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헤르만 헤세 지음, 김지선 옮김 / 뜨인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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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책들이

그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아

하지만 가만히 알려주지

그대 자신 속으로 돌아가는 길'

<수레바퀴 아래서>, <크눌프>, <데미안>, <싯다르타>, <지와 사랑> 등으로 유명한 독일 출신 작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는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에세이를 모아 엮은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는 작가가 바라보는 책의 세계, 또한 애서가이자 장서가로서 책을 대하는 진지한 고민과 해박한 세계문화사적 작품설명까지 포함되어 있다.

o 독서의 질

작가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책의 수준이 아니라 독서의 질이다. 삶의 한걸음 한 호흡마다 그러하듯, 우리는 독서에서 무언가 기대하는 바가 있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더 풍성한 힘을 얻고자 온 힘을 기울이고 의식적으로 자신을 재발견하기 위해 스스로를 버리고 몰두할 줄 알아야 한다.

o 책의 마력

글과 책에는 불멸의 기능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인식할 것이기 때문이다. 말을 통한 표현과 글로써 전승하는 일은 인간이 역사와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유일무이한 수단임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모든 미와 매력이란 바로 이러한 개별성과 일회성에 바탕을 둔다는 점도 알게 된다. 이와 동시에 더욱 뚜렷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온 세상 수 천 수 백의 목소리들이 결국 모두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며,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신들을 부르며, 동일한 소망을 꿈꾸며, 동일한 고통을 토로한다는 점이다.

o 애독서

이제까지 살면서 세계문학 중에서 작가가 제일 많이 들여다봤고 그래서 아마도 제일 잘 안다고 할만한 영역이라면, 오늘날에는 너무나 아득히 밀려나다 못해 아예 전설처럼 되어버린 독일의 한 시절, 즉 1750년부터 1850년까지의 백 년, 그러니까 괴테가 중심이자 정점을 이룬 바로 그 시대의 독일문학이다.

o 글쓰기와 글

글은 인간만 쓰는 게 아니다. 손 없이도 펜이나 붓, 종이나 양피지 없이도 글은 써진다. 바람과 바다, 강과 시내가 글을 쓰고, 동물들도 쓰며, 어디선가 대지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강물의 길을 막고 산이나 도시하나를 흔적 없이 날려버릴 때면 땅도 글을 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글로 다시 말해 객관화된 정신으로 바라보려 하고 또 그럴 줄 아는 것은 오로지 인간정신 뿐이다.

o 시의 악순환

‘아름다운’ 시를 쓴 시인이 사랑을 받으니까, 자꾸 그런류의 시들이 양산되는 것이다. 즉 시의 근원적, 원초적, 치유적 기능과는 동떨어진 채 오로지 아름다우려고만 한다. 이런 시들은 애초부터 타인, 즉 청자와 독자를 겨냥해 쓰인다. 이들은 더 이상 한 영혼의 꿈, 춤사위, 절규가 아니며, 체험에 대한 반응도 더듬더듬 읊조리는 소망이나 마법의 주문도 아니며, 현자의 몸짓도 광인의 기행도 아니다. 다만 뚜렷한 목적하에 만들어낸 생산품,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 대중의 입맛에 맞춘 사탕과자에 불과하다.

o 글 쓰는 밤

작가의 경우를 보면 작가의 경험과 생각과 고민들의 매개자이자 상징이 되어줄 수 있는 하나의 인물상이 또렷해지는 순간이 바로 작품이 배태되는 때다. 이와 같은 가공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는 창조적인 순간, 모든 것이 단박에 결정된다. 작가가 썼던 산문 작품들은 거의 모두가 영혼의 전기들이다. 사건과 갈등, 스토리 중심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독백이다.

o 세계문학 도서관

작가가 인도의 세계에서 구하였으되 거기서 찾을 수 없었던 것이 있었으니, 분명히 존재하리라 믿었던 어떤 종류의 지혜가 아무리 뒤져도 구체화 된 언명으로 찾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다시 몇 년이 지난 뒤 새로운 독서체험이 작가에게 성취를 안겨 주었다. 오래전에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도덕경>을 그릴(Grill)의 번역으로 만났던 것이다. 중국의 정신이 갖는 의미를 몸소 체험한 독일인에 의한 번역이었다. 작가는 이 책을 손에 넣었을 때 꿈인가 생시인가 싶을 정도로 어찌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얼마나 생소하고, 그렇지만 얼마나 옳으며, 예감하고 기대하던 대로 모든 것이 구구절절 어찌나 기막히게 다가왔던지 그 벅차 오르던 심정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인도가 고행과 금욕으로 세상을 버림으로써 고귀하고 감동적인 경지에 이르렀다면, 중국은 본성과 정신, 종교와 일상이 대립이 아닌 상호보완의 관계로 양자 모두 긍정되는 그러한 정신세계를 일구어냄으로써 인도 못지않게 비범한 경지에 도달했다.

o 문학에서의 표현주의

많은 시간을 독서에 바치면서 작가가 터득한 것은, 우리는 고트프리트 켈러를 좋아하는 동시에 베르펠도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정원에서 횔덜린을 읽으며 온종일 행복에 젖기도 하고 쉬켈레의 장편 <벤칼>의 어떤 부분에서 넘치는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작가 역시 예술이 크고 깊은 소리로 자신을 일깨우는 그 모든 곳에서 표현주의를 찾아본다.

‘책은 진지하고 고요히 음미하고 아껴야 할 존재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책은 그 내면의 아름다움과 힘을 활짝 열어 보여준다.’


‘그대가 오랫동안 책 속에 파묻혀 구하던 지혜,

펼치는 곳마다 환히 빛나니 이제는 그대의 것이리.’

#뜨인돌 #헤르만헤세의책이라는세계 #김지선 #서평단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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