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 스트리트
산드라 시스네로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그들의 힘은 비밀스럽게 감추어져 있다. 그들은 엄청난 기세로 땅밑으로 뿌리를 뻗어간다. 그들은 위로도, 아래로도 자란다.
거친 발가락으로 땅을 움켜잡고 격정적으로 하늘을 물어뜯으며 자신들의 분노를 멈추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런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들 중 하나라도 자기 존재의 이유를 잊게 된다면, 그들은 화병 속의 튜립처럼 서로에게 나약해진 팔을 걸고 이내 시들어 버릴 것이다. 견뎌야 해. 견디고 또 견뎌야 해.
- p137 야윈 네 그루의 나무 중에서

한 부분을 뭉텅 잘라 옮겨 보았다. 그만큼 작가의 의지가 상징적으로 담겨 있어서 놓치고 싶지 않은 부분이었다.

망고 스트리트. 빈민가의 멕시코계 사춘기 소녀 에스페란자의 살고 있지만 결코 살고 싶지않은 동네 이름이다.
어디 동네이름 뿐이랴. 에스페란자라는 이름조차 할머니의 그것을 물려받은 것인데, 강인하고 꿈을 가진 할머니는 강제로 할아버지와 결혼해서 평생 집안에 갇혀 창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며 슬픔에 젖어 살았다. 그러니까 이름은 물려받았으되, 삶만은 결코 닮고 싶지않다.
그런 그녀가 살고 있는 거리 망고 스트리트는 당연하겠지만 이런저런 인간 군상들이 뒤섞여 살아간다. 어떤 이는 뜨내기처럼 살다 정착하지 못하고 쉽게 떠나지만 또 어떤 이는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고 묶여 산다.

200페이지를 살짝 넘는 이 책은 얇고 읽기에도 문체가 쉽고 부드러워 편안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그런데 왠지 막상 평을 하려니 너무나 조심스러워진다.
편안하다는 것이 만만하다는 것은 아닐 것이고, 문체가 부드럽다고 내용이 단순한 것은 아니며, 표현이 아름답다고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표지 설명에도 나와 있듯이 미국 중고등학교, 대학교에서 작문과 문예창작 교재로 사용될 정도라는데, 내가 보기에도 정갈하고 풍부한 표현이 마치 실바람에 실려 사뿐히 내안에 스며들어와 감성을 자극한다.

내용에 있어서도 빈민가에서의 녹록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의 주된 이야기이니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작가는 짧게 써내려간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감정의 곤죽을 만들지는 않았다.
소녀 에스페란자의 시선은 쉽사리 희망찬가를 읉어대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냉소적으로 푸념을 늘어놓지 않은, 어조의 담담함을 놓지 않고 균형을 유지한다.

소녀의 욕망과 꿈을 얘기하고 주위의 아픔과 기쁨을 표현할 때는 작은 사건이라도 예리함을 담고서 문제점을 간접적으로 제기한다.
소설이란 그런 것같다.
문제와 아픔과 슬픔과 기쁨을 알게 하는 게 아니라 느끼게 하는 것.
사건을 통해 본질을 관통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난 이 소설이 뛰어나게 다가온다.
비록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고 숨 가쁘게 하는 자극은 없어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하는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나는 소녀 에스페란자가 되고 거리의 사람들을 지켜보며 그들이 단지 빈민가 그 곳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낯선 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과 욕망과 그 뒤안길의 그림자는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사회적 위치나 상황을 떠나 참 서로가 서로를 닮은 어쩔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나는 망고 스트리트를 그렇게 서성거렸고 에스페란자의 꿈을 쫓아 그 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가난에 얽매이지 않기를, 여자라고 해서 묶이지 않기를, 그리고 그녀의 바람대로 그녀만의 집을 꼭 갖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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