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아, 젊었을 때는 무슨 일이든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왠지 인생에서 진 것 같은 패배감이 드는데, 실제로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더라는 말이지. 이봐, 내 말 같은 건 신경 쓸 필요 없어. 미무라 군이라면 뭐든 잘 해낼 수 있을 테니까.” - p179

 

과연 그런 것일까?

아르바이트 주유소 점장의 이 얘기는 진실이었을까? 아니면 예견이었을까?

미무라 슌은 결국 ‘나가사키’를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성장하고 퇴락해간 집안처럼 그의 젊은 날의 모습도 급속히 시들어간다.

 

조선소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사고로 죽고 엄마 치즈루에 이끌려 슌과 유타는 외가에서 살게 된다.

외가는 작은 야쿠자 집안이었다.

항상 온 몸에 문신이 그려진 덩치 큰 남자들이 북적대고 저녁이면 술판에 여자들은 시중을 들어야했다.

집 밖 주변 사람들은 앞에서 굽실대도 돌아서면 손가락질 했다.

결정적으로 집안을 이끌던 둘째 삼촌 분지가 형무소에 들어간 사이 집안의 남자들은 모습을 감췄다.

점점 남자들의 집은 여자와 아이들의 집이 되었고 시끌벅적함은 잠잠한 고요 속에 삼켜졌다.

엄마 치즈루마저 남자를 따라 떠난 뒤 근근히 생기를 이어가는 분위기가 되었다.

 

슌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며 지켜봤던 미무라 가의 모습을 담담하고 쓸쓸한 시선으로 훑어나간다.

나가사키에서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는 남자.

떠나려다 주저앉은 남자.

접힌 날개는 쉽게 펴지지 않았다.

 

요시다 슈이치의 많은 작품들이 이미 국내에 많이 소개된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제대로 접한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나 작품마다의 비교는 아쉽지만 불가능하다.

 

‘나가사키’는 장소로서 공간이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품은 시간이다.

어디이든 다르겠는가?

그 흐름의 변화는 항상 경험하는 모든 이에게 애잔한 슬픔이 배어난 회상도 함께 감내하게 한다.

특히나 접힌 날개를 소유한 자라면 더욱더.

 

곧 요시다 슈이치의 다른 작품에도 시선을 옮겨 다른 이야기도 귀담아두고 싶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근래 부쩍 늘어난 일본 소설 중에는 항상 신경을 거슬리는 번역상의 문제가 숨어있다.

그런데 이 소설 ‘나가사키’는 역자가 국문학을 전공한 자여서 일까?

우리말의 문장으로 제법 매끄럽게 읽힌다.

이것만으로도 반갑고 한결 작품의 질을 드높여 줘서 읽는 데 즐거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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