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 - 영화관 소설집 꿈꾸는돌 34
조예은 외 지음 / 돌베개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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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트로피컬 나이트>의 조예은 작가를 비롯한 7명의 작가들을 캐스팅한 단편 모음 <캐스팅>은 영화와 극장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다. 지금은 조금 덜하지만 영상이 귀하던 시절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던 순간에는 갑자기 낯선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딛는 것 같은 낯선 느낌이 들곤했다.

* 영화 속 인물이 현실 세계에 나타난다면

영화를 보고 나오면 낯선 세상에 떨어진 느낌이 드는 것과 반대로, 영화 속 인물이 스크린 밖의 현실 세계에 나타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게다가 그 등장인물이 현실 속 배우와 똑 같은 인물이라면? 조예은의 <캐스팅>은 영화 속 인물을 현실 속으로 소환하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게다가 영화 속 인물을 연기한 실제 배우는 존경하는 배우의 차기작 주연배우 오디션에 응모하여 초조한 마음으로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영화를 보고 나면 비록 낯설게 느껴지지만 현실 속으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아마 영화 속 스크린을 뚫고 나왔던 영화 속 인물도 결국에는 영화 속으로 되돌아 간다. 극장 직원 리라 언니의 태연한 한 마디.

"이쪽 세상에서 네 세상이 영화이듯이, 우리 세상도 네가 살던 세상에서는 고작 영화일 수 있어. 그러니까 너무 실망하지 마. 내 생각엔, 나도 딱히 주인공은 아닐 거 같거든. 되고 싶지도 않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영화라면 내가 맡은 역할은 무엇일까? 매일 매일 꾸준히 직장에 다니는 조연배우나 엑스트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매일 쉬지 않고 나타나는 것을 보니 딱히 주연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누군가가 보고 있는 영화라면 조금 더 진지하게 맡은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

* 더 이상 장수 극장은 없다

언제부터였을까, 상영시간 내내 서 있었으면서도 영화의 감동을 잊지 못하던 그 시절 영화관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것이. 박서련의 <안녕, 장수극장>은 작은 시골마을에서 사라져가는 극장에 관한 이야기다. 도시에서도 그랬지만 옛날 극장은 사람들이 만나는 약속 장소이기도 했고 영화 뿐 아니라 연극, 인형극, 마당극, 뮤지컬과 가수들의 콘서트가 열리기도 했던 종합예술극장이었다. 게다가 결혼식이 열리기도 했다. 그런 극장들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추억의 장소들이 사라지면서 우리의 추억도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우리의 아파트도 그렇고 너무 쉽게 세워지고 너무 빨리 무너뜨린다. 몇 천 년은 아닐지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안에는 함께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왜 외국의 수천 년 수백 년된 건물들에는 찬사를 보내면서도 정작 우리의 추억이 깃든 장소들은 잠시도 함께 있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무너뜨리고 새 건물을 짓는 것일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우리 세대는 잡을 수 없는 물신이 지배했던 조급한 시대로 기억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 우리 각자의 극장과 영화 이야기

조해진의 <소다현의 극장에서>는 비혼의 여성 소다현이 영화를 통해서 스스로의 고유성을 회복하면서 자신만의 황홀한 여행을 즐기다가, 한 순간의 화재로 그 동안 모아 놓은 DVD가 불에 타면서, 보육원에서 윤지라는 딸을 입양하게 된다. 그리고 암에 걸린 소다현은 10년 전 윤지를 입양하던 순간을 떠올린다.

"윤지, 내 딸 하지 않을래?"

우리는 책을 통해서도 우리가 한 생애에 경험할 수 없는 수 많은 인생을 살아보지만, 요즘에는 영화를 통해서 그런 인생 경험들을 하기도 한다. 나는 내 인생 극장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다가 그 역할을 누구에게 넘겨줄까? 그런데 도대체 나는 내 배역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캐스팅은 작품 말미에 '작가의 말'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작품을 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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