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행진 - 3천 년을 이어온 오만한 통치자들의 역사
바바라 터크먼 지음, 조석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미래에도 이미 내가 들은 것과 똑같은 주제가 다시 울려 퍼지리라.

이성적인 사람이 이성적인 목적을 위해서,

또는 미치광이가 어이없는 일과 대참사를 위해서

똑같은 짓을 저지르지 말란 법은 없다.“

-조지 캠벨, 《신의 가면 : 원시신화학》, <서문>에서

 

윗글은 이 책 [바보들의 행진] 첫 장을 펼치면 만나는 서두를 장식한 글귀다.

참으로 대단한 축복과 저주의 예언처럼 들린다.

 

난 가끔 그런 것이 궁금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저 미국 워싱턴 백악관의 주인은 세계 모든 정보가 모이고 최고의 두뇌에 둘러싸여 있으며 싱크탱크에서 올라오는 그 많은 아이디어, 하다못해 24시간 쉬지 않고 공중을 맴도는 인공위성으로부터 감지되는 세계의 긴밀한 정보들이 쏟아져들 텐데 그 속에서 솎아내고 취합한 내용물들로 판단하고 결정한 정책이란 얼마나 완벽할 것인가?

항상 미래를 예견하며 준비한 시나리오와 시뮬레이션을 통해 어느 정도 검증도 했을 물샐 틈 없는, 세계 최강의 국력으로 빚어낸 미국의 정책이란 분명 이런 결정체일 것이다.

뉴스를 통해 쏟아져오는 부시의, 또는 그 외의 어리석어 보이는 선택들도 사실은 내가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그렇지 바로 미국 스스로의 국익을 위해서는 최상의 계획들일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이건 반대로 우리의 정책이란 어디를 봐도 엉성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졌으리란, 불안감이 감도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모르겠다. 은연중에 조금은 사대주의적이고 아직도 패배주의적인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지도...

 

그런데 이런 차이에 대한 답을 얻는 데 많은 힌트가 될 수 있는 책을 한 권 만났다.

[바보들의 행진].

참 단순하면서도 노골적인 조롱이 이미 제목에서부터 엿보인다.

바로 가로질러 적혀있는 부제목에서 이런 의미는 더욱 확연하게 도드라져 보인다.

“3천 년을 이어온 오만한 통치자들의 역사”

 

그러니까 저자 바버라 터치먼은 3천 년 동안 면면이 이어져온 통치자들의 어리석은 정책 결정과 그것에서 비롯된 실정들로 얼마나 많은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봐왔는지 커다란 네 가지 사건들을 통해 역사적으로 더듬어 밝혀 정리하고 있다.

저자의 조건 기준도 역시 단순하게 출발한다.

철저히 국익에 반한 것.

 

그리고 3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처음으로 언급한 첫 사례는 우리도 잘 아는 트로이 목마다. 지금까지도 많은 예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친 소재로 쓰이는 이 얘기에는 인간의 모순과 문제를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다소 꿰뚫고 있어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심증을 울리며 자극하는 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것이다. 왜 트로이는 전쟁 중인 적 그리스군이 어느 날 갑자기 성 앞에 커다란 목마를 놓아두고 사라졌는데도 의심 없이 그것을 성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을까? 이런 어리석음의 발로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물론 이들 중에도 신중하게 판단하고 의심했던 자들이 있었다. 우리에게도 낯익은 두 아들과 함께 큰 뱀에게 공격받아 고통스런 표정으로 일그러진 라오콘상의 주인공 라오콘이나 카산드라라는 인물들은 경고를 했지만 모두 무시되고 배척당했다.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은 르네상스 시대 여섯 명의 교황들이다.

당시 여느 나라 세속 왕들보다도 더욱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비종교적 행실로 일관한 교황들은 결국 기독교분리까지 몰고 오는 결과를 낳았다.

 

18세기 북아메리카라는 커다란 식민지를 지배하던 영국은 그들의 안하무인격인 조세제도를 통해 위압적으로 통치하다 결국 독립전쟁으로 미국을 잃는 우를 범해서 극대한의 국익을 상실하고 만다.

 

마지막 미국의 역사를 통틀어 최대의 치욕이자 악몽인 베트남 전쟁을 통해 미국대통령들이 보인 추태와 실정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결국 그들의 공통점은 어리석음과 독선과 아집, 무지가 낳은 인간의 비합리적인 모습이다.

문제는 이들이 한 개인으로서 저지른 실패가 아니라 그들이 통치자라는 위치에 있었기에 빚어진 역사와 현실 속의 참담한 비극적 경험이다.

왜 그들은 역사 속에서 저지른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는가?

왜 그들은 역사 속에서 배우려 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가?

이것이 저자가 58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통해 우리에게 남긴 통렬한 의문이자 과제다.

통치자로서 그들과 그들에게서 통치 받는 일반 국민들로서 우리는 또한 과연 자유로울까?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우리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함께 묶이고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나는 다시금 심사숙고하며 역사를 바라보고 현재를 살아갈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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