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 시대의 강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고민들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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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등 한국 사회에 대한 비평적 시각을 제시해온 작가이자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신작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는 '비난이 일상화'된 세상을 살아가는 훌륭한 지침서다.

* 반박 시 니 말이 맞음

요즘 청년 세대가 자신의 생각을 길게 풀어 쓴 마지막에, '반박 시 니 말이 맞음'이라는 문구를 추가하곤 한다. 이 문구의 뜻은 '나는 내 생각을 적었지만 당신이 반박할 경우 당신 말이 맞는다고 인정하겠다. 그러니까 이건 내 생각일 뿐이고, 나는 당신 말에 재반박할 의사가 없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언뜻 봐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할 뿐 상대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문구에 담겨 있는 진짜 뉘앙스는 그보다 복잡할 수 있다. '내 말이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다. 아마 당신이 반박한다면 당신이 더 논리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냥 내 생각은 이렇다는 걸 들어달라'라는 호소의 뉘앙스가 더 강한 것처럼 보인다. 청년 세대가 생각하는 최악의 태도는 내 말만 맞고 네 말은 틀렸다는 사고방식이다. '반박 시 니 말이 맞음'은 내 생각과 네 생각은 둘 중 어느 한쪽만이 옳기보다는 서로 다를 뿐이고, 굳이 그것 때문에 말다툼할 필요도 없다는 '상대주의적' 선언인 셈이다.

--- 세대갈등, 이념갈등, 젠더갈등, 양극화 문제 등 서로 다른 입장만 내세우면서 자신의 목소리만 높이는 우리 현실 속에서 청년 세대의 '반박 시 니 말이 맞음'은 절묘한 문제 해결의 방식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냉소적인 느낌이 들어서, 진지한 대화는 어려울 것 같다.

* 작가에서 변호사로

작가 생활이라는 건 너무나 불안했다. 내게도 우연이 아닌 현실에 맞게 발 딛게 할 직장이나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그 무렵 이미 대여섯 권의 인문학 책이라는 걸 쓰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말들이라는 게 아주 현실적이거나 구체적인 이야기는 될 수 없다고 많이 느꼈다. 타자의 고통이나 옳음에 대해서 떠들기만 할 게 아니라 현실을 조금은 바로잡고 내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했다.

수험 생활이 끝난 마지막 날, 책들을 쌓아보았는데 천장까지 닿았다. 그래도 한 시절을 보내면서 무언가를 깨닫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사랑의 가치를, 살아낸다는 것의 절실함을, 그 가운데 손을 잡고 나아가는 사람의 일에 관해 무언가 아주 깊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을 살아가려면 책을 천장까지 쌓을 정도의 노력과 절실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누군가가 잘못 산다고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 선례 없는 사회

근래 우리 사회에서 하나 확실한 것은, 기성세대가 청년 세대를 자신들의 삶에 초대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청년 세대가 기성세대의 삶으로 진입하길 가장 꺼리는 사회다. 반면교사는 너무 많았다. 그러나 내가 도달할 수 있고 실현할 수 있는 삶 중에 닮고 싶은 삶은 너무 없었다.

--- 한국사회의 특징이 어른이 실종된 사회가 아닐까. 어른을 찾아보기도 힘들고 아무도 어른 대접을 해주려고 하지 않는 천박한 사회는 어디로 가는 걸까.

* 빼앗긴 시간은 어디로 갔는가

과거에는 인생을 긴 마라톤으로 보는 비유가 유행하곤 했지만, 요즘 시대 또는 세대의 삶이란 끝없는 단거리 달리기의 연속에 가깝다. 100미터 달리고 나면 또 100미터, 곧바로 또 100미터를 달려야 한다. 그 사이 쉬는 시간이라는 게 있긴 하겠으나 잠깐 숨 돌릴 시간 정도이다.

--- 무엇을 위해서 다들 바쁘게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일단 나 자신부터 마라톤이 아니라 쉴 틈 없는 달리기를 하고 있는지 이유를 모른다. 그런데도 무작정 달린다.

* 배반당한 시절을 통과할 때

인생에서 나의 믿음과 현실이 불일치하는 일은 수시로 일어난다. 원하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일, 간절히 붙잡고 싶은 연인이 떠나가는 일, 사업이 잘되지 않거나 시험에서 떨어지는 일들이 인생에 상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배반당하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지에 대한 기술을 익혀야만 한다.

--- 다들 이만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는데 IMF로 삶의 기반이 무너져 내린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숨좀 쉬겠다 싶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인류가 입에 마스크를 쓰고 살아야했다. 앞으로 또 어떤 배반의 시절이 다가올지 예측할 수도 없다.

다들 '믿음이 배반당하는 시간'을 어떤 기술로 살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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