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잊어야 할까 - ‘기억’보다 중요한 ‘망각’의 재발견
스콧 A. 스몰 지음, 하윤숙 옮김 / 북트리거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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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와 치매를 전문으로 다루는 의사이자 컬럼비아대학의 신경학 및 정신의학 교수인 스콧 A. 스몰 Scott A. Small 박사의 <우리는 왜 잊어야 할까, Forgetting : The Benefits of Not Rememberig>는 기억과 망각에 관한 작품이다.

* 기억의 천재 푸네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단편소설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서,

'푸네스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인물이지만, 하지만 나는 그가 생각하는 일에서는 그리 훌륭한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차이점을 잊는 것이다. 일반화하고 추상화하는 것이다.'라고 통찰하고 있다.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과 손을 보고 매번 놀라기도 했다." 사진 같은 기억을 가진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젊은 푸네스는 결국 빛을 차단하여 어둡고 소리의 높낮이가 없는 고요한 방에 고립된 채 남은 평생을 보냈다.

* 정상적 망각

저자는 35년 이상을 기억 전문가로 살아왔지만 주로 듣는 이야기는 오히려 모두 망각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푸네스의 예에서 보았듯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악몽일 수 있음을 우리는 순식간에 깨닫는다. 기억과 균형을 이루는 망각이야말로 끊임없이 변하며 두렵고 고통스러운 일이 많은 세상에서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본연의 진정한 인지 능력이다. 2014년 유럽 법원에서 '잊힐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했고 영구 기록이 한 사람의 삶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아주 잘 설명되었다. 이와 비슷한 의미에서 우리의 뇌도 잊는 것이 옳다.'

* 망각은 '결함'이 아니라 '선물'이다

자신을 찾아온 환자의 사례를 통해서 저자는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망각이 그저 기억의 결함이 아니라, 인지 영역의 선물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혼란스럽고 더러는 유해하기까기 한 환경에서 우리가 건강하게 지내도록 정상적 기억과 정상적 망각이 조화를 이루어 우리 정신의 균형을 맞춰 준다고 말한다. 기억만 있고 망각이 없는 뇌는 불행하게도 의미 있는 삶의 모든 측면을 잘 살아 내지 못할 것이다.

* 병적 망각(기억과 망각의 불균형)

1. 자폐증 : 새로운 길을 배우려면 '잊어야' 한다.

아동정신의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캐너는 자폐스펙트럼장애로 알려지는 증상의 특징을 설명한다. "자폐 아동은 정적인 세계, 어떠한 변화도 허용되지 않는 세계에서 살기를 바란다. ...무슨 일이 있어도 현 상태가 그대로 지속되어야 한다. 자폐증이 "대상의 부분에 집요하게 집착하는 증상"이라는 관점에서,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세상이라면 망각하지 못하는 사람도 잘 살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끊임없이 변하고 더러는 소용돌이치듯 격동하는 세상에서는 기억과 망각의 균형을 이룬 사람만이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다.

2. 외상후스트레스장애 : 사람들과 어울리고 삶에 유머를 더하라

이스라엘 특수부대 출신인 저자는 '보퍼트성 전투'에 참전했지만, 전투 직후 몇 달 동안 강한 형제애와 공동체적 환경에서 함께 지낸 덕분에 비교적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 가장 큰 위험 요인 중 하나는 외상 사건 이후 외롭게 지내면서 아무 사회 조직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매섭게 내리치는 불행과 두려움과 공포의 고리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이다.

3. 알츠하이머병 : 엄마가 어떻게 내 이름을 잊을 수 있죠?

알츠하이며병으로 인한 고통은 환자 본인보다 가족에게 더 큰 경우도 많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가장 잔인한 일 중 하나는 가족이 환자를 점점 더 많이 보살펴야 할 때 환자는 가족에 대해 더는 관심을 두지 않는 모습을 더욱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끔찍한 병은 많지만, 상대를 보살피는 통상적인 역학 관계가 이처럼 가혹하게 역전되는 점에서 알츠하이머병처럼 정신이 퇴화하는 병은 다른 병과 구분된다.

* 창의성 : 우리는 잊기 위해 잠을 잔다

주변 상황을 알아차리며 의식하고 있어야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잠에 빠져 모든 것을 잊은 채 하루에 몇 시간씩 보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1962년 노벨 생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프랜시스 크릭은 1983년 잠의 생물학적 목적에 관한 자신의 정교한 생각을 단 한 줄의 놀랍고 함축적인 결론의로 요약했다. "우리는 잊기 위해 꿈을 꾼다." 어쩔 수 없이 며칠씩 잠을 자지 못한 거의 모든 사람이 극심하게 경험한 명백한 증상은 지각의 왜곡과 착란이다. 즉, 잠이 가져다주는 순수 효과는 망각이다.

* 그래서 치료법이 뭡니까? : 외침에 귀 기울이라

"축하드려요, 스몰 박사, 분자 차원의 실력이 훌륭하시군요. 그런데 치료법은 뭡니까?" 이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더 기다려 달라는 말이 분명 그에게 좌절을 안겨 줄 것이고 아마 당신도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믿어 달라. 이 분야는 최대한 빠르게 나아가는 중이다. 노년의 '병적 망각'을 해결할 새로운 시작이 열리고 있음을 알리며, 계속 지켜봐 달라.

--- 노화현상을 거부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기억력 감퇴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병적 망각으로 우리 아이들이, 그리고 나이드신 어른들의 일생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의학이 발전하여 치료법이 개발되면 좋겠지만, 그 전까지는 우리가 병적 망각으로 고통받는 가족들과 이웃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주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치료법이 개발될 때까지, 우리가 그들의 기억이 되어주어야겠다.

아! 나쁜 기억은 망각 속으로 지워버리고 좋은 기억은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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