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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백범 김구 ㅣ 청소년평전 22
김민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7년 10월
평점 :
며칠 전 6.25전쟁 72주년이었지만 원래 하나였던 나라가 둘로 나뉘어진 채 70여년 넘게 있다는 걸 가장 통탄할 인물이 바로 백범 김구 선생이 아닐까 싶다.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이 타이틀에 걸맞는 백범 김구 그의 일대기를 이번 자음과모음 청소년평전 시리즈에서 읽어 보았다. 우리의 역사 가장 암울한 시기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한 백범 김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꼭 알아야 할 인물이기에 평전에서 들려 줄 김구의 일대기가 사뭇 궁금했다.

스물 남짓의 청년이 대동강 치하포 나루에서 왜놈을 죽인 사건으로 책은 시작됐다. 그가 살인한 이유는 바로 국모를 해친 원수를 갚기 위함이었다. 청년 김창수(김구), 그는 일본인 쓰치다를 죽여 나라의 치욕을 조금이나마 씻기를 원했다.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하는 남다른 기개는 엄격하고도 옳곧은 부모님에게서 이어받았다. 원래는 양반이었으나 가문의 몰락으로 온갖 멸시와 가난에 힘든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그의 나라를 생각하는 담대한 마음 누구보다 컸던 것이다.
그 시절 우리나라가 밖으로는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고 있었다면 안으론 부패한 관행때문에 곪을대로 곪아있었다. 상놈의 한을 풀기 위해 과거에 응시했지만 김창암(김구)은 썩은 과거 제도에 실망하며 뜻을 접었다. 과거를 포기한 채 자신의 앞날에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어리고 상놈인 자신에게 높임말을 쓰는 양반인 오응선을 만났다. 양반이나 상놈이나 다 똑같이 귀한 사람이라는 평등사상을 주장하는 동학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었다. 이때 김창암이라는 이름 대신 김창수라고 개명을 하고 동학에 몰두했다. 이렇듯 동학은 김창수를 누구에게나 공손하면서 또 당당하게 마음과 행동을 변화시켰다.

모두 평등하고 사람답게 사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김창수와 동학 교인들이 바라던 세상은 역시나 외세 앞에서 그 뜻이 좌절되고 말았다. 한국사를 배울 때 익히 들어 알고 있던 동학농민운동. 한국사를 잘 알고 있는 우리 중딩이도 동학농민운동에 김창수(김구)가 함께 동참했던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며 놀라워했다. 동학농민운동이 결국 실패로 끝났기에 뜻을 꺾이며 순탄치 않는 김창수의 운명이 우린 참 안타까웠다.
동학농민군을 일본군이 탄합하자 김창수도 쫓기는 신세가 되는데 이때 예전의 인연이 있었던 안태훈에게 신세를 졌다. 안태훈 누군가 했더니 그는 바로 안중근의 아버지였다. 안중근 하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우리의 위대한 독립운동가 아닌가. 안태훈의 사랑방에서 김창주는 학자 고능선을 만나 많은 가르침을 얻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김창수는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온 마음과 몸을 바치는 것이라는 걸 깊이 깨달았다.

자신이 걸어가야 할 인생의 길을 찾았지만 그 길은 무척 험난했다. 앞서 나왔던 일본 장교 쓰치다를 죽이고 감옥에 갇혔지만 김창수는 당당하게 외쳤다. 재판장에서 나라의 원수를 갚으려고 죽인 거라고 일본 경찰과 관리들을 호통쳤던 것이다. 그가 했던 말과 재판 소식은 곧 멀리 퍼져 많은 사람들을 감복시켰다. 올곧은 기개로 죽음을 불사하는 그 당당함을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늘도 감명 받았는지 다행히 사형 집행이 정지 되었다. 하지만 쉽사리 석방이 되지 않자 끝내 탈옥을 하고 말았다. 이때 김창수에서 김구로 개명을 하며 쫓기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의 기개는 고난 속에서 더욱 단단해졌다. 새로운 생각과 제도를 발전시켜 강해져야 하기 위해선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김구는 국민 교육을 위해 일하기로 마음 먹었다. 예나 지금이나 교육의 중요성은 한결같구나.

김구가 나라를 위해 교육에 온 힘을 쏟을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정세는 그리 좋지 못했다. 러일전쟁이 일어나면서 일본이 승리했고 우리나라를 위협하며 결국 을사늑약을 맺었다. 대한제국의 외교권 박탈은 곧 나라를 빼앗겠다는 게 아니고 뭐란 말인가. 나라 밖으로 힘을 잃었지만 나라 안은 만세 운동이 들불처럼 일었다. 김구 역시 당연히 만세 운동에 동참했으리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그는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던 것이다. 만세 운동에도 참여하지 않고 일본 현병의 감시를 무사히 따돌린 그는 상하이에서 대한재국 임시정부를 세우는 일에 뛰어들었다.
일본의 탄압만큼이나 힘든 건 초심을 잃어가는 내부 사정이었다. 임시정부를 지켜는 일에 나선 김구는 국무령에 취임했다. 정부 조직을 새롭게 바꾸고 살림을 꾸리는데 온 힘을 기울였지만 정부의 살림살이는 나날히 어려워졌다. 종일 굶다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배추 잎을 주워 먹기도 했다는 그의 모습이 감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궁핍의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떨어져 있는 두 아들을 생각하며 '백범일지'를 썼다. 백범일지는 일본과 목숨을 건 싸움에서 자신의 일생을 정리하는 심정으로 써내려간 김구에겐 유서와도 같았다.
백범 김구편 후반부엔 함께 독립운동을 한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담아 읽는 내내 가슴이 뭉클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이 한마디가 주는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이들의 위대한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독립운동가는 물론이오 그들의 후손에게 진 큰 빚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곧 있으면 다가오는 8.15 광복절. 우리 동포의 힘으로 한국광복군이 만들어지고 그들이 대한의 국군으로 활약을 막 하려 할때 해방은 예상하지 못하는 순간에 찾아왔다. 8월 15일 일본 왕이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하면서 우리 조국이 해방된 것이다. 하지만 김구는 조국의 해방을 마음껏 기뻐할 수 없었다. 그것은 앞으로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손으로 해방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은 지금까지 조국 분단이라는 아픔으로 남아있지 않는가.
겨우 일본에게 해방이 되었건만 다시 강대국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우리 민족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 김구는 신탁 통치 반대 운동에 나섰다. 그런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반도는 두 국가로 분열되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결국 이승만 독재 정권에 의한 암살 총탄에 숨을 거둔 백범 김구. 그가 그토록 소원했던 통일 국가는 이제 남은 우리 후손들의 몫이라 하겠다.

몇 년 전 아이들과 함께 처음 가봤던 독립기념관이 문득 떠올랐다. 거기서도 백범 김구 선생님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때 전시관에서 봤던 나룻배 모형이 이제야 아! 김구 선생님의 은신처라는 걸 제대로 알겠구나.
청소년평전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백범 김구편을 읽으니 다시 한번 독립기념관에 가고 싶어졌다. 두 번 세 번 가도 좋을 그 곳엔 우리나라를 위해 일생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마음을 느낄 수 있으니까.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 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백범 김구 선생님이 바라는 완전한 자주독립은 아닌 것 같다는 우리 중딩이의 말에 나역시 공감했다. 6.25전쟁 몇 주년이 아니라 완전한 대한민국 자주독립 통일 몇 주년을 새길 날이 곧 오길 바라며... 기회가 된다면 '백범김구기념관'에도 꼭 가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