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전도사 리처드 파인만 청소년평전 8
태기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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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물리학자 하면 우리는 곧바로 아인슈타인을 떠올린다. 아인슈타인이 20세기 전반기를 주도했다면 후반기 과학사를 이끈 또 한 명의 천재 물리학자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리처드 파인만이라고 한다. 아인슈타인의 명성과 업적을 넘어선 인물로 평가 받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그의 일대기를 자음과모음 청소년평전 시리즈에서 처음 만났다.

"명예는 아주 귀찮은 겁니다. 그건 견장이나 제복 같은 거죠. 아버지는 저를 그렇게 길렀습니다. 저는 명에라는 게 못마땅합니다. 그건 제 기분만 망치니까요."


이처럼 노벨상을 받게 되면 따르는 큰 영예와 명성 모두 파인만은 바라지 않았다. 그는 뛰어난 과학자이자 꾸미지 않고 거짓이 없는 솔직함과 자유로운 성품으로 지금까지 학생들로부터 존경받는 교수였다. 과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열린 사고 방식은 권위를 부정하고 아들이 과학자로 성장하기 원했던 그의 아버지 영향이 매우 컸다. 아버지의 교육철학이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을 있게 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누구나 영광으로 여길법한 노벨상 수상을 거부하려 했다는 점만 봐도 그는 확실히 남다른 인물이었다. 과학자로서 새로운 것을 발견해 냈을 때 느끼는 기쁨이 최고의 상이자 명예라 생각했던 그야말로 진짜 과학자라고 느껴졌다.


아주 어릴때부터 과학을 배운 파인만은 모든 것이 아버지의 덕분이라고 했다. 태어나기도 전에 아들이면 과학자가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아버지는 정작 아들에게 과학자가 되라고 한번도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교육방식은 자상했고 아들을 세심하게 배려했다. 파인만은 과학이 무엇인지 과학적 사고와 관찰력 그리고 인내 등 아버지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때 배웠던 것들은 파인만이 과학자가 되는데 가장 중요하고 든든한 밑거름이 되어 학자로서의 순수성을 잃지 않음 물론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게 해주었다.


유대인이었던 파인만은 유대인 학생 수를 제안하는 인종차별로 원했던 컬럼비아 대학 대신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오로지 과학에만 흥미가 있었던 탓에 다른 과목은 과학에 비해 잘하지 못했다. 그런 파인만을 잘 알았던 지도교수는 세상의 다른 부분도 봐 둘 필요가 있다며 대학원을 다른 학교로 진학하길 조언해 주었다. 우연히 아인슈타인 앞에서 세미나 발표를 했던 파인만은 자신의 발표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 받았지만 새겨듣지 않았다. 아무리 위대한 이론이라도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아인슈타인은 인정했는데 이때 파인만은 자기 이론의 우수성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이론이나 생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번 청소년평전 과학의 전도사 리처드 파인만편은 중간 중간에 따로 시대적 배경이나 과학적인 부분의 관련 정보를 좀더 자세히 알려주는 코너가 있었다. 파인만은 아인슈타인처럼 원자폭탄 개발 게획에 참여한 과학자였다.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도 따로 소개해 놓았다.

우라늄 공장의 보안 문제 때문에 공장 내부의 안전 문제가 뒷전일 때 그걸 알게 된 파인만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무리 비밀을 유지하기 위함이지만 그것이 안전보다 위에 있을 순 없기에 그는 단호했다. 솔직한 성품과 물리학자로서의 양심은 파인만다운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히틀러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이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원자폭탄이 실제로 투하되고 나서 그 참혹함에 모두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리처드 파인만도 마찬가지였다. 파인만은 처음엔 원자폭탄이 참혹한 재앙을 불러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과학이 원자폭탄 같은 무기 개발로 이용되어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 장담하지 못하게 될 줄은 그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원자폭탄 개발 이후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정신적 혼란에 빠져 지독한 허무주의자가 된 파인만. 폭탄 개발에 참여했단 죄책감과 아내를 잃은 상실감으로 힘겨워 할 때 교수 겸직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받았다. 예전의 열정과 자신감을 잃어버렸지만 그는 프로젝트 책임자 였던 밥의 충고로 죄책감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물리학적 탐구를 찾으며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가 좋아하는 과학이 그를 다시 살리는 셈이었다.


파인만은 새로운 즐거움이나 모험을 찾아다니던 중 남미 브라질로 가게 됐다. 브라질에서 강의 경험 강연을 하는데 이때도 솔직한 성격의 소유자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브라질 과학 교과서에는 과학이 없다는 그의 말은 브라질 교육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오직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방법만 가르치는 과학은 진짜 과학이 아니라는 파이만. 그 말은 비단 브라질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나라 교육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이 아닐까.



파인만의 강의는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많기로 유명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강의를 이끌었는데 번뜩이는 그만의 기지는 강의를 들으러 온 모든 사람을 사로잡았다. 자질구레한 설명이나 어려운 전문용어 없이 생활 속에서 첨단의 물리학 개념을 자연스레 이끌어 내는 강의라면 충분히 솔깃하지 않을까. 그의 강의 비결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당신이 강의하는 내용을 학생들이 왜 배워야 하는지, 그 점을 명확하게 파악하라. 일단 이것이 분명해지면 강의 방법은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리처드 파인만의 마지막 업적은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참사의 원인을 밝혀내는 거였다. 다른 조사원들이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 달려들때 파인만은 차분하게 뭔가를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아내의 말처럼 실험을 통해 원인을 밝혀냈다. 파인만이기에 숨김없이 시원하게 밝혀낸 것이다. 이 일로 다시 한번 천재 물리학자 파인만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다.


파인만은 암투병 중에도 꼭 가겠노라 희망하던 투바 여행을 눈앞에 두고 결국 숨을 거두었다. 아마 그는 이승에서 해보지 못한 투바 여행을 영혼이나마 자유롭게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파인만의 죽음은 많은 학생들이 애도했다. 비록 그는 죽었지만 과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유쾌명쾌한 그의 강의는 학생들의 기억 속에 오래남아 있으리라.


청소년 평전 시리즈는 초등전집이지만 중등도 충분히 읽을 수 있을만큼 내용이 알차고 페이지 수가 상당한 편이다. 그래서 우리 중딩이 같은 경우엔 한번에 다 읽지 않고 시간이 날때마다 짬짬히 읽어나가고 있다. 중학생이 되니 확실히 책 읽는 시간도 도서관에 가는 것도 줄어들고 있어 역시 시간적 여유가 많은 초등때 책읽기를 많이 해두는 게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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