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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이해하기 - 경쟁·명령·변화의 3차원 경제학
리처드 에드워즈 외 지음, 이강국 외 옮김 / 후마니타스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맨큐의 경제학이 새뮤얼슨의 교과서를 대체하여 전 세계 경제학 원론 교과서의 표준이 된 이후, 학생들이 경제를 사고하는 방식은 더욱 좁아졌다. 지극히 당연하게도, 그레고리 맨큐의 교과서는 ‘뉴 케인지언’이라고 불리는 그가 속한 일군의 학자들의 입장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어떤 학자가 책을 쓰든지 한 학문의 내용을 자신의 관점에 맞게 서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이 자체를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문제는 이 책을 현대 경제학의, 아니 지구에서 존재할 수 있는 경제학의 표준으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습하고 있으며, 무비판적인 수용 속에서 경제학은 곧 ‘맨큐의 경제학’이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맨큐의 경제학은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경제학 시각 중 주류로 인정받는 특정 시각을 보편적인 것으로 강제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맨큐의 경제학을 대체할만한 제대로 된 ‘대안’을 찾기란 어려웠다. 대부분의 책들은 과거 새뮤얼슨의 교과서를 답습하거나 맨큐의 새로 나온 교과서를 답습하는 수준이었고, 어느 정도 구성의 차이가 있어도 근본적인 차이를 발견하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이해하기』는 기존의 주류 경제학 교과서와 분명한 차별점이 있었다. 출판사 책 소개는 그것이 ‘경쟁·명령·변화’의 3차원 경제학이라고 설명했는데, 저자가 이를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맨큐는 물론 맨큐 이전의 선배들이 지우개로 완벽하게 지우려고 노력하였던 계급 개념의 부활이다.
계급을 경제 분석에 포함시키는 것은 곧 이 교과서가 단순한 시장경제체제가 아닌 살아있는 자본주의를 본격적으로 탐구하려는 사람들에게 안내서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칼 맑스를 포함한, 계급 개념을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상정했던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살던 18세기 후반-19세기보다 지금은 계급 개념이 희석되었고, 폐기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계급분석은 여전히 많은 일들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계급 개념을 이용하여 자본주의 경제의 주체들이 모두 수평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며, 각 계급이 상이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이를 관철시키는 과정이 공장 내 혹은 산업 내의 갈등, 거시경제적인 갈등을 초래하며, 이를 어떤 식으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해결하고 있는지 설명한다. 또한 계급을 전제함으로써 각 계급의 ‘힘’은 어디서 나오며, 이 힘의 불균형 혹은 비대칭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계급적 불균형이 문제라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지 살펴보고 있다. 책의 1부인 ‘정치경제학’ 부분에서만 잠깐 등장하고 계급 개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4부까지의 모든 부분에서 마치 맨큐가 ‘기회비용’을 즐겨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계급에 입각한 분석을 등장시킨다.
일단 계급을 전제하고 나니, 기존 경제학 교과서들이 놓치던 현실의 수 많은 파편들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기도 한다. 노동자들의 파업, 임금 투쟁, 노사 갈등 등은 고전적인 계급 갈등으로 재조명되며, 경제학 박사보다 일개 패스트푸드점 매니저가 더 통달하는 노동규율과 관리에 대해서도 따로 장을 할애하여 분석할 수 있게 한다. 실업과 인플레이션 문제, 정부의 경제정책 문제를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 과정이 자본주의 국가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토대로 하나로 엮어서 설명할 수 있게 한다. 계급의 개념 없이 ‘노동자가 자본을 고용하든, 자본가가 노동을 고용하든 아무 분석의 차이가 없다’는 입장을 충실하게 실현한 교과서에서는 다루기 힘든 이야기들이다.
아쉬운 부분도 있다. 한 장(chapter)로만 마무리된 <4부: 결론> 부분의 자본주의의 미래에 관련된 부분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해 ‘역사의 종언’을 맞게될 것이라는 후쿠야마나 파슨스의 입장과 자본주의도 이전의 봉건적 경제체제처럼 사회 혁명을 통해 전복되고 새로운 경제 체제가 등장할 것이라는 칼 맑스의 이론 중 어떤 것이 더 타당할 지 ‘신경제’ 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보려는 시도 때문에 식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인들의 생활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미래를 이야기하기에는 부족한 분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신경제’가 비록 일부 서구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날만한 현상이지만, 만약 이 책의 개정판이 나온다면 2008년 미국 금융위기, 2010년 유럽 재정위기를 거친 전 세계적 경제 위기와, 서구보다 더 많은 인구를 수용하며 경제 발전을 가속화하는 동남아시아, 중국, 라틴 아메리카, 인도 등의 사례 –그곳에는 아직도 ‘구경제’가 상당 부분 지배하며, 서구의 구경제와 다른 측면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를 언급했으면 좋겠다. 저자들의 안목이라면 그 정도 작업을 해내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맨큐의 시각을 벗어나는 사람들이 더 많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정작 자신 있게 읽으라고 권해 줄 경제 원론 수준의 책 한 권이 없어서 부끄러워했던 내 모습이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바뀌리라고 기대한다. 이 책과 더불어 경제사·경제사상사를 잘 개괄할 수 있는 책을 추천한다면, 학교 수업의 도움 없이도 현실 경제를 이해하는 데 기초적인 배경을 갖추는 데 모자람이 없는 독서 목록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3명의 저자와 역자들의 결과물은 현실 경제학계의 상황을 고려할 때 상당한 노력과 어느 정도의 용기를 필요로 했으리라는 점을 알기에 감사를 표한다. 책장을 덮고, 저자와 역자의 다른 책들을 어서 읽어 보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