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에스프레소 - 위대한 철학자 34인의 일상과 사상
빌헬름 바이셰델 지음, 안인희 옮김 / 프라하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철학 전공하시는 분들도 더 이상 철학사를 공부할 필요도 없어지고,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철학에 대한 관심 자체가 줄어든 탓도 있겠지만, 학문을 초역사적으로 접근하고, 추상적인 일반 원리로서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은 철학 이외에도 대부분의 학문 분야에서 나타나는 유사한 흐름임을 감안할 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철학 비전공자들이 '도대체 철학자들은 누구인지' 큰 뼈대라도 잡기 위해서 철학사를 잘 개괄한 책을 찾게 된다. 마치 다른 강의는 몰라도 철학 개론은 꾸준히 수강생이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좋은 개괄서를 구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러셀의 <<서양철학사>>와 같은 책은 분명 나름대로 훌륭한 책이지만 누군가에게 시간 들여 정독하라고 권유하기는 너무 두껍다. 대부분의 철학사(특히 서양 철학사) 책은 러셀의 것과 비슷한 이유 때문에 읽어보라고 권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호기심에서 시작한 '개괄'의 욕구가 몇 천장을 넘나드는 텍스트에 묻힌다는 건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인상을 주기 딱 좋은 일이다.

  처음 이 책을 사서 읽은 것도 이런 고민 때문이었다. 각 철학자 혹은 학파들을 깊게 다루지는 않았지만 큰 흐름을 잡는 데 필요한 철학자들을 선별해서 그들의 사상을 그들의 일생과 결부시켜 소개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읽어보니 이 지점에 대해서는 필자의 판단이 맞았던 것 같다. 이 책을 추천한다면 이 이야기는 꼭 해 주고 싶을 만큼.

 개별 철학자들에 대해서는 사실 아직도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잘 모르겠다' 는 느낌을 받는 부분이 없지 않다. 오히려 일본 책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목차의 일목요연한 정리와 내용의 도식화가 적절히 들어갔다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더 쉽지는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해 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찬히 읽어본다면 이 책의 내용은 가장 쉽게 쓰여진 편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번역에 대해서도 꼭 한 마디 하고 싶다. 독일 철학에 전문적인 번역가가 시도했다는 점도 강정이지만 용어에 대한 고민들, 특히 일본식 한자 표현과 뒤섞여서 일반인들에게는 그 표상이 잘 떠오르지 않는 용어들을 최대한 쉽고, 와  닿게 번역하려는 노력이 책 곳곳에 보인다. 이 정도의 노력을 보여준다면 비로소 '번역은 제 2의 창작'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특히 '아무것도 안-이즘, 아무것도 안-이스트' 로 니힐리즘과 니힐리스트를 설명하는 부분 혹은 '아무것도 아님과 없음'을 구분하여 독자들의 혼란을 예방해 준 부분 등은 놀랄 만큼 명쾌한 지점이었다.

  때문에 이 책은 '책을 사면서 기대한 바를 실현시켜 주는' 책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철학자들이름 몇 개만 들어도 궁금증과 거부감이 뒤섞여 불편한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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