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양장)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1세기 한국 출판계에서 인문학(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의 빙하기를 탈피하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노력했던 키워드는 아마 통섭일 것이다. 지식이 점점 전문화·세분화되는 현대적 흐름을 거부하고, 고대의 전인적(全人的) 지식인상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든, 현대 학문이 처한 위기에 대한 돌파구이든, 학문 간 통섭, 특히 그 간극이 크다고 알려진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합적 이해는 지금까지도 유행하는 접근법인 것 같다. 하지만 정작 학계에서 통섭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는 힘들다. 이미 세분화되고 상당히 배타적·보수적인 학문들의 분류 속에서 통섭의 인터페이스와 결합할 대상을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학의 영역으로 인정하지 않는 역사학 혹은 인류학이 통섭의 인터페이스 속에서 놀라운 통찰력과 설명력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떨까?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본인이 진화생물학, 지리학, 인류학, 생태학 등의 여러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 , 를 집필함으로써 역사학이 과학적인 연구 방법을 토대로 사회과학으로서의 역사학 혹은 역사과학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파편적으로 인류사를 설명하던 역사학의 서술 방식에 근본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음을 독자들에게 증명해보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저자의 노력은 약 13000년 전 인류가 각 대륙에서 퍼져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식량을 획득하고 사회를 조직하게 된 원인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특정 문명들이 다른 문명을 압도, 정복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 인류의 기술 발전의 불균등한 전파 등을 일관된 방법으로 설명하는 내용으로 결실을 맺는다. 하나의 생명체 종으로서 인류가 환경에 의해 어떤 영향을 받는 지 과학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는 기존의 설명이 결여했던 많은 부분을 훌륭하게 보완·대체하는 것 같다.

 

물론 저자의 이런 시도가 완벽하거나, 반박할 수 없는 증거들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다. 저자도 후기에서 밝히듯이 자신의 연구가 여러 데이터들을 오용한 것에 대해 초판 이후 꾸준한 지적이 있었고, 이를 통해 좀 더 나은 책을 만들 수 있었다. 아마 저자가 생전에 또 다른 개정판을 낼 수 있다면 그 책은 좀 더 자료들을 정교하게 해석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갔을 것이다. 저자의 입장이 특히 저자의 다른 저서에서 제시되었던 주장들과 결부되어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지구 문명들의 불균등한 발전을 각 인종들의 유전자나 기독교 정신’, ‘유럽인의 부지런함등에서 찾고 있지 않으며 이러한 입장에 반대함을 분명히 밝힌다. 저자는 지형, 기후, 수륙의 위치 등의 다양한 지리적 요인 일종의 물적 조건-들이 어떻게 각 문명 발달에 영향을 주었는지 분석하는 데 매진한다. 하지만 여전히 저자의 시각은 보편적인 발달 기준 하에 각 문명들의 발달 단계를 상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불균등을 바람직한 현상 혹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보지 않지만, 문화 상대주의자의 입장에서는 퍽 불쾌한 입장일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상대주의자들의 각 문화를 존중하려는 의도가 현실에서 어떻게 왜곡되어서 관철되었는지 상기하는 것이 중요함을 말하고 싶다. 각 문화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그들이 처한 불평등한 상황, 권력 관계에서 불리한 입장에 서는 현실, 그리고 그로 인한 여러 박탈을 개선할 수 있을 지 불투명하다. 모든 문명들이 고립된 채 자신만의 리듬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라면 우리는 이런 고민을 더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각 문명이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살아가며, 이 교류는 수평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수직적 질서에 의해 유지되는 바, 불균등의 지속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문화 상대주의의 시각은 자신들의 의도를 실현시키는 데 있어서 근본적인 난점에 봉착할 것이다. 오히려 저자의 이러한 분석을 통해 불균등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불균등을 정당화하지 말아야 할 논리를 찾는 것이 더 나은 실천적 결과를 일구어낼 것이다.

 

저자의 뛰어난 능력과 헌신에 의한 통섭에 주목하든, 저자가 각 문명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주목하든, 이 책은 당분간 많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통찰을 제공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혹시 책의 엄청난 분량 때문에 머뭇거렸던 독자들이 있다면, 웬만한 소설책보다 더 흥미로운 줄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각 내용들이 어느 정도는 독립적으로 읽힐 수 있으므로 과감히 도전해보기를 권한다. 어렵지 않게 저자의 이러한 해석이 얼마나 타당한 지 직접 생각해보면서 현대 문명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도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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