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부수는 말 - 왜곡되고 둔갑되는 권력의 언어를 해체하기
이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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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숴지는 말은 뭔가 왜곡되고 진실을 가린 말일 것이다. 소제목은 ‘왜곡되고 둔갑되는 권력의 언어를 해체하기’다. 고통으로 시작해서 ‘아름다움’으로 끝난다는 책. 고통, 노동, 시간, 나이듦, 색깔, 억울함, 망언, 증언, 광주/여성/증언, 세대, 인권, 퀴어, 혐오, 여성, 여성노동자, 피해, 동물, 몸, 지방, 권력, 그리고 아름다움이라는 무려 21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저 쓱 보면서, 궁금이 이는 것을 골라 읽다가도 다른 것이 연결되면서 우리의 삶에서 보고 듣는 것이 얼마나 다르게 보여지고 있을지, 내가 알고 듣는 것이 과연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 진실은 무엇인지 알고 싶어지는 마음으로 읽게 되는 것 같다. “말을 부수는 말”이, 특히나 ‘증언’에서 듣기를 원하는 마음이 때로는 피해자 개인에게 또 다른 방식의 폭력이 되기에, 말하는 사람의 고통을 쉽게 간과하기에, ‘말할 수 없음의 상태’, 그 침묵의 발화하지 못한 말을 기록하며 침묵을 녹음한다는 부분이 예리하게 마음을 파고든다. 2022년 5월 시점에서 위안부 생존자 11명에서 결국에는 사라질 증언, 인터뷰는 사실 증언만으로도 인권운동이 된다는 순간이 내게도 하나의 발화 시점이 되어, 말의 힘에 대한 새로운 앎의 접근이 되어준다. 부수는 말을 알아가며, 나 자신이 성장하며 가꾸고 만들어온 이때까지의 인식의 틀을 부순다.


예술사회학 연구자로, 예술과 정치를 고민한다는 저자는 말한다.

“언어는 때로 사물, 사람, 세계 등에 대한 인식체계에 깊이 관여한다. 혐오의 언어가 빠른 속도로 증식하는 것에 비하면 저항의 언어는 늘 순탄하지 못하다. 내가 말하는 ‘저항의 언어’는 정확한 언어에 가깝다. 정확하게 말하려고 애쓴다는 것은 정확하게 보려는 것, 정확하게 인식하려는 것, 권력이 정해준 언어에 의구심을 품는다는 뜻이다. 권력의 기준으로 왜곡된 언어를 적극적으로 유포한다.”


창작과 출산의 고통이 빗대어짐에도 여성은 사실 예술가로의 창조적 행위에서는 배제되었고, 출산의 실질적 고통은 출산 이후의 고통과 더불어 모두 외면되었고, 마찬가지로 노동도 그 고통을 외면받았음을 징검다리로 건너듯 폭로된다. 여성 창작자들에 의한 길거리 창작무대를 통한 행위의 긴 퍼포먼스 예술로서 성폭력의 폭로,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제 모델을 존중하지 않던 남성 화가와 연극연출가에 대한 전시취소와 유죄판결 사례들이 터져 나온다. 


노동은 어떠한가. 소수의 대한민국 엘리트에 의해 이끌리어 이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서 주변은 희생해야 한다는 특권의식으로 ,서울대 교수조차 청소부는 냉난방도 안 되는 곳에서 일하는데, ‘노동자’에게는 ‘온기’마저 외면되는 이 시대의 사회학적 상식을 드러낸다. 기업은 산재를 막을 줄 안다. 산재가 성실한 노동의 과정에서 ‘어쩌다 운이 나빠’ 발생하는 게 아니고, 기만적이고 불성실한 안전시스템에서 철저한 자본주의적 계산과 논리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이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우주 관광 시범을 벌이는 동안, 현 대통령이 국민의 힘 경선시절 손발로 노동하는 것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 발언하던 시절에도, 아마존의 배송기사는 시간이 없어 패트병에 소변을 본다. 우리나라도 아직 손발 노동으로 먹고사는데 누군가의 손발은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몸마저 설탕 더미에 깔리고, 누군가의 다리를 대신하던 배달 노동자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단하고, ‘로켓배송’을 하느라 땅 위에서 하루종일 100킬로 이상을 위험천만하게 오간다는 얘기들....가슴이 절절하게 조각조각 알던 것이 하나로 모여든다. 


‘시간’은 공평하지 않다. 누구의 시간으로 누가 돈을 버는가. 노동자들의 시간을 들여 고객은 시간을 벌고 유통업체는 돈을 번다. 택배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해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결국 개인의 식사시간이나 휴식, 취침시간을 그만큼 줄여야 한다. 시간은 결코 공평하게 나위지 않는다. 누군가는 시간을 점령하고 누군가는 빼앗긴다. 빠르고 편하게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수록 누군가는 빠르게 다치고 죽어간다. 나르는 노동을 하는 사람은 다리가 부러진 채 음식을 나르게 되는 상황, 알고는 배달음식을 먹을 수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서비스 플랫폼 회사와의 계약은 모든 책임을 배달노동자 개인이 지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 정보의 비대칭과 소통창구의 독점 속에서 플랫폼 노동은 노동자들의 소통과 연대를 막을 수 있는 최적의 형태로 나에게 왜 콜이 안 떨어지는지, 다른 라이더의 수수료는 얼마인지 투명하게 알지 못한다. 개인은 고립되고 데이터는 연결된 최적이 감시체계가 되었다. 


이 기만 구조 속에서 ‘노동자의 상처는 데이터로 저장되지 않고 알고리즘의 지배는 연결이 아니다’라는 현실을 알아야 한다. 


색으로 인종을 분리하고 차별하는 것은 알았던 것이지만, 흑백문제에서 백인과 결합한 가정은 ‘글로벌 가족’이고, 비백인과 결합한 가정은 ‘다문화 가정’이라는 표현은 어떠한가. 다문화는 비백인을 분리시키는 언어로 자리 잡았다. 영화 <미나리>의 순자, 윤여정은 고급 진 K할머니로 세계화 되었지만, 현실 속 미국으로 살기 위해 떠난 순자들이 어처구니 없이 총격사건 등으로 죽었듯이, 한국에 온 캄보디아 노동자 속헹씨는 한겨울 비닐하우스에서 얼어 죽었다.


“다른 나라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는 이민자에 대한 환호만이 아닌,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이민자의 목소리가 들려야 한다. 속헹의 수 많은 동료들은 오늘도 어디에서 잠이 들었을까. 그들은 무엇을 먹고 있을까. 그들은 자유롭게 병원에 갈 수 있을까. 국내 간병 노동자 대부분이 중국 동포여성이다. 2015년에서 2018년까지 4년 동안 외국인 가입자의 건강보험재정 수지는 무려 9,417억원 흑자였다.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퍼뜨리는 정치인이 있지만, 외국인 노동자가 건강보험의 밥상에 숟가락을 얹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국인의 돌봄이 이주 노동자의 여성의 저임금 노동에 기대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아사로 제 집에서 엄마와 함께 죽은 6세 아이, 실습 나갔다가 죽은 특성화고 청소년, 발전소에서 일하다가 죽은 20대 청년, 아스팔트 공장에서 작업하다 추락해 숨진 50대 노동자, 폭염 속 창문도 없는 휴게실에서 숨진 서울대학교의 60대 청소 노동자, 주민등록번호도 없이 오래된 여인숙에 머물며 폐지를 줍다가 방화로 사망한 70대 노인. 헤어나올 수 없는 이 빈곤의 실체들은 마치 한 사람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전 생애를 휘감은 빈곤에 의한 사망은 생애주기에 따라 그 장소와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들에게 기회, 과정, 결과는 평등하지도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억울함’의 실체, 모습들이다.


결국, 고리의 마지막 끝인 ‘아름다움’은 권력화된 아름다움이 아닌 분배하는 아름다움을 말하며, 나 이외의 타자와 동등하게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을 강조한다.


“아름다운 대상에 대한 소유가 아니라 대상을 어어삐 여기는 마음, 끊임없이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야말로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을 향한 가장 기본적인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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