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31
프란츠 카프카 지음, 송경은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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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은 코믹하고 심오하면서도 난해하기로 유명합니다. 덮어놓고 읽기에는 기꺼운 고전처럼 느껴지는 작가의 글을 읽어볼 생각을 했던 시초는 초등학생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웬 바퀴벌레 이야길 하는 혈육의 감상문이 황당무계하게 느껴져 따라 읽었던 기억인데요. 그렇습니다. 변신이 카프카와 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카프카를 읽은 어린이 대부분의 기억과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저는 호기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렇구나. 바퀴벌레로 변했구나.” 이게 독이 되었는지 득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훗날 저는 별다른 불만 없이 시적 세계를 온몸으로 감각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다만 어린이 때의 무감한 독서 경험 때문이었을까요. 카프카를 떠올리면 말할 수 있는 3대 소설 중 단 하나만이 제가 아는 카프카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문학을 전공하면서도 읽어볼 생각을 안 했다는 것이 말이죠.

고등학생 때 문예출판사에서 출간된 세계문학선을 몇 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가장 좋아했죠. 생각건대 웬만한 러시아 문학보다는 재미있을 구석이 많은 카프카의 소설을 왜 이제야 읽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골똘히 생각해보면 카프카만큼 단순한 불행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이번에는 표지 디자인이 개편되어 새롭게 재출간된 문예세계문학선을 읽었습니다. 그 첫 작품으로 카프카의 3대 소설 중 하나인 실종자라는 장편소설을 읽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읽었던 나의 첫 카프카와는 인상이 조금 달랐습니다. 카프카가 그린 주인공 카를은 잰걸음으로 성장하는 미성숙한 존재였으니까요. 계속해서 어디론가 향하지만 정주하지 않습니다. 끝없는 불행들이 그를 가로막고 있죠.

일전에 독일의 교양소설에 관해 배운 기억이 납니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를 읽으면서였습니다. 개인 주체의 성장에의 낙관이 문학에서 진보의 형태로 발현되었다고 설명되는데요. 이 소설은 그런 의미에서 근대 사회의 컨베이어 벨트위의 정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듯합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소설이란 무릇 성장이 필연적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성장과 발전이 아니라면-그것이 개인의 일일지라도-문학적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소설이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며, 어떻게 인물의 마지막 행보를 결정하는가에 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캐릭터의 최선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카프카가 말한 우리를 아프게 하는 책이란 결국 성장의 바깥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물이 흘러가게 내버려 두고 세계의 온갖 불행을 뒤집어쓰도록 이끎도 불능 감각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황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카를이 겪는 불행은 다소 갑작스럽고 무능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요. ‘카를이 끝내 물질세계에 관한 자신의 고집을 내려놓기는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독자들의 눈에는 답답하기만 한 거죠. 터무니없는 사람들에게 당하고 마는 그의 순진함이-미성숙을 기원으로 한다고 해도-매번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여행 가방을 맡기는 순간부터 단 한 번도 카를은 달라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달라진 면모가 있다면 그의 환경과 태도 정도겠지요. 그는 순진하리만큼 올곧은 마음을 점점 잃고 불행을 흡수하는 쪽으로 미국 사회에 녹아드니까요.

하지만 카를이 처절하게 당해오지않았더라면, 그러니까 못지않게 행복하고 희망적인 성장의 편에 섰더라면 이야기가 흥미로웠을까요? 끝없이 나아가는 그의 이야기를 담아내기엔 아주 지루한 시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독자들은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닌 이야기를 잘 찾아낼 수 있으니까요. 신화 바깥에 존재하는 우리의 이야기야말로 처절한 삶의 열정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이야기 도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불행은 가학적이고 불행은 우리가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카프카의 가벼운 이야기들은 우리가 너무 오랜 시간 불행을 바라보지 않게 만들기도 합니다. 잰걸음으로 미국 이곳저곳을 활보하는 우리의 주인공 카를이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마도 이제껏 해왔던 대로 허무맹랑한 유랑을 계속할 듯한 느낌이 드는데요. 페이지 뒤로 실종된 소년의 이야기가 미완으로 남겨짐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걱정스럽습니다. 그가 가끔은 배 터지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선한 사람들과 온정을 나누고, 깊고 포근한 잠을 잤으면 좋겠습니다.

 

개편된 표지 디자인에 관해……

개편 전 기존 일러스트를 불규칙적으로 쪼개어 보여주는 방식도 일률적이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좋았는데요. 고전의 느낌보다는 세련된 현대 문학책을 만지는 느낌이라 색달랐습니다. 표지의 지질이 달라진 느낌은 없으나, 서가에 꽂아서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디자인 개편이었던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본 게시물은 도서를 제공받아(서평단)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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