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택의 재검토 - 최상을 꿈꾸던 일은 어떻게 최악이 되었는가
말콤 글래드웰 지음, 이영래 옮김 / 김영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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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시간의 법칙으로 유명한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그래드웰의 최신작 <어떤 선택의 재검토>의 원제는 <The Bomber Mafia>이고, 부제는 ‘최상을 꿈꾸던 일은 어떻게 최악이 되었는가.’ 이다.

<타인의 해석>, <티핑포인트>, <블링크> 등 사회심리학 부문의 책을 주로 저술한 작가는 영국 출신으로 워싱턴포스트의 경제부, 과학부 기자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가 겨우 5살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뒷마당이 폭격을 받은 경험담을 듣고 자라면서 ‘스파이’와 관련된 서적을 모조리 읽으며 성장했다. 작가는 역사 관련 픽션, 논픽션, 자서전, 학술서 등을 총망라한 책들을 모아 오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집착’의 산물인 ‘폭격’과 관련된 자료들로 ‘가치 있는 스토리’를 엮어냈다. 집착 없이는 진보도 혁신도 즐거움도 아름다움도 얻을 수 없다는 작가의 주장이 흥미롭다. ‘월스트리트 저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사상가 10인에 선정된 작가가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내용을 저술하였다는 것은, 집착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20세기 전쟁 이야기 속에서 공군사에 길이 새겨질 원대한 꿈과 유혹, 집착, 실패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쟁과 관련된 폭탄제조 기술자, 엔지니어, 과학자, 육·해·공군, 조종사들이 등장하고, 세밀한 폭탄제조 기술, 복잡한 비행기의 조립과정, 폭격 위치에 관한 군사기밀 사항까지 곁들인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두 명의 사나이, 헤이우드 핸셀Haywood Hansell과 커티스 르메이Curtis Emerson LeMay 사령관의 대조적 인간성과 그에 얽힌 전쟁 승패의 갈림길까지 구석구석 밝혀주는 역작이었다. 1만 시간의 법칙으로, 1만 가지 이상의 사건을 조합하여 우리에게 양심과 의지로 대변되는 두 인물의 정반대 가치관이 보여준 전쟁의 엇나간 단면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The Bomber Mafia>, 폭격기 마피아는 제1차 세계대전의 충격을 딛고 이제는 전쟁의 방식을 바꾸자는, 폭격조준기 기술로 ‘정밀조준’ 폭격을 통하여 막무가내식 초토화 폭격이 아닌 좀 더 빠르고 정확하게 거의 피를 흘리지 않는 ‘바람직한 전쟁’을 하자는 항공단 전술 학교의 리더 그룹을 일컫는다. 그들은 고고도로 주간(전에는 적의 방어를 피하여 야간에 함부로 폭격했지만)에 정밀폭격을 구상했다. 이런 생각은 그 시절 너무나 급진적이고 혁명적이기까지 하였다. 초크포인트라는 핵심목표 10여 개 지점의 공격만으로 전쟁을 끝내려 했던 그들은 강력한 기술에 대한 환상과 국가적 이상과 인간존중을 위한 도덕적 요소의 결합을 추구하는 끝없는 집착과 욕구 심리가 있었음을, 미 육군대학원 교수와 다양한 역사평론가들이 증언하고 있다.

나치 군수산업을 대변하는 볼베어링 공장을 타격하는 슈바인푸르트 도시 공습을 통해 마피아 폭격기 집단이 내거는 전쟁방식의 우수성을 대변하는 작전계획이 수립된다. 이 작전에는 양심의 대변자 헤이우드 핸셀이 지명되었다. 이 작전을 보좌하는 정교한 유인성 폭격에는 냉혹한 실천가이자 의미 없는 행동을 밀어붙일 수 있는 극단적 수호자 커티스 르메이가 맡아 레겐스부르크 매서슈미트 전투기 공장으로 출격한다. 핸셀이 주도하는 230대의 폭격기에 실은 2,000개가 넘는 폭탄으로도 정밀폭격은 힘을 쓸 수 없었지만, ‘꿈은 살아있다.’는 집요한 비전만 살아남은 현실이었다. 어이없는 1, 2차 공습 작전은 그레고리팩 주연의 ‘정오의 출격Twelve O'Clock High , 1949.’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여기에 조종자 훈련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선발하는 프로젝트를 맡았던 미국의 가장 유명한 사회심리학자 리언 페스팅거의 회상과 저술, 핸셀의 편지 등을 통해 저자는 이러한 결론을 도출한다. “일련의 믿음에 많은 것을 투자할수록, 그러니까 그 신념을 위해 희생한 것이 많을수록 사람은 실수라고 말하는 증거에 강하게 저항한다.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몰두한다.”

결국, 모든 공장들이 전소되도록 계속 공격하는 것으로 결정되고, 어떤 신조나 원칙과는 무관한 실제적인 도전에만 끌리는 냉혹한 실천가 르메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일본 출격의 요충지, 사이판, 티니언, 괌을 탈환 후 일본 상공의 제트기류는 핸셀의 정밀폭격을 불가능하게 하고, 여기에 전쟁을 빨리 끝내게 할 그러나 더 저주스러운 불바다 네이팜탄 폭격이 대체된다. 핸셀은 물러나고 그 자리에 르메이가 오면서 날씨에 영향받지 않는 저공비행과 야간비행, 즉 정밀폭격과는 정반대되는 “나만의 방식으로 해보겠어.”로 통하는 대규모 공격을 감행한다. 이미 원자폭탄이 없어도 네이팜탄의 ‘즉흥적 파괴’를 통하여 일본은 패망의 끝을 향한다.

“군사적 목적을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폭격기 마피아의 천재적 꿈과 이상은, 양심과 의지를 적용해야 해결될 수 있는 도덕적 문제 앞에 더욱 옳은 비전이었다. 그러나 전쟁 후에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공군참모총장에 임명된 초토화 폭격의 무자비한 실천가 르메이는 기억되고 정밀조준 폭격을 시도했던 핸셀은 사라졌다.

일개 야전사령관인 르메이가 실행한 파괴의 규모와 공격의 대담성은, 육군성 장관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으나, 르메이가 가능한 맹렬하고 잔인하게 싸운 대가로 전쟁은 단축되고 오히려 분단을 막은 공로로 일본인 역사가로부터 ”결국, 우리는 소이탄과 원자폭탄을 떨어뜨려 준 당신들 미국인에게 감사해야 합니다.“라는 찬사를 받는다.

대규모 학살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로부터 최고 훈장까지 받은 전쟁승리자이자 실행주의자 르메이는 기억에 남고, 모범생으로 모든 부조리함을 걸러낸 양심과 도덕의 수호자 헨셀은 뒤안길로 사라지는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우리는 매 순간 옳다고 생각하며 선택을 하지만, 그 전의 상황과 그 후에 나타나는 일련의 결과에서도 우리가 옳다고 생각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마치 사랑에 집착할수록 우리가 사랑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처럼. 이상과 집착을 구분할 수 없듯이, 양심과 무모한 실행도 동전의 양면처럼 구분하기 어려운 풀 수 없는 문제이다.

<어떤 선택의 재검토> 마지막 문장이다. ‘고고도 정밀폭격이란 그런 것이다. 커티스 르메이는 전투에서 이겼다. 핸셀은 전쟁에서 이겼다.

정밀폭격이고 초토화 폭격이고 그러한 무자비한 만행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핸셀의 후예들이 러시아의 푸틴을 향한 정밀폭격을 성공시켜, 우크라이나의 비극이 멈추기를 기대해본다.

인간은 살육을 멈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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