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살아야 하는가 -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 선 사상가 10인의 대답
미하엘 하우스켈러 지음, 김재경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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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를 거스르는 믿음

아브라함이 늦게 낳은 이삭을 죽이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복종한 사건은 우리의 이해 수준을 넘어선다. 하느님에게 저항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생명보다 소중한 아들을 스스로 죽일 수도 없고, 우리 인생이 처한 상황이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태어났으니 살아야 하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왜 살아야 하는가?

심미적으로 우리는 가능한 것을 기대한다. 윤리적으로 우리는 영원한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종교적으로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기대한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무한히 포기했다. 그러고 나서 부조리의 힘으로 모든 것을 돌려받았다." 모든 것을 포기한 아브라함과 모든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우리. 그런데 모든 것을 놓치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 나뭇가지에 달려 있는 꿀 두 방울

우물 바닥에 용 한 마리가 입을 벌린 채 먹어치우려고 기다리는 상황에서, 나뭇가지에 매달린 여행자의 유일한 위안은 나뭇가지에 달려 있는 꿀 두 방울. 톨스토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죽음이라는 용이 나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려고 여지없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온전히 이해한 채 삶이라는 나무에 매달려 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표현대로 "즐거움을 놓치는 것은 전부를 놓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까? 꿀 두 방울의 유혹은 너무나 강렬하다. 죽음을 잊을 정도로. 그러나 아무리 꿀이 달콤해도 죽음이라는 용을 피할 수 없는 슬픈 운명이다.

* 궁극의 질문

과거의 어느 막연한 순간에 우리는 존재하게 됐고 미래의 어느 막연한 순간에 우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궁극의 질문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대답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

세계에 단 한 번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시는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너무 무겁고 너무 심각해서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또 살아야 한다. 삶과 죽음은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는 그 무엇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너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이 위안이 될 수 있을까? 어렸을 적에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면, 내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이 말할 수 없이 무섭고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감각이 둔해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죽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죽는다는 변함없는 사실 앞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속이고, 죽이기까지 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처럼, 낭비 중에서도 최악의 낭비는 우리가 사랑에 쏟는 시간과 에너지라는 주장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이 피눈물나도록 기적같은 인생에 사랑마저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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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꿈소생 카페를 통해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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