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연개소문은 영류왕을 배반했을까? - 영류왕 vs 연개소문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9
함규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는 역사지만 읽으면서 새롭게 배우는 게 있다고 우리 중딩이가 손에서 놓치 않고 있는

역사전집 역사공화국 법정시리즈.

역사공화국을 읽을수록 역사 속 승자와 패자 양측의 입장을 모두 들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이번 주엔 영류왕 VS 연개소문의 열띤 법정 이야기를 선택했다.

고구려 인물 중에서 우리에겐 영류왕보다 연개소문이 좀 더 익숙한데

영류왕은 왜 연개소문을 법정에 세웠을까?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09

왜 연개소문은 영류왕을 배반했을까?

연개소문은 왜 정변을 일으켰을까?

연개소문은 고구려를 강하게 만들었을까?

왜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지 못했을까?

차례에서 3일에 걸친 재판 속 소송 내용을 살펴보았다.

우리 중딩이가 본문을 읽기에 앞서 차례를 꼭 훑어보는 이유는

무슨 내용으로 양 측의 변론이 오고 갈지 생각하면서 읽으면 재판 내용이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고 했다.

중등 교과정에선 2학년엔 세계사를 3학년때 역사를 배우는 걸로 알고 있다.

백제의 멸망 이후, 고구려는 신라와 당의 공격으로 국력이 약해지면서

연개소문이 죽자 결국 멸망하게 된다.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최후의 승자라고 했던가.

백제, 고구려가 차례로 멸망한 후 남은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룬 셈이다.

역사공부에 있어 연표는 중요하다.

한국사 vs 세계사

나란히 놓고 비교해볼 수 있어 좋다.

이를테면 한국사 654년 고구려가 말갈과 손을 잡고 거란을 공격 했을 비슷한 시기

세계사 655년엔 측천무후가 황후에 오르는 기록이 있다.

원고 영류왕은 고구려의 27대 왕으로

연개소문에게 죽임을 당해 그 억울함과 진실을 알리고자 소송을 걸었다.

그렇다면 피고 연개소문은

을지문덕, 양만춘과 함께 우리에겐 고구려 영웅으로 이름이 알려진 인물인데

영류왕을 죽였다는 건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라 놀라웠다.

역사공화국 시리즈는 본격적인 공방에 앞서

<미리 알아두기>를 통해 당시 주변 정세와 그 배경을 파악해 볼 수 있었다.

수나라의 뒤를 이은 당나라는 한창 세력을 키우고 있을 때라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영류왕와의 입장과

맞서 싸워야야 한다는 연개소문의 입장이 서로 부딪쳤다.

역사 속 결과 기록으로 볼 때 영류왕은 신하인 연개소문에게 죽임을 당하고

연개소문은 왕을 살해하고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이가 되었다.

고구려 장군이자 국사를 담당하는 최고의 관직 대대로 집안 출신인 연개소문.

연개소문이 왕의 다음으로 높은 자리인 대대로가 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으나

영류왕의 반대로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을 가지고 원고측에선 연개소문의 인격에 대해 논하였는데

사실 연개소문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린 이유는

후대 역사가들의 평가 때문이었다.

증인으로 나온 김부식과 신채호의 증언은 완전 달랐다.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은 연개소문을 역적이라 했으나

'조선상고사'를 쓴 독립운동가 신채호는 다시 없을 영웅으로 보았다.

고구려 하면 광개토 대왕때의 광활한 영토 확장을 손꼽을 수 있는데

다음 왕인 장수왕은 도읍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겼던 까닭은 무엇일까?

평양은 국내성보다 지대가 풍요롭고 교통이 좋았던 것과

백제와 신라에 대한 대비의 목적도 있었구나.

만약에 일찍부터 삼국이 힘을 합쳤다면 굳이 평양으로 천도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고구려의 영토가 한반도로 후퇴하는 결과도 낳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

고구려의 너른 영토가 사라진 것에 대해 늘 안타까워 했던 우리 중딩이는

<열려라 지식창고>를 읽으면서 또 한번 탄식했다.

그렇다면 영류왕의 입장은?

당나라에 의해 돌궐이 멸망하자 고구려 혼자 힘으로 상대하는 것은 역부족으로 판단한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영류왕이 볼 땐 일단 전쟁을 피하고 힘을 기르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기에

어쩔 수 없이 당나라와 친하게 지낼 수 밖에 없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한 이후의 정세는

고구려 연표를 보며 알 수 있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적국이라 여기며 대적하던 당나라에서 도교를 굳이 들여왔던 건 왜일까?

그것도 고구려는 삼국 중 가장 불교를 받아드린 나라인데 말이다.

원고와 피고 양측의 주장이 펼쳐질수록

그걸 읽는 우리 중딩이의 비판적 사고력도 커지는 게 느껴지는구나.

고구려의 영토는 지금 우리가 마음대로 가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백제, 신라와 달리

유물과 유적에 대해 목마른 게 사실이다.

<역사 유물 돋보기>에선 암문 토기, 호우명 청동합, 사신도를 그림과 함께 설명을 곁들어놓아

유심히 살펴볼 수 있었다.

재판 마지막 셋째 날.

우리 중딩이가 가장 궁금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던 질문

왜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지 못했을까?

고구려의 멸명과 관련해 연개소문이 영웅이이냐 아니냐를 다뤘다.

교과서에선 연개소문이 죽은 후 고구려는 지배층의 권력 쟁탈 싸움으로 국론이 분열되었다고 했다.

그 권력 다툼의 주축이 된 게 연개소문의 아들들이라는 사실.

결국 연개소문이 자식들에게 권력을 물려준 일은 고구려 멸망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겠다.

이번 법정 공방의 판결.

피고의 경우 쿠데타와 고구려 멸망과 직결된 부적절한 권력 승계에 대한 잘못은 명백하다.

원고의 경우 쿠데타로 인한 피해자는 인정되나 왕으로서 신하를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점 또한 인정된다.

영류왕과 연개소문이 서로 이해하지 않는 것이

고구려의 비극이라는 사실.

어려울 때일수록 힘을 모아야 하는데

영류왕과 연개소문은 서로 의심하며 해치려고 했기에

위대하고 찬란했던 고구려는 결국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고구려의 유물을 보러 국립중앙박물관은 언제쯤 가볼 수 있을까.

역사를 배운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이기에 언젠가는 우리도 가보리라.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09

왜 연개소문은 영류왕을 배반했을까?

우리 중딩이는 흥미롭게 읽었던 이번 재판에서

가장 궁금했고 깨달음이 컸던 질문들을 추려 노트에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역사공화국 법정시리즈는 읽으면 읽을수록

역사공부의 자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끔 해주는 고마운 책인 것 같다.

일방적인 승자의 기록이 아닌

주체적이고 열린 사고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해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