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포니원 - 포니를 만든 별난 한국인들
강명한 지음 / 컬쳐앤미디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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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not in the stars to hold our destiny but in ourselves.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별들이 아니고,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 윌리엄 세익스피어

* 1986년 정우사에서 출판된 '포니를 만든 사람들' 이 절판된 지 35년 만에 컬쳐앤미디어에서 작고한 저자 강명한의 아들 강태호 치과의사가 편집하여 재탄생하였다.

* 정세영과 강명한의 운명적 만남

"이봐, 이스터 강, 당신 엔진 좀 알아?"

"엔진이요? 저는 잘 모릅니다. 아 참! 시멘트 공장 지을 때 킬른Kiln(시멘트 제조용 원통형 가마)에 딸린 비상용 엔진을 몇 번 시동 걸어 본 적은 있습니다만..."

"예? 엔진을 만들다고요? 도면만 주시면 제가 쇠칼로 후벼 파서라도 만들어 볼 수는 있죠, 그런데..., 몇 대나 만드시려고요?

"5만 대야."

"그런데 말이야, 그 공장을 당신이 맡아 해 주었으면 좋겠어."

""저 안 되겠는데요... 연간 5만 대를 생산하려면 일반 공작기계가 아닌고 전용기계와 트랜스퍼머신이 필요할 텐데..., 제가 공작기계 공부는 좀 했지만, 그와 같은 전용기계는 전혀 모릅니다."

"이봐, 미스터 강, 지금 대한민국에 그런 경험 가진 사람이 어디 있어? 이제부터라도 배워가며 하면 되지. 괜찮으니까, 당신 한번 해보란 말이야."

정세영 사장 단양시멘트 공장 프로젝트에서 4년간 일했던 인연으로, 강명한은 대한민국 최초 국산 모델 자동차 포니의 엔진 국산화를 책임지게 된다.

* 외줄 타기로 깊은 절벽 사이를 건너가는 기분

인생을 사는 방법 중에는, 쉽고 안전한 길을 택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편안하지만 지루한 길일 수도 있다.

반면, 모험에 찬 길은 고달프고 어렵지만 지루할 겨를은 없을 것이다.

국내 기반은 전무한 상태에서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 제작소와 유럽 등의 기술지원을 받으면서 겪게 되는 언어장벽 외에도 기술자의 자존심을 접어두고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던 수모를 감내해야 했다. 그에 대하여 더욱 강명한을 힘들게 한 것은 "그까짓 기어 하나 만드는데 정말로 기어 이론까지 공부해야 하는 겁니까?"라는 내부의 반발과, 현장 기술자들 대부분이 입사 전 다른 공장에서 대충하던 습관이 오래 몸에 배어서 도면을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강명한은 특단의 조치로 경력이 없는 직원들로 엔진부를 구성한다.

'나는 어설프게 아는 사람보다는,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 새로운 일을 열심히 배우고 노력할 때에 훨씬 더 성공적인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도면 그대로 만들어야한 한다.'

*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생산 현장

' 전용기계의 수리를 맡았던 홍 기사는 작업을 마치고 전투가 끝난 뒤 탈진한 병사와도 같이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잠시 후,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 일주일간 죽은 듯 누워있던 홍 기사는 미처 몸이 채 회복되기도 전에, 자기만 혼자 쉴 수 없다며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 포니의 출고일이 1976년 2월 1일로 정해지자, 60만 평의 울산 공장은 구석구석이 모두 전쟁터로 변했다. 하루 철야는 일철, 삼일 철야는 삼철로 불렸고, 전 직원이 맡은 자리에서 각각 쏱아져 들어오는 적군을 맞아 전투를 벌여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철 삼철을 알아서 하고 있었다.'

"부장님, 이번 주말부터 며칠 동안 회사를 쉬고 싶습니다."

"김 기사, 무슨 일이야? 벌써 지친 거야?"

"아뇨, 그동안 죄송해서, 도저히 말을 못 하고 참고 있었습니다만..., 요번 일요일에 결혼식을 올리려고요..., 되도록 빨리 내려오겠습니다."

그런데 , 막바지로 치닫는 공장 라인 설비작업과 기계 설치가 워낙 다급해진 엔진부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지라, 김 기사는 혼자만 쉰다는 생각에 미안했는지, 결혼식만 마치고 신혼여행도 없이 화요일 새벽에 출근하였다.

'1975년 초, 아직 포니의 출시가 언제일지 확실치도 않은 어느 날, 볼 때마다 자꾸만 야위어가는 재정부의 오준문 이사를 보기 안타까워 "얼마나 어려우십니까?"라며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정말 말이 안 나옵니다... , 돈 들어오는 구멍은 바늘귀만 한 데 나가는 구멍은 송수관 봇물 터지듯 하니, 이 짓을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회사가 자빠지기 전에 내가 먼저 자빠질 것 같습니다."

* 기억하라 포니를 만든 그분들을!

'나는 지금 한 사람의 기술자로서, 매우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고, 깊이 반성도 하고 있다. 외국의 다른 기술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돈을 주고 구걸을 하러 다니고 있다. 이런 창피한 일은, 내 세대에서 끝내주기를,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

이런 수모를 우리 후대에는 절대 대물림 해주지 말자고 입술을 깨물며 다짐했던 내게 가장 간절한 소원은 기술 자립이었다.'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우리의 숨은 능력, 끝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우리의 무한한 능력만이 천연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가진 유일하고도 최고로 값진 자원이 아닐까?

--- 전쟁을 겪고 다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잘 살아 보세'라는 노래가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던 1970년대.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자던 그 시절에, 우리의 포니정과 강명한을 비롯한 기술자들은 하루 25시간, 일주일이 8일 되는 것처럼 전력을 기울여서 국산 최초 독자 모델 포니 자동차를 만들어내는 기적을 만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 세대를 위하여 어떤 세상을 만들고 있을까?

기억하라 포니를 만들 그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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