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아이
조진주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기억은 남은 인생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면서 좀체로 놓아주지 않는다. 그것이 좋은 기억이라면 좋겠지만, 실은 그 반대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17년 전에 유괴되었다가 한 명은 살해되고 나 혼자 살아남았다면 그 기억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유괴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살아남은 유괴당했다가 살아남은 지희와 그 당시 놀이터에서 그 순간을 목격했던 규연은 서로의 17년 후에 함께 살아가고 있다. 지희가 유괴의 경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처럼, 어렸을 적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던 규연 역시 과거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검은 방에 갇히면 처음에는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지. 그런데 어둠에 익숙해지고 나면 이번엔 내가 나갈 수 없는 거야. 문밖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니까. 그래서 더 깊숙한 곳을 찾아 들어가게 돼. 다른 위험이 나를 찾아내지 못하게. 그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영영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겠지.'

그 둘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과거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살아남은 아이로 존재하고 있다. 그런 둘 앞에 나타난 또 다른 가정폭력의 피해자 시현으로 인해 둘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시현을 돕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여전히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규연아, 우린 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극복하지 못한 과거 같은 거 되게 진부한 이야기인데, 지나간 일들 따위 무시하고 지금만 보며 살면 되는데, 왜 그러지 못할까?"

"과거가 아니라서 그래. 계속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데 그게 어떻게 과거야?"

"너무 조급해 말고 천천히 생각해보자. 무려 17년을 버텨왔잖아."

우리는 너무 쉽게 이제는 제발 그만 하라고 말한다. 살아남은 아이가 제발 소설 속에서만 있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실은 소설보다 더 참혹한 경우도 있다. 다섯 살에 입양된 이후 20년 이상을 하루도 매를 맞지 않고 지낸 날이 없다는 <태어나서 죄송합니다>의 전안나 작가,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의 작가 산만언니 등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살아남은 어른들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하고 살아남은 아이들도 있다.

살아남은 어른이 되어가는 규연은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는 어린 시현에게 위로를 건넨다.

'그러니 받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은 버리자.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네가 원하는 네 모습을 만들어가자. 너는 나보다 만들기를 잘 하잖아. 그렇게 멋진 작품을 만드는 네가 해내지 못할 리가 없잖아. 넌 누구보다 멋있는 사람이 될 거야. 네가 얼마나 훌륭하게 어른이 되어가는지 내가 옆에서 지켜봐줄게.'

규현이 시현에게 건넨 위로는 결국 자신을 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살아남은 어른이 되려는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설 #장편소설 #책 #책추천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소설스타그램 #서평단 #이벤트 #신간소설 #신간도서 #신작소설 #한국소설 #한국문학 #현대문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