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
애덤 필립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멀쩡함은 광기의 대안을 뜻하는 단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멀쩡함은 굴욕을 예방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야 한다.
( p270 3부 이제 멀쩡하다 중에서 )
한 권을 책을 읽고 이렇게 막막한 기분이 드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우선은 ‘대체 내가 뭘 읽은 거지?’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나만 이런 감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줄 알았더니 마지막 옮긴이의 후기에서도 비슷한 고백을 발견한다.
그제야 이해가 짧은 자신만을 탓할 일은 아니라는 핑계거리를 찾은 셈이며 안도하게 된다.
‘멀쩡함’과 ‘광기’는 마치 불가분의 관계처럼 해석되는 종류의 단어다.
그러고 보니 저자가 지적한 대로 참 애매모호한 정의를 안고 있었음에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이 둘을 굳이 묶어서 반대 개념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성 싶다.
그런 의식의 밑바닥을 파고들기 위해 저자는 참으로 먼 길을 돌고 돌아 이리저리 둘러보며 다방면으로 천착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꽤나 지루한 감이 없지 않은데 그 길들을 짚고 넘어가며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집요한 저자의 지적들과 질문들이 산재해 있다.
멀쩡함과 광기는 분명 다른 개념인데도 그 둘은 비슷하면서도 반대되는 운명을 갖고 있는 듯도 하다.
사람들은 멀쩡함을 희구하면서도 흥미를 갖지 못하고 광기는 거부의 눈길을 보내면서도 은근한 매력을 느끼며 이야기한다.
이런 이중적이면서도 모순에 둘러싸인 개념 앞에 과연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찾아 나서지만 저자는 어쩌면 사람들의 반응에 깔린 이중성의 본모습 또한 지적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책은 제 1부 의심을 품다, 제 2부 문제 제기, 제 3부 이제 멀쩡하다 등으로 나눠 있다.
특히나 문제 제기에서 아이들의 본능이 야기하는 광기에 대해서 그리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섹스에 대한 다양한 인식들은 흥미로웠다.
섹스라는 쾌락을 통해 사람들은 분명 자신의 본능과 거리가 먼 사회적 통념을 갖게 되지만 동시에 갈등의 고리만 깊어진다. 결국 멀쩡함에 대한 요구에 자신을 맞추기 위한 일환이며 그것이 멀쩡함이 갖고 있는 통념상의 한계인 것이다.
물론 이런 지적들은 책 전체의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지만 이런 부분들이 멀쩡함에 대한 허상을 지적하는데 좋은 본보기인 건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멀쩡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어 끝끝내 다다른 곳에서 진정한 자신이 되는 길이 멀쩡한 자신이 되는 것임을 저자의 의견으로서 만나게 된다.
비로소 멀쩡함과 광기에서 해방되는 의미를 결과로 얻게 되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고 저자의 안내에 따라 온 길을 나는 스스로 이어가야 한다.
그가 던진 질문을 부족한 소견이나마 끝없는 질문과 해답을 향해 더듬어 가야하는 일을 과제로 싸안는다. 책의 끝과 동시에 시작을 알리는 전진의 나팔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어렵고 복잡다단한 내용을 붙잡고 씨름하면서 좀 더 집중력 있게 파고들지 못해 아쉬움과 자책도 잊지 않으면서 다시 한 번 도전해봐야겠다는 결심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