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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기자 X파일 - 진실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이상호 지음 / 동아시아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안기부 X 파일 사건' 혹은 '삼성 X 파일 사건'은 처음에 언론기관의 표현의 자유와 '도청' 혹은 불법감청'으로 얻은 자료의 보도행위가 가지는 위법성이라는 쟁점으로 접하게 된 일이었다. 결국 이 사건에서 이상호 전 MBC 기자는 대법원 판결에서 유죄가 확정되었고 법원의 판단은 또 하나의 판례로서 앞으로도 유사한 사건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바트니키-보퍼(Bartnicki vs Vopper) 사건의 판결은 도청으로 얻은 내용을 방송하는 것도 미국의 수정헌법 1조에서 보호해야 할 표현에 해당한다는, 한국 법원과는 엇갈린 판결도 당시에 함께 알게 되어 이 사건에 대한 흥미가 더해졌다.
그래서 결국 당사자의 입장에서 당시 상황을 세세하게 기록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 후반부에 '통비법'에 대한 저자와 MBC 법률자문단의 우려가 결국 현실로 드러난 부분에서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책에 진솔하게 드러난 이상호 기자의 솔직한 감정들은 몰입해서 읽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후, 내용 그 자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저자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탐사 저널리즘의 필요성에 대한 역설과 한국에서 언론활동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률 및 제도의 개선은 아니었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언론의 감시와 견제, 비판의 기능은 중등교육에서부터 끊임없이 강조되어 온 '클리셰'가 되었지만, 현실에서 언론이 이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울 때가 많다. 저자가 책에서 적나라하게 보여 준 MBC의 모습도, 심지어 그 때는 지금보다 MBC에 대한 평가가 전반적으로 좋았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그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기능을 철저하게 수행하고, 일반인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 중 하나가 탐사 보도, 탐사 저널리즘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만이 언론의 중요한 기능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탐사 저널리즘이 어느 정도로 정착되어 있으며, 충분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지 잠시 생각해본다면, 현장에서 '직접 뛰는' 저자 같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수긍이 간다.
하지만 설사 탐사 저널리즘의 전통이 한국에서 잘 뿌리내린다고 할지라도, 언론 활동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법률과 제도가 존속한다면 그 한계는 분명할 것이다. 표현의 자유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표현의 자유가 정치적 표현의 자유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언론의 기능을 고려할 때, 언론 활동의 자유는 높은 우선순위를 가지고 보장받아야 한다는 주장 또한 가능하다. 한국 사회의 경우 표현의 자유와 언론 활동의 자유가 점차 증진되다가 최근 다시 후퇴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호 기자의 뼈를 깎는 진실된 노력과 투혼에 경의를 표하지만 우리가 저자를 탐사 저널리즘의 이상향으로 설정하고 그를 스스로도 원하지 않을 '영웅'의 자리에 앉히는 것으로 끝나서는 곤란하다. 그보다는 그의 목소리를 좀 더 진지하게 새겨 듣고, 더 나은 한국 사회를 위해서 언론이 수행해야 할 역할과 그런 역할에 대한 구성원들이 취할 바람직한 태도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진정으로 이 책의 메시지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