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진창현’이란 인물을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해협을 건너는 바이올린]이라는 드라마를 통해서였다.
우리의 산하와 푸른 논밭을 두루 비추는 영상 속에 낯익으면서도 낯선 이중의 시선으로 드라마를 감상했던 기억이 난다.
과연 왜 일본 방송에서 재일교포 즉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꽤 껄끄러운 과거 식민지배 역사의 산물인 거주 외국인의 삶을 기념으로 드라마화해서 방영하는 것일까?
그는 과연 누구이며 얼마나 대단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기에?
단순한 호기심이 먼저 솟아오른 것이 사실이었다.
미국에서 기립박수를 받으며 수상자가 되어 무대에 오르는 화려한 모습의 장본인 ‘진창현’.
그러나 내 짐작보다 더 심각한 고난의 경험을 짙게 깔고서 그의 삶은 거칠기만 했던 과정을 묵묵히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의 삶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본인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그의 자서전 [천상의 바이올린]을 펼쳐들었다.
1929년 경상북도 김천시 이천 마을에서 태어난 진창현은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아버지를 여읜 뒤 가세가 기울어 이복형들이 있는 일본으로 홀로 건너가 고학으로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마친다.
그러나 교사가 되고 싶은 꿈은 일본 사회에서 차별 받는 재일교포로서 이루지 못하고 접어야 했다.
불투명한 미래에 좌절을 안고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바이올린에 대한 강연을 듣는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현대 과학 기술로는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뛰어난 음색을 재현해내기 어렵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평생을 바쳐서라도 그 소리에 가까이 가고 싶다는, 가고 말겠다는 의지와 집념은 결국 그를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차별받는 청년에게서 훗날 세계가 인정하는 바이올린 제작자로서의 장인 ‘진창현’을 탄생시킨다.
사실 책 한 권으로 진창현 그 분이 살아온 인생의 고난과 역경 그리고 바이올린 제작 과정의 시련 등을 어찌 다 표현하고 이해되겠는가?
그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뛰어난 성과와 결실을 보고 판단하는 데 그칠 것이다.
그러나 저절로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바이올린은 바이올린 이상의 진가로서 진창현 그 분의 삶을 증언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그에게 바이올린을 쉽게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선인이라는 차별의 시선이 그를 끊임없이 밀어내고 그는 홀로 외로이 결심하고 도전하고 고독하게 작업하는 시간의 반복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는 길은 멀었고 아니 길은 보이지 않았고 안개 속을 헤매는 그는 가난과 차별 속에 어쩌면 ‘바이올린’에 미쳐있었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과연 무엇이 이 복잡한 세상에서 그를 그리 단순하게 앞만 보고 가도록 이끌었을까?
이것은 책을 읽는 내내 내 안에서 드는 질문이었다.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면서 홀로 견디어온 젊은 날의 노력은 질기게도 그를 버티게 했고 하루하루가 그를 쉬운 길로 이끌지도 않았지만 역시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초인적으로까지 생각되었다.
차별을 실력으로 뛰어넘고 노력으로 세상을 설득하는 모습이 ‘천상의 바이올린’ 뒤에 큰 그늘을 머금은 거목으로 내게 교훈이자 굳건한 지표로 다가왔다.
뭔가 제대로 미쳐서 하나만을 집중하고 도달하는 집념 앞에 어려운 시대와 어려운 상황을, 현실이란 테두리 속에 자신을 가두거나 변명으로 머무르지 않는 자세가 ‘천상의 바이올린’ 이 한 권의 책이 내게 넌지시 알려주는 세상사는 방법임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한 권의 자서전이 내게는 열권의 자기계발서 보다 값지고 가치 있게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