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어 만나는 안데르센의 동화세계.... 어릴 적 내가 접한 동화는 다양성에 있어서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가운데에 유독 안데르센 동화나 그림 동화는 빈약한 동화 세계를 단비처럼 적혀주었고 지금껏 나의 척박한 어린 날의 지형에 우뚝 서서 등대처럼 상상의 나래를 이끌고 비춰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푸르른 어린 날의 기억은 아름다움만을 품고 키워왔던 거 같다. ‘인어공주’의 욕망보다는 마지막 물거품이 주는 허무에 의미조차 이해가 부족한 속에서도 하염없이 슬퍼했으며, ‘성냥팔이 소녀’가 놓인 사회적 위치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턱이 없으면서도 그저 성냥을 켜서 그 속에 상상을 불어 넣는 소녀의 능력이 아름답다 여겼다. 왜 내가 처음 접한 동화 ‘백설공주’는 계모라는 존재와의 갈등에서 피해자로 전락해 목숨의 위협까지 받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지켜보면서 뜻 모를 공포에 떨어야 했는지......, 계모에 대한 이미지 구축은 동화 한두 편이 기여(?)한 것은 아니다. 신데렐라는 어떤가? 마지막 유리구두로 상징되는 왕자님과의 만남에서 신분상승이라는 반대급부가 주워졌으니 망정이지 계모와 새언니들의 핍박은 가히 대단한 학대의 표본이다. 거기다 ‘백조왕자’를 보면 이 사실들은 변함없이 세뇌에 가깝게 강조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계모들이 이렇게 난동(?)을 부리고 있는 동안 아버지들은 대체 무슨 생각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하는 점이다. 많은 동화 속에서 생물학적 아버지는 존재하되, 사회적인 역할로서 존재는 너무도 희미하다. 자식의 고통에도 이해는커녕 방관자로 물러서 있는 아버지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갈등 구조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 희생된 거라면 분명 난 이 어처구니없는 아버지들을 꼽고 싶다. 동시에 이율배반적인 모습으로 강하게 다가오는 것은 여성들의 강인한 힘이다. 안데르센. 그에게 그를 둘러싼 여성들은 대체 어떤 존재였던 것일까? 그가 피부로 느끼는 여성은 얼마나 가녀리고, 허공을 떠도는 물거품처럼 약한지, 허상을 비추는 성냥불에나 의지하는 동시에 눈의 여왕처럼 무지막지한 절대 권력의 차가운 존재이며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할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이지만 이런 성격의 존재들의 대척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인물들 또한 여자들이다. 그것도 약하고 착한 여자들. 눈의 여왕에게 납치되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파악조차 못하는 카이를 구하고자 하는 게르다. 오빠들은 속수무책으로 마법에 걸려 백조가 되었지만 그것을 풀고자 가시밭길을 걷는 소녀 엘리자. 그런가하면 안데르센 동화의 인물들은 참 슬프다. 약하고 무력하기 때문이다. ‘장난감 병정’이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나이팅게일’이 내몰릴 때 할 수 있는 일은 멀리 날아가는 것 밖에 없었다. 기다리고 노래하는 일. 뿐인가? 인어공주의 이야기는 가져서는 안되는 것을 탐한 죄에서 시작된다. 행복도 자기 스스로 만족하는 속에서 얻는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 그저 ‘오즈의 마법사’에서처럼 태풍에 휩싸여 머나먼 무지개 너머 세상을 꿈꾸는 도로시에게 잠시의 모험으로서 교훈을 안겨주는 애교(?)정도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 볼 수 없다. 원하거든 철저히 일대일 거래를 해야 한다. 그리고 철저히 부서지고 만다. 물론 난 인어공주의 욕망에 무조건 한 표를 던져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름다운 바다를 저버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한번밖에 본 적 없는 왕자에게 첫눈에 반해서 모든 걸 내건다. 하긴 그것이 어디 왕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겠는가? 왕자라는 표상 뒤에 숨은 자신이 갖지 못한 또 다른 조건들일 것이다. 물 속에 사는 인어에게 지느러미나 꼬리 대신 웬 다리에 대한 꿈이란 말인가? 푸른 바다보다 산과들을 꿈꾸고 300년 정도는 산다는 생명의 길이보다 인간만이 가졌다는 영원한 영혼이라니. 그러나 이런 욕망이 비극인 것은 이성적 판단의 소산물이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저렇게 접고 지우고 포기하고 잘라내서 현재의 자신에게 만족하는 지혜란 경전에나 있는 얘기라는 사실이 나의 인간됨이 갖는 또 다른 비극의 단면임을 어찌하랴. 내가 인어공주의 허황된 꿈에 질린다지만 내가 가진 또 다른 꿈은 때로는 인어공주 못지 않다는 걸 어찌 숨길 수 있겠는가? 그저 도로시처럼 한 순간의 꿈으로 끝나기를 바랄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안데르센 동화집 『눈의 여왕』을 읽고 감상 대신 투덜거리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어린 날의 감상을 끄집어 내면서 어린 나를 만나고 순간 순간 향수에 젖곤 했다. 그 때는 미처 몰랐다고 못은 박지만 왜 그 때 이런 저런 날카로운 면도날의 난도질이 필요했겠는가? 작고 예쁜 감상이 어린 나의 작은 세상에 더 어울리는 모습이라는 걸 왜 모르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모처럼 성인이 되어 읽은 안데르센 동화집은 뜻 깊은 시간의 선물이었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난 첫 장을 넘기며 눈의 여왕을 읽을 때 서늘한 궁금증과 슬픔이 밀려왔다. 왜 눈의 여왕은 남자 아이 카이를 납치한 것일까? 그녀에게 카이는 어떤 존재일까? 다른 것은 몰라도 그녀 역시 외로웠을 거라는 짐작만 안은 채...... 화려한 삽화가 그려진 작은 책의 한 장 한 장을 조심스레 넘기며 읽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