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에이지 미스터리 중편선
윌리엄 월키 콜린스 지음, 한동훈 옮김 / 하늘연못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를 넘어선 근 100년에 가까운 시기에 활발한 활동으로 빛을 낸 영미의 미스터리 작가 5인 중심으로 중편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골든에이지 미스터리 중편선.

실제 그 시기가 황금기로 평가받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상징적 의미로 표현한 것인지 무지한 나로선 모르겠다. 다만, 개성강한 작가들의 미스터리 작품들을 이어서 여러 가지 맛을 맛보고 즐긴다는 의미만으로 흥미롭게 재미있다.
덕분에 내가 알지 못했던 당대의 유명작가들과 그들의 뛰어난 작품들도 알게 되었고, 더불어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특성에 더욱 매력을 더하고 알리는 데 일조하였다.
그건 아마도 에드가 앨런 포의 선구적 역할이 이런 여러 뛰어난 작가들을 배출해 내는데 영향을 미친 듯하다.

그 중 이 중편선에서 소개한 작가들 중 내 개인적인 감상으로 봤을 때 인상 깊었던 작가는 영국의 아가사 크리스티와 비견된다는 미국의 메리 로버츠 라인하트의 ‘버클 핸드백’과 의뭉하기까지 한 아노 형사를 앞세워 사건을 추리 해결해가는 알프레드 에드워드 우들리 메이슨의 ‘세미라미스 호텔 사건’이었다.

웬만하면 여성 작가라는 타이틀을 입에 올리고 싶지 않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치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미국에도 미스터리라는 분야에 이런 센스 있고 뛰어난 여성 작가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미스 마플 쯤 될까? 간호사 애덤스양이 사건의 중심에서 간호사라는 특성을 십분 살려 주변의 여러 사람들을 편하게 다가가면서 문제에 접근한다. 차분하게 전문직으로서 활용이라고 할까? 때로는 서스펜스 있고 스릴 있는 분위기도 함께 양념처럼 더 해져서 서서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또 하나 알프레드 에드워드 우들리 메이슨은 (음, 이름 한 번 길다. 이건 한 사람의 이름이다.) 뛰어난 프랑스 형사 아노와 영국인 리카르도가 커플(?)이 되어 범죄 사건에 뛰어드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인물이 정반대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장본인들이라는 것이다. 뭔가 예리하게 사건을 꿰뚫어 파악하면서도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 아노에 비해 리카르도는 사건이 일어나면 솟구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인물로서 쉽게 생각이 읽히는 인물이다.
그래서 인지 이런 상반되는 인물들의 조합이 가져다주는 재미는 아기자기하기까지 하다.

프랭크 보스퍼의 ‘3층 살인사건’은 그의 유일한 작품이라는데 한정된 장소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주변의 인물들의 용의자로서의 개연성을 찾아 좁혀가면서 추리의 틀을 맞춰가는 보편적 이야기 구조를 가졌다.
윌리엄 윌키 콜린스의 ‘데드 얼라이브’는 살인이 일어났다는 판결위에 과연 진짜로 살인과 피해자와 범인 간의 진실은 무엇인지를 물으며 다양한 각도로 인물들의 심리를 접근하며 복잡한 상황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는 한시도 호기심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리처드 하딩 데이비스의 ‘안개 속에서’는 이야기 속에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무슨 얘기냐고? 자세히는 어렵겠지만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는 모르지만 짧은 이야기들은 이어서 엮여있다. 거짓과 진실이 혼재되어 그럴듯한 전체의 그림이 그려지는데 과연 이야기의 종말은? 그렇다. 나름 반전도 기다리고 있고 이야기들은 작가가 저널리스트여서 인지 꽤 치밀한 연속된 기사를 보는 느낌이다.

이렇게 저마다 미스터리의 묘미가 무엇인지 확실히 표현해주는 소설들이 한번 잡으면 과연 다음은? 이란 작은 호기심들을 자극하며 손에서 놓을 수 없게 하는 동시에 빠른 전개로 끌어당긴다. 요즘에 와서는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작가들은 왜 미스터리에 이렇게 혼심을 다해 도전하는 것일까? 그리고 독자는 끊임없이 미스터리나 추리에 빠져 열중하는 것일까?
그 속에 살인이나 범죄가 있고 범인이 숨어 존재한다면 그 진실에 다가가려는 욕망이 궁금증에 싸여 우리를 자극한다. 숨겨진 진실의 얼굴이 나를 웃게 할 것인가? 최소한 진실이 밝혀진다는 사실에는 위안을 받는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에 거짓과 진실이 버무려진 세상에서 우리는 쉽게 판단하고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항상 만난다.
그래서 일까? 소설 속에서만큼은 속 시원하게 범인 하나를 파악하고 알 수 있다는 무언의 약속과 이야기 구조는 대리 만족은 안겨 준다.
특히나 이 미스터리 중편선의 작가들이 활약한 시대가 알려주듯이 근대에 이르는 이성으로서 명확한 합리성을 기반으로 문제 해결이라는 좋은 상징이 끊임없이 연출된다. 미스터리와 추리와 해결 그것이 요구하는 시대에 우리의 이성은 직감과 함께 활발하고 시원한 문제해결의 요구로 시험받고 있다. 항상 이성으로 접근하고 풀어가는 과정 속에 다시 추리물은 탄생한다. 인간이 지닌 이성의 선물과 더불어 숙명처럼. 미스터리는 인간이 있는 그곳에 있다. 어쩌면 그 이전부터도 자연계에 자리했겠지만.
두뇌의 활동이 멈추지 않는 한 난 미스터리에 빠져 작가들이 던지는 문제에 몰두 할 것이다. 미스터리, 너는 내 운명이다. 이런 운명 속에 재미있는 중편들을 만나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