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평 반의 진땀 나는 야구세계 - 샤우팅과 삑사리를 넘나드는 캐스터의 중계방송 분투기 일하는 사람 7
한명재 지음 / 문학수첩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153년 역사의 MLB 와 40살 KBO

기억조차 희미한 고등학교 시절에, 공부보다는 미국 프로야구 이야기를 늘어놓던 친구가 있었다. 한참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도입되어 열광하던 시절이었지만, 아무래도 미 프로야구는 미군 방송(AFKN)을 통해서나 볼 수 있었던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남의 나라 프로야구 이야기로 열변을 토하더 그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 프로야구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했던 박철순 선수가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 기적같은 22연승을 거두는 것을 지켜보면서, 미국 프로야구 MLB(Major League Baseball)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1982년 시작한 우리나라 프로야구 KBO(Korea Baseball Organization) 리그( league)는 40년대 청년이 되었는데, 1869년 신시내티 레드 스타킹스의 창단으로 시작한 MLB 리그는 153살로 이미 저 세상 나이가 되었는데 여전히 월드시리즈 운운하면서 불로장생할 기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프로야구의 MLB의 마지막 B가 야구(Baseball)인데 비해서, 우리나라는 마지막 O가 위원회(Organization)로 끝난다는 점도 색다르다. 1936년 시작된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일본은 Nippon Professional Baseball 라고 명칭을 붙였다. 개명이 어렵지 않은 요즈음 우리나라 프로야구도 위원회라는 명칭을 없애는 것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야구의 중심은 위원회가 아니라 야구가 아닐까?

* 67년 야구중계 빈 스컬리Vin Scully, 그리고 25년 야구 캐스터 한명재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 시작이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말이 있다. 그 만큼 야구경기는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기분이 좋고, 다 이긴 경기를 놓치고 그날 기분이 엉망인 것은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인 것 같다. 한 순간도 놓치기 힘든 프로야구를 67년 동안 중계한 전설적인 인물 빈 스컬리는 오로지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의 전담 중계 캐스커이다. 빈 스컬리가 오프닝 인사 이후 본격적인 야구 경기에 들어가기 전에 하는 멘트, "어디에 계시든 오늘 하루 즐거우셨기를 바랍니다." 야구 중계도 67년을 계속하면 이미 철학자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 같다.

안타 제조기로 불렸던 고 장효조 선수를 기억하면서, 2011년 삼성 라이온즈 우승 당시 "보고 계십니까? 들리십니까? 당신이 꿈꿔온 순간, 2011년 챔피언 삼성 라이온즈입니다."라는 유명한 멘트를 날렸던 25년 경력의 한명재 캐스터는, 2017년 7월 5일 KIA 대 SK의 역대급 명승부에서 12대 1로 앞서던 SK가 KIA에게 15-12로 역전을 당하다가, 8회말에 극적인 안타로 15-14까지 따라붙는 상황에서

"홈에서 세이프입니다. 이제는 한 점차 15-14!"(우아 징그럽다, 이걸 따라가네.)

"애새끼가......(정적) 에스케이가(뭐라고 한 거야? 아무도 못 들었겠지? 설마 욕으로야 들렸겠어?) 따라가고 있습니다.(경기는 가장 뜨거운 순간인데 왜 나는 머리가 하얘지지?)" 한국의 빈 스컬리 한명재 야구 캐스터는 일생일대 최고의 사고를 쳤고, 이후 SK의 별칭 중 하나가 '애새끼'라고 한다. 다행히 SK 야구단이 2021년에 SSG로 인수되면서 마음의 짐을 덜었다는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풀어놓는 것이 이 책의 최대 장점이다. SK와 KIA팬이 아닌 까닭에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 FA(Free Agent) 대박을 꿈꾸지만

- 연말이 되면 프로야구 선수들의 계약소식으로 마음이 부풀어오른다. 2021년 FA최대어 나성범 선수는 기아와 6년 150억 원에 계약하고, 구자욱 선수는 삼성과 5년 120억 원에 계약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이런 선수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20년 가까이를 매 순간 야구에 올인한 대부분의 선수는 3-5천만 원 사이의 연봉을 평균적으로 7년 정도를 받고 야구선수가 아닌 다른 인생을 살아야만 한다는 현실은, 부익분 빈익빈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우리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씁쓸하다.

- 두 평 반의 진땀 나는 야구세계

'추추트레인'으로 유명한 추신수 선수가 국내 프로야구에 복귀한 초기, 열악한 국내 프로야구 구장의 시설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다.

캐스터와 두 명의 해설위원 그리고 중계방송 기록원까지 않아서 최소 세 시간에서 많게는 여섯 시간을 앉아 있는 숨이 턱턱 막히는 두 평 반의 야구 중계석.

"이 일 1년만 하면 여자 친구랑 헤어지고, 2년 하면 친구들이 부르지 않고, 3년 하면 가족들이 벌린다."

팀당 144경기로 총 720경기를 치르는 국내 프로야구 중계를 위해서 야구선수 못지 않게 관련 종사자들도 항상 바쁘다. 야구 중계가 끝나면 기록을 분석하는데 대개 새벽 3시나 되어야 마무리가 된다고 한다.

"아니 이게 보여요? 이것만 써도 방송 다섯 시간은 하겠는데요?"

오프닝 녹화를 마치고 생방송을 기다리고 있던 해설위원이 내 기록지와 노트북 화면을 보고 한마디 한다. 그럼 약간은 어깨에 힘을 넣고 우쭐하게 이야기한다.

"우리 중계방송은 무엇을 쓰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쓰느냐가 더 중요하죠."

* 야구 아무도 모르다.

이제는 고인이 된 전설적인 하일성 해설위원이 남긴 명언이다.

평생을 야구만 해온 선수들이 활약하는 기간은 평균 7년 정도에 연봉도 3-5천만 원 정도라고 하는 현실을 외면하고 프로야구 승패에만 연연하면서, '밥 먹고 야구만 하는 프로 선수들이 저런 공도 못치나, 아니 투수가 어떻게 스트라이크도 못 넣어.'라는 거친 말들을 쏟아냈던 과거를 반성한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권익향상을 위해 선수협의회 구성을 주도했다가, 소속팀에서 방출당하고 어려운 시기를 겪은 당대 최고의 최동원 선수가 생각난다. 아직까지 그런 현실은 변하지 않고 있다. 프로야구 해설위원 출신 사무총장에 이어, 허구연 해설위원이 2022년 3월 25일 KBO 총장에 취임했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KBO 총장에 취임할 날은 언제쯤일까? 그 때가 되면 진땀 나는 야구세계가 살맛 나는 야구세계로 바뀔 수 있을까?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 현실이 변하기를 바란다.

* 어디에 계시든 즐거운 오후 보내시기 바랍니다.

2016년 은퇴를 알리고 마지막 방송에서 팬들에게 보낸 빈 스컬리의 마지막 인사.

"어디에 계시든 즐거운 오후 보내시기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