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마음과 앓는 마음 - 일이 가져오는 시시각각의 마음들에 대하여
임진아 외 지음 / 이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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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일하기 싫다. 정말 일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일을 해야 먹고 살지. 그리고 일이 없어서 힘든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이런 배부른 생각을 하는걸까 싶다가도 일이 하기 싫다는 마음은 숨길 수가 없다. 이 작품의 본문에 언급된 수메르 신화에서도 하급 신들이 고된 노동을 참다 못해 반란을 일으키자, 상급 신들이 반란을 수습하기 위해서 하급 신들의 노동을 대신할 존재로 인간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너무 무책임한 책임 전가다.

* 불안을 데리고 가기로 했다(임진아/삽화가, 에세이스트)

회사란 곳은 많은 사람을 만나는 만큼 많은 사람들과 작별하고, 듣고 싶은 말은 끝내 듣지 못하지만 듣기 싫은 소리는 거침 없이 다가온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믿고 신뢰했던 중소업체 사장님에게 세금계산서 문제로 전화를 걸었을 때 들려온 충격적인 순간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어보지 않은 이가 드물 것 같다. "아 씨 진짜" "네?" "바빠 죽겠는데, 별것도 아닌 걸로, 왜 전화질이야, 이 따위 일로 아침부터 전화를 해? 네가 왜 나를 힘들게 하냐, 이딴 게, 다 뭔데." 그 후로 그 사장님은 사업을 접고 식당을 개업했고 임진아 작가도 같은 해 회사를 그만둔다.

- 우리는 여전히 그보다 더 심한 일들을 겪으면서도 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러나 프리랜서라는 직업도 만만치는 않다. '나는 얼마든지 대체되며, 비교당하고, 누군가 거절한 일을 대신한다. 당연한 과정이지만 그 안에 앉아 그런 나를 만나는 건, 좀 울고 싶어지는 일이다.

* 메꾸어 나가기(천현우/용접노동자 7년 경력, 미디어 스타트업 alookso 근무)

용접노동을 하면서 소설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10년간 공모전에 응모했지만 전적은 0승 17패. 주간경향의 '쇳밥일지'를 쓰면서 출판제안을 받았을 때, 노력과 열정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꿈이 이루어진다는 느낌으로 인생이 참 얄궃다고 생각했다. 용접과 글쓰기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메꾸어 나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통해 노동의 고됨을 성장의 즐거움으로 바꾸면서 살고 있다.

* 일하기 싫은 자의 이야기(하완/일러스트레이터 겸 작가)

열심히 살아도 달라지지 않는 삶에 지쳐 '이제부터 열심히 살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하고 퇴사를 감행한 자유인. 누군가 좋아하는 것을 향해 힘껏 달리는 동안 작가는 싫어하는 것들로부터 힘껏 도망쳐 왔다.

'일은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자아를 갉아먹는 행위다. 고통이자 즐거움이고, 욕망이자 때려치우고 싶은 것이며, 몰입이자 소진이다. 의미 없는 돈벌이 수단인가 싶다가도 삶을 좀 더 의미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하니 일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 일이 나에게 물었다(김예지/청소 노동자,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강연가, 선생님)

비교를 거부하면 청소노동자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면서 걸어가지만, 작가로서는 '언제부터 내가 아닌 남의 기준이 된거지?'라는 고민도 한다. 결국 일은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고 느낀다.

'일은 계속 나에게 질문할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니?'

-- 만화 형식이라서 더 읽기 편하고 재미도 있었다.

생물학을 사랑하는 생명과학 연구자 김준 작가,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잠을 자는 과정처럼 일은 하루를 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패션 디자이너 박문수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용접 노동자로 살아온 천현우 작가의 일에 대한 외침이 뇌리에 남는다.

'배관공이 하루만 없어져도 화장실에서 못 볼 꼴 다 볼 겁니다. 불금 다음 날 일하는 청소 노동자가 없다면 거리는 널찍한 쓰레기장으로 변하죠. 전국 간호사들이 단 하루만 일을 안 하면 죽음으로 넘실대는 나라가 될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일은 시장 가치가 아니라, 중요성과 필수성만큼의 대우와 존중을 받아야 해요. 그런 세상이 되어야만 비로소 그 누구도 "수학 못하면 용접이나 배워!" 같은 소리는 하지 않을 거예요.'

--- 우리가 먹고 살아가는 일, 기쁜 일, 슬픈 일, 사랑하는 일, 미워하는 일, 생각해보면 우리 삶은 일 아닌 것이 없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또다른 휴일이 기다리고 있다. 쉬는 일도 일이다.

우리가 겪는 어려운 일 만큼 기쁠 일과 웃을 일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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