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클래식 6
프란츠 카프카 지음,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이야기는 익명의 측량사 K가 성 아랫마을 여관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마을 사람들은 경계와 호기심의 끈을 놓지 않으며 외지인 K를 주시한다. 법과 질서를 혹여 무시하거나 해치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을 떠안고 그리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강하게 배척한다.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성을 찾아가 측량사로서 자기 역할을 정확히 획득한 후에야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성을 향해 발길을 돌리지만 눈앞의 성은, 그 위에 길은 역시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길은 있되 통하지 않고 주위를 맴도는 방황과 절망이 익명의 K를 통해 미로처럼 펼쳐 있다.

책은 400페이지가 훨씬 넘고 글자는 빼곡하게 들어차 있으며 무미건조한 문체로 상황을 이야기할 뿐 전체적으로 이해를 돕고자 하는 친절함은 기대할 수 없다.
그것도 모자라 마지막은 갑작스런 끝맺음으로 마침표를 찍는데 이 소설이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작이자 미완성 작이기 때문이다.
사실 책을 어디에서 끊든, 내용상 흐름에는 크게 지장을 주지도 않을 성 싶다.

다 읽고 난 소감?
한마디로 ‘어쨌든 어려워~!!!’다.
한 번의 만남으로 자신을 전부 내보이지 않는 작품. 그래서 몇 번을 읽어야만 할 것 같은 각오와 기대를 갖게 하는 작품.
이것이 우선으로 드는 생각이고, 더 나가 카프카의 다른 작품을 찾아 읽고 좀 더 친숙해져야겠다는 노력의 의지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것이 작품 [성]을 통해 갖게 된 프란츠 카프카와의 구체적인 첫 만남이다.
카프카가 내게 큰 무게로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접하면서부터다.
체코 문학으로서 큰 맥을 차지하고 거대하게 버티고 있다는 느낌을 쿤데라의 지적으로 은연 중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어디 체코의 문학에서 뿐이랴. 유럽 문학 더 나가 세계 문학으로 서 그의 삶과 함께 많이 회자되는 강력한 위력은 사실 작품 해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상식의 폭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너무나 유명하고 거대해서 그늘도 깊고 넒은 것이리라.
“목표는 있지만 길은 없다. 우리가 길이라고 부르는 것은 망설임일 뿐이다.”
카프카의 잠언에 나온다는 이 말은 [성]의 전부를 이야기하고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래서 신화로서 자리하게 하는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 주인공 K만은 익명으로 나오는 것일까?
의아해하며 읽으면서 나는 점점 그 익명의 마술에 걸려들고 있었다.
내가 K가 되어 방황하고 주변의 여인들에게 손을 내밀고 사랑도 하고 그들에게 배척당하며 길을 나서지만 문제는 타협의 여지를 쉽지 노출시키지 않는다.
권력과 욕망의 성은 굳건하게 문을 걸어 잠그고 나그네 K에게 인색하게 굴 뿐이다.
성을 대표하는 관리들의 모호하고 모순된 부조리와 힘은 결국 일상에서 우리가 굳게 믿고 은연중에 의지하는 신화와 현상을 상징하면서 나의 위치를 되묻게 한다.
어떤 권력에게서 배척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의 왜소함을 부채질하면서 사회 속에 어울려 살아가는 무리 속의 나는 주문을 풀어낼 능력이 없다.
그것은 끊임없는 이야기 네버엔딩 스토리처럼 우리를 레일 위에 또다시 끊임없이 달리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성> 속의 무력한 K가 나의 거울이 되어 눈 덮인 거리를 간신히 헤집고 앞으로 나아간다.
도달할 수 없는 ‘성’을 향해.
시작은 이쯤으로 하자.
다음은 마음을 열고 다잡아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다시 성을 향하는 K의 발걸음을 주시하며 그 너머 프란츠 카프카의 색다른 이야기에 몰두해야겠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시작한 만남이 비록 부족할지라도 소중할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