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이발관 - 5집 가장 보통의 존재 [재발매]
언니네 이발관 노래 / 블루보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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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일을 겪고 나서 초연해진 다음에 문득 마음이 자랐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상실감, 분노, 이별의 슬픔 등을 경험한 다음에 심적으로 어른이 되어 가며 단단해지는 현현(epiphany)의 순간을 맞이한다고 한다. 언니네 이발관 5집에 담긴 노래들은 나에게 그렇게 마음의 키가 자라야만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스스로가 남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이 세상 속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자각에서부터, 붙잡고 싶지만 놓아줄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것들과의 이별의 순간까지, 마침내 가장 보통의 존재라도 되고 싶다며 세상의 틀에 맞지 않는 내 모습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그런 모습으로 하루가, 한 달이, 계절이, 일 년이, 나의 삶이 흘러가고 있으며, 그 모습을 긍정할 수 있다는 홀가분함 까지.

 

 

언제부턴가 젊은 청춘들에게 힐링이라는 포장지로 손을 내미는 수많은 책과 자기계발서들이 서점에서 가장 시선을 많이 받는 진열대를 차지하며 모르는 이들에게 악수를 청하는 풍경이 익숙해졌다. 물론 그런 것들이 줄 수 있는 순간의 위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위로받아도 그들을 힘들게 하는 현실이, 혹은 자신의 틀이 바뀌지 않는다면 치료는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청춘들의 쓰린 상처가 밖으로부터 나왔다면 과감히 저항하라는 메시지를, 자신으로부터 나왔다면 그런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볼 수 있는 거울을 주는 것이 정말로 상처를 치료하는것은 아닐까. 이 앨범이 주는 울림은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울림 속에서 항상 나를 비추어보게 되는 거울 같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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