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을 바꾸는 분노
BC 209년 진나라의 학정에 고통받던 농민 병사 진승은 "왕과 제후, 장수와 제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라고 외치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 무신 정권 시기인 1198년(고려 신종 1년) 개경에서 사노비 만적(萬積) 등이 노비, 천민의 신분 해방을 주장하며 "왕후 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는 구호를 외쳤다. 1956년 5월 3일 한강 백사장 연설에서 당시 반(反)자유당 분위기 속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 신익희는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발언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진나라 진승의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불씨가 타올라 진나라는 멸망한다.
시대는 달라도, 사람의 절망은 같은 외침을 반복한다.
* 세상을 유지하는 마음
패현의 건달 출신인 유방보다 출신 성분과 압도적 무력에 취해있던 항우는 책사 범증의 간곡한 충언을 듣지 않고, 해하전투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처하자, "내가 천하를 얻고도,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했구나."라고 탄식한다.
천하는 힘으로 얻을 수 있으나, 사람의 마음은 힘만으로 얻을 수 없다.
항우와 달리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장량, 한신, 소하 등의 충언을 귀담아 들었던 유방은 초나라의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의 황제가 되었지만, 권력을 쥘수록 의심은 짙어지고, 의심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멀어졌다. 유방은 "이제 모든 것이 내 것이 되었건만, 어째서 이리 고요한가." 라고 탄식한다.
유방은 듣는 힘으로 천하를 얻었고, 의심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잃었다.
힘과 기세로 천하를 호령하던 항우는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해 전쟁에서 패했고, 유방은 자신의 귀를 비워서 천하를 얻었지만 권력의 정점에서 의심으로 사람의 마음을 잃게 된다. 진시황의 폭정으로 인한 반란과 초한전쟁의 살육을 통해 승리한 유방이 처한 운명일지도 모른다.
* 충성으로 타올랐던 범증
냉철한 범증과 뜨거운 항우의 첫 만남은 초나라의 희망이었으나, 훗날 그들의 결별은 초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홍문연에서 범증은 유방을 죽이라고 세 차례나 항우에게 옥결신호를 보냈지만, 항우는 이를 묵살한다. "어린 자와는 큰일을 도모할 수 없다.", "이제 조정은 귀를 잃었다. 귀가 닫힌 자는 곧 눈도 멀게 된다." 범증은 고향에 이르기도 전에 병이 들었고, 등에 종기가 생겨 결국 쓸쓸히 세상을 떠난다.
* 지략으로 사라진 장량
항우가 힘으로 사람을 누르려 했다면, 유방은 웃음과 여유로 경계를 풀어 사람을 모았다. 장량은 "이 사람이라면 함께 큰일을 도모할 수 있겠구나."라고 판단했다. 천하 통일 후, 유방은 장량에게 제나라의 3만 가구를 봉지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장량은 유방의 배려조차 거절하며 권력의 중력권에서 스스로 벗어났다.
"천하의 일은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나 자신이다."
* 소하의 판단
대왕, 천하는 병사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얻는 것입니다. 오늘 한신을 잃는다면, 대왕은 천하를 잃게 될 것입니다.
임금의 신뢰란 바람과 같아 한순간 불어오고, 의심이라 그림자와 같이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 진평의 간파
"승상은 참 이상하오. 내 마음을 읽는 듯하오." 진평은 고개를 숙인 채 웃었다. "폐하의 뜻이 곧 천하의 뜻이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직언하지 않았고, 한 번도 왕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았다. 진평의 가장 큰 능력은 '판단'이 아니라 '간파'였다.
* 전쟁의 신 한신의 죽음
공이 클수록 칭송은 짧고, 경계는 길다.
* 명분도 실리도 사라진 시대
예전의 전쟁은 명분도 있고 승패가 있었다. 요즘 전쟁은 명분도 없고 끝도 없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람의 마음을 잃어버린 권력이 있다.
결국 천하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사람의 마음을 잃는 순간, 어떤 권력도 오래가지 못한다.
왕후장상은 씨가 없지만,
사람의 마음을 잃는 순간 누구도 그 자리에 머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