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파괴의 여신 카미유 클로델 청소년평전 27
은미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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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쪽으로 전혀 문외한인 우리 중딩이도 조각가 하면 로댕, 로댕하면 '생각하는 사람'을 떠올렸다. 그런 우리에게 로댕의 연인이란 타이틀로 알려진 카미유 클로델이 생소하면서도 또 궁금했다. 왜 그녀는 스스로의 이름보다도 로댕의 연인으로 더 알려졌을까. 청소년평전 27 창초와 파괴의 여신 카미유 클로델을 다 읽고 덮었을 땐 그 사실이 너무 안타까워 화가 날 지경이었다. 이 기분은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도 비슷한 소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덧붙여 보았다. 카미유 크로델... 슬프도고 아름다운 비운의 천재라고.


보통 아이가 어렸을 때 자연을 벗삼아 자랄 수 있는 건 큰 행복이라고 말하곤 한다. 주인공 카미유는 바로 그런 아이였다. 자연 속에서 나무, 흙, 돌의 본질을 일찌감치 깨달은 것이 그녀가 조각가로 열정을 키우는데 가장 첫 번째 밑거름이 되었다. 자연을 벗으로 삼고 자연의 일부분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며 카미유는 자신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흙 인형들에게서 행복과 위안을 얻었다.


카미유가 자연 속에서 무생물인 돌이나 흙과 교감을 하며 손을 무언가를 만들어내며 위로를 받았던 건 사실 어머니의 냉대와 차별 때문이었다. 첫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깊은 슬픔은 변질되어 카미유가 원했던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정신적인 학대를 지속했다. 카미유는 한편으로 어머니를 이해했지만 어머니에게서 들은 모진 말들은 때때로 상처가 되어 그것을 조각으로 치유했던 것이다. 만약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살가운 말을 따뜻한 눈빛, 관심을 주었다면 어쩌면 카미유의 생에 마지막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흙으로 인형을 만드며 재능을 보이던 카미유는 12살 때 만들었던 <다윗과 골리앗>으로 조각가 알프레드 부셰와 인연이 닿았다. 카미유의 천부적인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며 조각가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칭찬해주는 것은 좋았으나 그로 인해 로댕과의 만남도 이루어졌으니 결말을 아는 우리의 입장에선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본격적인 조각가의 길을 걷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파리로 간 카미유. 하지만 낯선 도시 생활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당시 조각가는 주로 남자들이나 하는 직업이며 여자의 몸으로 수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든 파리에서 성공하려면 몇 배 아니 몇 십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카미유는 그것을 알았고 까다롭기 그지없는 조각계에서 살아남으려고 애를 썼다. 그 노력의 첫 결실로 <늙은 헬렌>이 파리 살롱전에서 최고상으로 신문에 실려 모두의 인정 받게 되었다. 그녀의 나이 19세 때 드디어 조각가로서 이름을 알린 셈이었다.

조각가로써 주목을 한 몸에 받기 시작한 카미유와 어쩌면 당대 최대 거장인 로댕과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운명의 장난처럼 로댕과 카미유의 작품은 그 스타일이나 느낌이 매우 비슷하다는 점이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조각에 대한 카미유의 열정과 재능을 로댕도 한눈에 알아 보았다. 서로의 작품과 작품에 대한 생각과 영감을 공유하며 24살이라는 나이 차이는 무의미해졌다.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진 거장 로댕과의 만남은 카미유에겐 득이었을까, 독이었을까. 카미유의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그 실력을 인정받아 마땅하지만 그 당시 사회는 그러지 못했다. 더욱이 카미유가 로뎅의 아틀리에서 일하기 시작하고부터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로댕의 뮤즈이자 연인, 조수이자 모델이라는 수식어가 평생 카미유에게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다. 그녀의 작품조차 로댕의 아류라는 평을 받았으니 예술가로서 카미유의 자존심으론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로댕의 연인이라는 소문으로 카미유는 가족에게조차 외면을 받게 되었다. 차라리 로댕의 사랑이 끝까지 해피엔딩이었다면 좋았을텐데... 로댕과 가족이 주는 갈등과 상처에 결국 카미유는 버티지 못했다. 세상의 편견이 아무리 혹독했지만 누구 단 한 명이라도 카미유를 끝까지 보듬어줬다면 그녀의 결말은 달랐을 것이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는 카미유의 마음을 무너뜨렸다.

카미유가 홀로 작품에 몰두하고 있는 이 삽화는 그녀의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아 인상적였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로댕에게 받은 배신과 상처는 <샤쿤탈라>에 매달리면서 위로 받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샤쿤탈라가 바로 카미유 자신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은 다시금 최고상을 차지했지만 상처뿐인 그녀의 마음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미친듯이 작품에 몰두해 연이어 성공을 거두었으나 그것들은 카미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그렇게 카미유는 점점 세상과 멀어지고 최소한의 생계도 버겁게 되었다. 혼자 남겨진 지독한 외로움은 카미유의 정신마저 갉아먹어 정상적인 생활조차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토록 좋아하던 조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결국 카미유는 정신병원에서 감금된 채 30년 동안 살다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천재 조각가의 말로가 이거였다니... 다른 무엇보다도 30년 동안이나 가족과 세상의 무관심 속에 무연고자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사회의 배려가 가족들의 보살핌이 조금만 있었더라면 그녀는 작품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줬더라면... 그랬다면 깊은 마음의 상처도 다시 한번 작품의 완성으로 치유받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카미유 클로델 연보>를 살펴보면서 그녀의 작품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그 작품들이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그녀가 살아 생전에 '로댕의 아류작'라는 평을 들여야 했던 작품들. 그녀의 열정과 재능을 제대로 보았다면 그런 말들을 못 했을텐데... 카미유가 살았던 시대가 원망스럽고 카미유를 끝까지 사랑하고 이해해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누구나 인생에 한번은 찾아오는 질풍노도의 청소년 시기. 자음과모음 청소년평전 시리즈는 그런 시기에 열정적이며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았던 인물들의 일대기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주고 있다. 우리 중딩이도 앞으로 계속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할 텐데 그때마다 청소년평전에서 읽었던 인물들의 희노애락을 떠올리며 자신만의 길을 잘 찾을 수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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