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 - 2005 페미나상 상 수상작
레지스 조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푸른숲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인간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늙은이가 되지 못해. 아흔여덟 살이 되어도 여전히 어두컴컴한 우물 같은 불행의 순간과 행복의 순간을 간직한 청춘인 거야. 성숙하고 절제된 사람이 되려면, 더 이상 좋은 기분에서 슬픔으로, 찬란한 감탄에서 좌절로 분별없이 건너뛰지 않으려면, 의심을 품고 있는 어린아이에게 단 한 번이라도 가치 있는 조언을 해줄 만큼 충분한 경험을 갖추려면 오륙 세기는 기다려야 할 거다.” (p64 중에서)

 

- 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

그리고 삶은 계속될 것이다. 말도 물론 이어질 것이다.

 

말은 존재인가?

난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유용성 내지 가치는 차치하고, 말을 신뢰하지 않으므로 해서 실체를 불신하는 건가?

아니다. 말은 불확실하고 불완전할 뿐이지 불신할 필요는 없다.

문장이 불완전하다고 해서 거짓은 아니다.

꽤 변덕스러워 일관성을 잃어도 의식의 흐름이 그 따위인 걸 어찌하랴?

말이 변덕스러운 건 실체가 변덕스러운 탓이다.

실체가 변덕스러운 건........

 

“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

아~!이것이 프랑스 소설이라는 건가?

제대로 맛을 보고 확인한 셈이다.

장황하고 다변적이고 관념적이며 일상을 얘기하지만 일상이 아닌 것이 되어 버리고 주변적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주인공은 사라지고 말만 둥둥 떠다니며 중심을 차지하고 위력적이면서 모호한가 하면 위협적이다.

그러니까,

내가 서평이라고 몇 자 긁적이면서 이리도 호들갑스럽고 횡설수설하는 건 모두 이 빌어먹을 “프.랑.스.소.설” 탓이다.

이 얼어죽을 한 권의 프랑스 소설이 배설하듯 뱉어낸 말에 치이다보면 얼이 빠지고 제 정신이 아니게 된다. 그러므로 난 전혀 잘못이 없다. (그래도 난 이성적인 상태가 분명하다. 변명부터 늘어놓으며 자기 방어부터 제대로 하는 걸 보면)

 

“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

제목을 한참 들여다본다. 그리고 원제를 쓰윽 훑어보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Asiles de fous"

불어를 전혀 모르는 나는 종이 장을 뚫을 것처럼 주시해도 뜻을 알 리 없다.

그래도 그렇지.

문장의 길이로 봐서 몇 단어로 된 이 짧은 제목이 최소한 “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같은 긴 문장으로 둔갑할 수는 없다는 걸 이내 파악하고 나의 발작은 시작된다.

빌어먹을, (책을 만든 사람들을 향해) 은근히 질겅거리듯 말을 씹는다.

너네 책제목에 손댔구나?

그리고 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 이건 또 뭐냐?

‘스물아홉’을 의인화해서 ‘그’로 표현하고 ‘나’를 떠나므로 해서 ‘난 서른이 되었다’는 뭐 그런 뜻이냐? 내 나름대로 재빨리 넘겨짚어 본다.

 

숙주의 가죽을 뚫고 들어가 몸통 속을 휘젓고 다니며 야금야금 뜯어먹고 파먹고 빨아먹어도 시원찮을 판에 입구부터 암호에 걸려 봉쇄된 기분이 참 떨떠름하다.

이런 경험을 종종 겪는다.

그 잘나빠진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처음 봤을 때도 대체 참을 수 없는 건 ‘존재’인지 아니면 ‘가벼움’인지 몰라 끙끙대다가 책 뒤편 어느 구석에서 하나의 문장으로 만나 겨우 알았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곧 참을 수 없는 건 가벼움이었다.

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

이것도 딱 그 짝이다. 성질 급한 나는 소설을 어느 정도 넘기고서야 알게 되었다.

남자가 스물아홉 살의 여자를 떠났다는 단순한 말을.

그러나 동시에 이 문장은 이 책의 시작이요 끝이며 전체이자 부분이다.

“그가 나를 떠났다”는 사실 하나가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이별이 사랑을 얘기하고, 사람을 관통해서 세상을 표현하고 세상은 온갖 만물을 담는다.

그래, 지구는 중력이 작용해서 지구 표면을 인간은 유영하듯 넘실넘실 춤을 추며 걸어 다닐 필요가 없지 정도로 단순명쾌한 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사람이 둥둥 떠다니지 않는 대신 말이 공기 속에 숨어서 염탐하다 달콤한 꿀이 되고 총알이 되고 비가 되고 빛이 되고...또는 창조하고....틀어쥐고...

분명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말이 맞긴 맞나보다.

 

책 첫 장을 펼쳐봐라. 갑자기 말들이 벌떼가 되어 달려든다.

난 깜짝 놀라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엉덩이는 하늘을 향해 들려 있다.

마치 닭들이 자기 몸뚱이보다도 작은 바위 뒤에 대가리만 숨기면 안전하다고 느끼며 숨어든 꼴이다. 그가 떠나는 바람에 스물아홉의 그녀는 정신분열증이라도 일으켰는지 쉴 새 없이 떠들어댄다. 그래 그녀는 제 정신이 아니었던 거야. 읽는 내가 오히려 정신을 추스르고 있을 즈음 갑자기 남자의 아버지가 나타나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줄줄 물이 새듯 말이 새고 있었다. 난 순간 그가 고치겠다고 가져온 새 수도꼭지를 뺏어서 그의 입에 달아주고 싶었다. 물론 이음새도 단단히 막아서 더 이상 똑똑 물방울이 떨어지는 일 없듯 말도 꽉 잠가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전화 통화를 시작으로 남자 어머니의 등장에는 아니 어머니의 말의 등장에는 주인공 스물아홉 그녀처럼 나도 아예 입을 다물어 버렸다. 침묵을 지키다 말에 넌더리를 내고 있을 때, 드디어 떠나신 님 그 남자가 술에 쩔어 독백을 한다. 사건의 당사자에게서 직접 뭔가 듣고 확인하고 싶었던 나는 이 술주정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참아야했다. 휴~!!참고 참다가 보니 책 한 권이 끝났네?

 

빌어먹을, 책 속의 인물들이 토해 낸 말들을 내게 꾸역꾸역 먹게 한 작가 레지스 조프레인지 조프레 레지스인지 대체 어떤 작자일까?

그는 어쩌면 은밀한 비의가 담긴 주문을 외워 최면을 거는 요상한 마법사일지 모른다. 뾰족한 모자를 숨기고 시치미 떼고서 아닌 척 곁눈질로 쳐다보는 책 날개 속의 사진에서 나는 그것을 미리 꿰뚫어 봤어야 했다.

지금도 지하 어딘가에서 이말 저말 섞어 영묘한 말과 상황을 만들고 있는 아주 고약하고 괴팍한 연금술사일지도 모른다.

이 고약한 작자가 하필 꽤 유능해서 그가 젓가락을 휘휘 저어 만든 한 잔의 또는 한 권의 책을 마시자 나는 그만 두 어깨가 축 처지고 삽자루라도 하나 구해 어깨에 둘러맨 다음 집 뒤곁으로 가서 땅을 열심히 판 뒤 내가 들어갈 관이라도 묻고 그 속에 들어가 드러누워 편히 쉬었으면 딱 좋을 성 싶다.

 

한마디로 떠난 건 ‘그‘만이 아니라 ’세상’도 떠나고 ‘읽는 나’도 떠난 것이었는데 결국 돌아서보니 모든 게 내 등짝에 다 달라붙어 나와 함께 와 버렸네?

이거 대체 사는 게 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 꿀꿀하면서도 아찔하면서도 축축하면서도 건조해지는 희한한 맛에 빠져 쌀뜨물처럼 뿌옇고 시커먼 찌꺼기들이 둥둥 떠다니는 구정물 속에서 꼬르륵꼬르륵 가라앉을까봐 버둥거리면서도 왜 물가로 나가려 들지 않는지 내 자신도 모르겠다.

이 기분 이대로 잠시 동안 젖어있고 싶은.....자학(?)이라도 빠진 걸까?

레지스 조프레. 주문을 걸어도 제대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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