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 1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몸은 사라지더라도 여행기만은 남아서 불멸하기를 꿈꾸었는지도 모릅니다. (p337)

혜초는 왜 떠나고 떠나서 떠나기를 멈추려 하지 않았을까?
무엇이 그를 그렇게 떠나게 했을까?
작가 김탁환은 왜 떠도는 자 혜초에게 몰두하였을까?
그리고 나는 그들을 징검다리 삼아 과연 무엇을 발견할 것인가?

혜초? 왕오천축국전?
어릴 적 국사시간에 억지로 외어서 찍어 누르듯 기억에 박아 넣은 익숙한 이름이다. 너무나 익숙해서 기계적으로 손쉽게 불어올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 단편적인 역사적 인물과 작품이 오늘 내게 무엇을 얘기할 것이란 기대를 한 적은 당연하리만치 없다.
그런 점에서 난 시작부터 김탁환에게 톡톡히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의 상상력과 설렘이 동반한 혜초에 대한 인물을 복원하여 나에게 인도하였으니 나는 우선 낯설지만 영예로이 혜초에게 조심스럽게 악수를 청한다.

그런데 먼저 여행기록 ‘왕오천축국전’이 6000자 남짓한 적은 분량의 책이라는 사실을 소설을 접하며 알고 적이 놀랐다. 물론 그 정도로도 당시의 시대적 공간적 정보를 생생하게 담고 있어 대단한 가치를 지녔다는 설명이 덧붙어 있기는 하지만, 혜초라는 승려는 과연 어떤 인물이기에 자신의 고난과 역경 속에 걷어 올린 경험들을 그리도 말을 아끼고 비워냈을까?
그러니 문장 사이에 숨은 말들은 어떻게 살펴 이해하며 혜초의 숨결을 읽어내야 하는가?

처음 솔직히 고백하자면 김탁환의 소설 ‘혜초’라는 제목을 들여다보며 난 의문스러웠다.
너무나 미약한 단초를 안고 있는 혜초는 내게 막연하고 신비스러운 인물로 떠올랐는데 그런 안개 같은 인물을 제 아무리 김탁환이라도 과연 접근이 가능할 것인가?
소설이 끝없는 상상력의 산물로 활개 쳐서 빚어낸 자유로운 영역이기는 하지만 정도가 있어야 할 듯.
그것도 역사적 인물이 아니던가? 내가 모르고 누구도 모른다 한들 한 살이를 살다간, 그것도 길 위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몸으로 치열하게 살다간 그의 발자취를 작가적 상상력이 근거도 미약하게 접근하려는가? 섣부른 오만과 과용이 아닐까하는 부정적인 시선이 먼저 고개를 처 들었다.
그러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챕터를 한 묶음 한 묶음 흡입해 가며 나는 모든 걸 벗어버렸다.
모든 걸 버리고 가벼이 양피지를 소중히 담은 걸낭만을 소중히 등에 지고 길을 떠났을 혜초를 따라 나는 그의 곁을 함께 했다. 가다가 또 다른 낯익은 이름, 패망한 고구려 후예로 당나라 군대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이름을 널리 알렸던 인물 고선지의 젊은 날의 모습과도 만났다.
실제 고선지와 혜초가 같은 시기를 그렇게 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둘이 머나먼 이역 땅에서 만나 어깨를 나란히 하며 모래폭풍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떠받치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이야기는 상상의 힘을 빌어 오긴 했지만 너무나 따뜻하게 다가왔다.

마치 인디아나 존스의 모험을 들여다보듯 흥미진진하게 그들의 여행에 동참하면서 재미에 빠져 순간순간의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나는 즐겁고, 슬펐고, 아쉽고, 서럽고도 기쁜 감상 속에 젖어 헤어나기 어려웠다. 그런 도취된 상태에서도 숨길 수 없는 근원적인 질문들은 끈질기게 김탁환의 문장을 통해 내게 전해져왔다.
작가의 의문이 내게 그렇게 전이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 스스로가 던진 질퍽한 궁금증일까?
그런데 혜초 그는 왜 위험한 길을 멈추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던 것일까?
불교라는 종교적 근원적 질문으로 시작된 자기 확인 과정이었다면 돈황이며 오천축국이라는 나라의 여행에서 마침표를 찍어도 무리한 결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 불교와 관계없는 서쪽 여정과 더불어 파밀 고원이나 대유사(타클라마칸 사막)을 넘어오는 과정에서 보여주듯 종교 그 이상의 의지와 관념이 엿보인다. 무엇이 그를 목숨을 걸고 걷게 하고 사막을 건너게 하며 고원을 넘게 했는가? 또한 소설에서 김탁환이 끈질기게 끈을 놓지 않았던 질문, 그것은 혜초가 온몸을 던져 발바닥으로 보고 손으로 쓰는 일에 멈추지 않았던 그 행위의 의미 또는 쓰고 남기려는 기록에 대한 집착으로 보여준 혜초의 욕구.
그리고 그것이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불교적 가르침과 상충된 또 하나의 모순을 안는 승려 혜초의 근원적 고민이자 화두임을 넌지시 얘기하는 동시에 표현과 기록이라는 혜초의 문제 너머 작가로서 김탁환 자신의 숙명적 욕망의 그림자를 슬쩍 걸치면서 고백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어인 모순인가? 고민한 자의 집착물인 ‘왕오천축국전’ 그것이 혜초라는 한 승려를 오늘날로 이어져 그의 존재를 증거 하는 것을.

그래서 김탁환은 혜초를 통해 자신을 증거하고 싶었는가?
당연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욕망의 산물은 실로 너무나 멋지고 근사하게 빚어져서 독자인 내 앞에 성공적으로 놓여졌다. 나는 ‘혜초’ 이 한 작품으로 김탁환을 다시 평가하게 되었다.
나는 이 소설을 한 마디로 아름다운 판타지 소설이라고 평하고 싶다.
비록 역사 속의 인물들을 현실 속에 구현하는 척 했지만 그 안에는 김탁환의 혜초가 터벅터벅 걸어 나와 세상을 호령했던 당나라라는 강력한 물리적 무대를 뒤로 하고 사막과 고원이라는 강인한 대자연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 속에 들어서기를 멈추지 않았던 약하지만 강한 인간. 종교적으로 부드럽지만 그 힘으로 역시 세상을 이해하고 품으려 했던 인물로 거듭나서 실크로드라는 대장정의 길 위에 나를 초대한다.
나는 작지만 작아지지 말아야겠다. 약하지만 약해지지 말아야겠다.

김탁환의 특징이었던 한문체의 화려한 수사가 외려 혜초에서는 옷을 벗고 김탁환만의 아름답고 유려한 문체가 불교적인 선의 시선으로서 더 한층 눈부시게 혜초의 여행길을 표현하는데 극치를 이룬다. 특히나 역사물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시간과 공간이 주는 특성을 맘껏 활용하여 환상적인 은유적 표현으로 인간 내면의 아픔과 근원을 더듬어 어루만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이해가 낳은 김탁환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어서 김탁환의 혜초는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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