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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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시프트>를 쓴 조예은 작가의 <트로피컬 나이트(tropacal Night)>는 기괴하고 난해하다. 마치 이 세상이 아닌 듯 하지만, 또한 이 세상과 무관한 무엇이 느껴진다. 표지 이면에 쓴 작가의 '나쁜 꿈을 끌어아는 밤을 찾아서...'란 서명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작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 할로우 키즈

재이는 유치원에서 유령 같은 존재였다. 희미무례한 원복을 입고 늦은 시간까지 오지 않는 부모님을 기다리며 유치원을 맴도는... 유치원 교사 입장에서는 어른도 짜증날 정도의 상황에서 아이가 가만히 있다는 것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라고 느끼면서, 그 지루한 시간을 제이는 무슨 생각을 하면 견뎠을까 의아해한다. 핼러윈 행사 공연에서 뜻밖에 주인공 드라큘라를 하겠다고 손을 들었지만, 유치원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녀회장의 아들에게 밀려 결국 드라큘라 뒤에서 배경처럼 몸을 흔드는 유령 역할을 맡은 제이는 행사 당일 부모님도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유령 역할을 마치고 인사를 하다가 유령처럼 사라져버린다.

--- 끔찍한 상상이다. 유치원에서도 공연에서도 유령처럼 존재하던 제이가 결국 유령이 되어 사라져버린다는 상상. 제이의 부모는 제이를 키위기 위해서 직장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할로윈 공연에도 불참한다. 유령처럼 보이지 않는 부모와 유령이 된 제이. 가슴이 답답하다.

* 고기와 석류

가장 기괴한 작품이다. 남편을 잃은 옥주가 사람이지 짐승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석류를 집안으로 들여놓은 이유는 자신이 죽었을 때, 고기를 먹는 석류가 자신의 육체를 발라 먹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석류의 양분이 되어 이해 불가능한 죽음으로 남을지언정 외롭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는 옥주의 마지막 목표가 너무 낯설다. 사람이 얼마나 외로우면 그렇게까지 자신을 내어주면서 마지막을 맞이하려고 할까. 끔찍한 상상이다. 이런 꿈은 어떻게 끌어안아야 할까. 도무지 답을 못 찾겠다.

* 새해엔 쿠스쿠스

<트로피컬 나이트>에 나오는 8편의 작품 중에서 드물게 한 줄기 희망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어머니의 성화에 못이겨 살아온 유리는 어느 날 직장인 학교를 그만두고 집안에 틀어박혀 있다. 반면 어렸을 때부터 유리와 비교 대상이 되었던 모범생 연우 언니는 결혼식을 앞두고 사라져버린다. 어렸을 때 둘은 모로코의 사막과 새헤에 대한 TV 다큐를 보면서 '쿠스쿠스'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런데 유리에게 도착한 낯선 메시지에서 모로코 사막과 쿠스쿠스가 떠오른다.

[쿠스쿠스. 내가 먼저 먹었어.]

[별로 맛은 없다. 밍밍해.]

그리고 잠깐의 침묵 후에, 언니는 물었다.

[너도 먹으로 올래?]

나는 수십 번의 계산과 고민 끝에 수백 번 썼다가 지우고를 반복한 답장을 비로소 전송했다.

[응. 갈게]

[가장 작은 신]

미세 먼지가 세상을 장악한 이후 수안은 2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필요한 것들을 택배로 주문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그런 수안에게 기억조차 희미한 고등학교 동창생 미주가 방문한다. 이런저런 피치못할 핑게를 대면서 접근하는 미주를 받아들인 수안은 매일 찾아오는 미주를 기다리게 된다. 그러나 미주는 부진한 영업실적을 만회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안에게 접근했던 것이었고, 이를 눈치챈 수안이지만 어느 정도는 용납하면서 외루움을 이겨낸다. 수안은 자신을 등쳐먹기 위해서라도 매일 찾아오는 미주가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집안에만 틀어박혀 너무도 순순히 동의서에 서명해주는 수안에게 미주는 차마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이 확실시되는 여구 회원 가입 동의서를 내밀지 못하고 실적 부진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그 순간에 수안은 집을 나와서 미주를 구해낸다.

'문을 열고 나오자, 평소보다 아주 약간 맑은 하늘이 그들을 반겼다. 먼지바람은 한동안 불지 않았다.'

--- 악몽을 꾸면서 우리는 키가 크기도 하고 의식이 성장하기도 한다고 믿는다. 정말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품에 나오는 상상들은 끔찍하기만 하다. 부모의 부재(할로위 키즈)로 유령처럼 사라져버린 재이의 고통 만큼이나 부모의 지나친 간섭(새해엔 쿠스쿠스)으로 삶이 무너져버린 유리와 연우의 삶도 험난하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방독면을 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먼지 세상이 도래한다니(가장 작은 신) 상상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들다.

끔찍한 악몽을 꿈구면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 어린 시절의 세계와,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지만 현실이 악몽 같은 어른들의 세계 중에서 어떤 세상이 더 끔찍할까? 어린 시절의 악몽을 부모님 품에 안겨서 잊어버리는 것처럼, 악몽 같은 어른들의 세상은 누가 품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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