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소개문에도 실린 내용이며 곱씹을수록 맛있는 단어 조합처럼 느껴졌다. '종이의 밀실'이라니! 편지를 '종이의 밀실'로 표현하겠다고 선언한 사람은 처음이라 흥미가 생겼던 것 같다. 그리고 연애담처럼은 보이지 않는 제목까지. 책 소개문을 읽지 않았으면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내용이다. 소설을 모두 읽고 처음부터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이 책은 확실히 소설이다. 그런데 소설이라기엔 너무 글은 산뜻하며 내용은 분절된 인물들의 감정으로 점철되어 있기만 하다.
'엔터테인먼트 소설'은 일본 문학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소설의 한 갈래인데 라이트 노벨까지는 아니더라도 심심풀이로 빠르게 읽어 나갈 수 있는 분량의 소설 정도의 느낌이다. 『미시마 유키오의 편지교실』도 비슷한 면에서 엔터테인먼트적 정체성을 간직한 소설인데 이 소설의 특징이 조금 재미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왔다 갔다 하는 다중 인물들의 편지로만 구성된 소설이라는 점이 그렇다. 처음에는 누가 누구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고 멘털이 정상으로 표상되는 인물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기에 이입이 힘들었는데, 이리도 뒤죽박죽인 인물들이 서로 얽히고설킨 채 사랑을 구성하는 모습이 결국에는 하나의 사적인 그림으로 완성됨으로써 그들만의 유머와 재미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에는 4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있다. 영어 학원을 운영하는 수완 좋은 마담 '마마코'와 그의 절친한 의류 디자이너 친구 '야마'가 한 쌍으로 서브플롯을 이룬다. 다음으로는 젊고 당차며 아름다운 아가씨 '미쓰코'와 그를 사랑하는 젊은 혁명가 연출 꿈나무 '다케루'가 한 쌍으로 또 다른 서브블롯을 이룬다. 추가로 이들 사이에 시시때때로 끼어드는 인물인 엉뚱 발랄 '도라이치'가 있다. 인물 설명을 하기에는 이만큼 정확한 말이 없이란 생각이 드는데…… 나의 언어에 조금이라도 차별적인 요소가 들어 있다면 그건 원작이 원인일 확률이 높다. 대체로 미시마 유키오는 여성의 관능적인 몸과 미모를 바람직한 '여성성'으로 규정하는 묘사를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다시 인물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이들은 모두 아는 사이다. 친교의 깊이는 서로 다르지만 어쨌든 한 우리에 갇힌 듯 함께 소설이라는 공간을 점유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를 쓰며 마음을 고백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관계를 진전시킨다. 그런가 하면 다른 인물-남녀노소를 불문하고-을 모함하거나 이간질하는 듯한 편지를 쓰며 관계를 망치려들 때도 있는데 좌우지간 이들의 '감정'을 이해하기에는 조금 복잡함이 있는 소설이다. 이들은 오로지 편지로만 사유하는 인물들이다. 따라서 독자는 이들의 머리 꼭대기에서-3인칭의 관점에서라는 뜻이다-형세를 살피거나 감정을 '전지적으로' 파악하기에는 힘들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분절성이 존재했기 때문에 소설이 재미있어지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의 시각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 벌어지는데……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찾아낸 것처럼 빠져드는 구석이 있는 연애 소동극이었다. 전술했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정상인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더욱 엔터테인먼트적으로 감상하게 된 것도 같다. '멘헤라'와 '얀데레' 사이(?) 글쎄. 정석적이고 심도 있게 묘사한 인물들은 아니고 다소 연극적이라고까지 느껴지는 인물들의 무대(종이의 밀실)라 이질적인 재미를 느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호노오 다케루'라는 젊은 남성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아무래도 미시마 유키오의 자아가 가장 대표적으로 반영된 인물이라 그럴 것이다-물론 다른 인물들에게서도 작가 본인이 투영된 듯한 흔적을 이것저것 발견할 수 있다. 오해는 하면 안 될 것이, 나는 미시마 유키오를 썩 좋아하진 않는다. 다만 그가 젊음을 투영한 '호노오 다케루'라는 인물이 보이는 영화적 매력이 소설에서 유독 특별하게 비쳤기 때문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묘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