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문제는 방의 상태이다. 이 방의 상태는 양질의 독서력과 어느 정도는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자신만의 세계관이 확실한 것 같다. 건축으로 치자면 자기만의 설계도가 구축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저 다수의 흐름에 휩쓸려 이리저리 이끌려 다닐 뿐이다. 결론은, 책을 읽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자기 삶의 주체성이 높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된 자, 그렇지 않은 자. 이 둘의 차이는 과연 어떠할까.
고등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문학서적만 읽었다. 그것도 국내소설만 읽었다. 대학에 들어온 이후부턴 본격적으로(?) 시집을 읽기 시작했고, 이런저런 외국문학도 접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읽는 책이라는 것은 문학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아마 전공 탓인 이유도 있었겠지. 막상 졸업 이후엔 대중과학서적에 흥미가 갔다. 우울증을 다룬 책을 읽다가 우울증을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다룬 부분을 읽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뇌 과학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조금씩 독서의 폭을 넓혀나갔다. 나는 지금도 이 사실을 무척 다행스럽게 여긴다.
P.142
책을 읽었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다 읽은 후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가?
어느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다시 읽는다면 어느 부분을 제일 먼저 읽겠는가?
어떤 점을 배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