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의 온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4
정다연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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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를 향한 사랑



정​
다연 시인의 시집 『내가 내 심장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니까』(2019)를 읽었을 때는 내가 이미 시집의 물성에 익숙해 마지않은 때였다. 그때는 하루에 세 권씩 시집을 읽었고 한 해에 100권에 달하는 시집을 찾았을 때였다. 탐독의 경험은 나에게 큰 이득을 안겨주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읽은 시집들이 모두 효용적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시집의 문제라기보단 나의 문제였다. 기술적인 부분에 치중해 시를 온전히 읽은 적이 있긴 했는지……솔직히 확답할 수 없다.

정다연 시인의 첫 시집을 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좋긴 좋았는데 정확히 무엇이 좋았는지 설명할 겨를도 없이 다른 시집을 읽었다. 겨우 떠올린 인상은 ‘따뜻해서 좋았다’ 뿐. 무엇이 어떤 방식으로 따뜻해서 좋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시인의 에세이를 읽어보기로 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급하지 않은 때에-그러니까 지금-다시 읽은 시인의 시적 산문이 나에게 어떤 감각을 일깨워줄 수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다시 읽은 시인의 문장은 두말할 것 없이 깨끗했고 아름다웠다.


시인의 에세이를 읽어보기로 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급하지 않은 때에-그러니까 지금-다시 읽은 시인의 시적 산문이 나에게 어떤 감각을 일깨워줄 수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다시 읽은 시인의 문장은 두말할 것 없이 깨끗했고 아름다웠다.

시인의 이름을 자꾸만 거꾸로 발음하게 된다. 정다연. 다정. 다정함. 그런데 희미하게 스러지다가도 다시 생명력을 보이는 다정. 아주 따뜻했다. 일상의 사랑을 자기 삶의 원동력으로 해석하는 시인의 태도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온정이 느껴졌다.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었고 삶은 출생 이후의 비관이라고 생각하는 나와는 다른 삶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시인은 오래된 누군가를 만나고 그리워하고 때로는 사람 아닌 현상을 그리워한다. 얼굴의 틀을 하지 않은 무언가를 오래 생각하면서 행복을 찾는다. 잘은 모르겠지만……사랑의 이해에 밝은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내처 머릿속에 잠자코 앉아 있다. 이렇게 잘 읽히는 에세이. 이렇게 평범한 사랑을 담은 에세이. 나는 읽으면서 행복했지만 그러다가 슬퍼졌다. 잠깐씩.

“시인은 어딘가 슬픈 사람”이라고 시인의 지인이 말했다는 내용이 에세이에 등장한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싶다. 슬픈 사람은, 사람이라서 슬픈 사람이 이해할 수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도 가끔 시를 쓰지만 그건 내가 슬픈 시인이라서가 아니라 슬픈 사람이라서 더 잘 보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 내가 잘못 읽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믿고 싶은 것을 그대로 읽기로 했다.

시인들의 에세이는 좀 어려워서 재미있다고 늘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번 에세이는 술술 잘 읽혀서 더 어려웠다. 나와 조금 가깝다고 생각되는 (괄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괄호)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확실한 건 설명할 수 없는 이 (괄호)가 나에게 사뭇 확실한 감각을 일깨워줬다는 점이다. 특히 시인이 가족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였다. 오빠와 처음 간 패키지 유럽 여행, 딸과 엄마의 잠정적 동거……. 그리고 에세이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인 반려견 ‘밤이’까지. 가족이란 성질은 사회적이되 유별나게 존재하는 특징을 가져서 유달리 어렵게 읽혔다. 정확히는 ‘느리게’ 읽혔다. 물리적으로는 빠르게 읽었지만. 마음으로 쉽게 떠나보낼 수 없는 문장들. 발을 떼기 힘든 산책길 속 풍경처럼.

그동안은 에세이를 잘 읽어버릇하지 않아서 몰랐지만 이번에 확실히 느꼈다. 에세이는 뭐랄까, 삶의 다른 발목을 보는 느낌이었고 또……모르는 이야기로 내 삶의 낯섦을 밝히는 신기로운 느낌이었다. 나와는 아주 딴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모순적으로 시인의 문장에 공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건 정말, 정말 낯설다. 가볍고 산뜻한 에세이가 아니었다면 알아도 모른 채 살았을 어떤 감각을 운 좋게 껴안은 읽기였다.

시인이 중학교에서 시 창작 교실을 열었던 경험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죽을 때까지 영원히 자고 싶다는 아이. 공부가 아닌 덜 풀린 고민 때문에 잠드는 아이. 오래 기억하게 될 문장이었다. 그것은 실제로 어른이 내가 청소년 시절부터 지금까지-어쩌면 영원히-해왔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만하고 싶고 더 자고 싶은 마음이 어떤 슬픔에서 쏟아진 감각인 줄 알기에 이 글은 나와 성질이 다른 이란성쌍둥이처럼 읽혔던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다른 독자들도 비슷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은데……간결하고 산뜻한 문장으로 내면의 온기를 바라보고 싶은 독자에게 이 에세이를 추천하고 싶다.



“언니, 요즘 나는 먼 미래를 생각해. 그러면 어떤 건 시간으로부터 지켜낼 자신이 없더라고. 그런데 언니를 생각하면 시간이 비껴가더라. 어떤 사람이 길에 우두커니 서 있으면 부딪히지 않으려고 살짝 돌아가는 것처럼. 옅은 바람이 나무를 관통하지 않고 모든 가장자리를 건드리며 지나가는 것처럼. 언니가 그대로 있더라고. 그렇게 되길 바라는 소망이 아니라 또렷하게 감각되는 예감이.”

p.256


나에게도 지켜지는 나무가 있었다면. 있다면 내가 알 수 있기를. 좀 더 빨리 사랑할 수 있기를. 오늘은 단 한 번이고 하나밖에 없는 하루를 미래의 내가 용서할 수 있기를. 시인의 경험처럼, “지나치게 평범한 나의 일상을 사랑이 대단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감사합니다.

해당 게시물은 '현대문학'에서 도서를 제공받아(서평단) 주관적으로 쓰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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