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삽니다
장양숙 지음 / 파지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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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픈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

 기억조차 나지 않는 5-6세의 유년 시절에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었던 장양숙 작가. 군대에서 휴가차 나온 외삼촌을 배웅하다가 군용트럭에 치여 한쪽 다리를 절단하는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을 겪었다. 게다가 불행은 멈추지 않고 외삼촌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까지 발생한다. 일반일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을 작가는 의족을 하고, 남편 역시 목발을 짚는 후천적 1급 장애인을 만나 살아 왔으니 그 어려움은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파온다. 오죽하면 학창시절 아이들이 하는 '병신'이란 말을 들으면서 스무 살이 되면 죽겠다는 생각까지 했을까?


* 모진 운명에 순응해야 하는 삶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고, 시어머니와 갓난 딸아이의 생계가 막막한 상황에서 작가보다 더 몸이 불편한 남편을 대신해서 작가는 남편과 함께 전국의 시장을 떠돌며 보따리 행상을 시작한다. 작가의 고백이다. "넘어지면 안 되는 삶이다. 남편이나 딸아이가 보기에 용감하기만 한 나는 절대로 넘어지면 안 된다. 나도 때로는 쉬고 싶다. 그리고 넘어졌을 때 잡아 줄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하늘은 나보고 주인이 되어라 한다. 다른 이들의 쉼터가 되어라 한다. 내 처지를, 내 운명을 순응해야 했다."


 - '우리 험한 세월 참 잘 살아 냈어. 사업에 실패하고 행상을 하면서, 다시는 행상 때문에 이 길을 들어서는 일이 없도록 기도했다고 했지. 당신도 많이 아팠을 거야. 당신은 차에서 행상을 나간 나를 기다리며 성경책을 읽고 있다가 내가 돌아오면 말씀들을 들려주었잖아. 그 때 참 좋았어.'


* 남의 집 대문으로 망설임 없이 직진

  앞이 보이지 않는 보따리 행상을 접고, 한솔교육 학습지 영업을 시작하면서 작가는 낯선 남의 집 문을 두드려 열어달라고 해야 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흔쾌히 자신이 사는 집의 문을 열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때의 작가는 '어떻게 해서든지 가족을 먹어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문을 두드렸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힘들고 막막하던 첫날 영업에서 우연히 밖에서 놀다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집으로 들어가는 아이를 따라 들어가서 첫 계약을 따내던 날의 감격을 '내 인생의 가장 황홀한 순간'이라고 표현한다. 


* 평범한 삶은 사치라는 삶도 있다. 

  가족을 위해 하루 하루 앞만 보고 달려온 까닭에 회사에서 보내주는 해외여행도 갈 수 있었지만, 회사 내 오해가 갈등도 피할 수 없었고, 갱년기의 어려움도 온 몸으로 겪어내야 했다. 영업직의 특성상 잦은 이직도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나는 아플 새도 없이 살았다. 나까지 무너지면 가정은 깨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위태롭게 지키고 있는 가정이,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이 나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요인이 되었다. 평범한 삶은 사치다' 직원을 혼내고, 비슷한 처지의 직원을 생각하면서 출근을 못하고 지하철 2호선 순환하는 전 노선을 돌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 언제나 부정은 긍정을 몰고 온다.

  작가의 인생 철학이다. 오해도 많고 어려움도 많은 직장생활에서 위기의 순간을 오히려 기회로 생각하는 작가의 긍정마인드는 절박함에서 나온 것이리라. '진짜 실패는 어려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하는 것이 아닐까?'


* 내가 행복해야 주위 사람도 행복하다.

  모진 세상을 앞만 보고 살다보니 어느 순간, 먹고 살기 위해 포기했던 작가의 꿈들이 아쉬움으로 남아 작가를 괴롭혔다. '이렇게 그냥 끝나버리는 것이 인생인가, 삶을 지속한다는 것에 회의가 왔다. 살기가 싫어졌다. 나는 지쳐 있었고 우울했다.내가 우울해하는 것을 알아차린 남편이 내게 "당신만 행복하면 돼"라고 했다. 순간 할 말을 잊었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도 그걸 느끼고 같이 행복해진다고 했다. 


* 좋아하는 글쓰기에 도전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기를 몇 번 반복했다. 나는 글을 못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절망스러웠다. 막상 쓰려고 보니 한 글자도 쓰기 힘들었다. 포기하고 싶었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내 속의 말이 들렸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서 대가도 치르지 않으려는 것은 경솔한 생각이라고 했다. 대가를 호되게 치르고라도, 글을 쓰고 내 책을 세상에 내놓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 것 같았다. 부디 당신이 좋아하는 일,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외치고 싶다. 작가는 드디어 '마음을 삽니다'라는 책을 내어 우리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 작가의 꿈 ; 장애인식개선, 장애인 기술 복지학교 설립

  '인생을 실패하리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가져야만 했던, 인생의 실패를 먼저 안고, 시도해 보지 않은 일을 시작해야 하는 장애인이었다. 그 열등감과 상대적 초라함은 잘못 없이 당하는 사람이라면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할 만큼 억울하다. 죽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미치도록 살고 싶었다. 가장 살고 싶지 않을 때, 실은 가장 살고 싶은 것이다.'


* 남편에게 못다 한 고백

  '우리 천국에 가면 나 한 번만 업어줄 수 있어? 손도 한 번 잡고 걸어 보자. 한 번도 못 해본 것들 많네. 당신이 목발을 짚어서 할 수 없는 것들. 남들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못 해본 것이 많아. 천국 가서 한번 해보고 싶어. 꼭.'


* 삼촌에게 

  나는 이제 세상이 두렵거나 앞날의 공포에 시달리지 않아. 왠지 알아? 세상이 나를 이만큼 데려왔고, 삶이 나를 이만큼 키워 줬기 때문이야. 삼촌도 한 몫을 해 준 거지. 다리 하나 없는 것이 나에게 무슨 큰 일이라고......

  내가 지금 치열하게 사는 이유는 삼촌의 몫까지 살아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기도 해. 지켜봐 줘. 살아 보니 고난은 이겨 내는 것이 아니더라고. 견디는 것이고, 견디다 보니 즐기기까지 되더라고. 


* 작가의 신념

  '힘에 겨워 주저앉아 버리고 싶을 때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나를 있게 한 신이 가지 못할 길을 펼쳐 놓고 가라하지는 않을 거란 신념. 그것을 생각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가리라. 쉬고 싶을 때는 쉴 것이고 달려야 할 때는 절뚝이는 걸음이지만 달려갈 것이다.


--- 읽는 내내 마음이 아려왔다. 한 순간의 고통이 아니라 일평생을 다리 하나 없는 장애인으로 살아가면서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한다니. 그래도 그 와중에 쌀이 떨어졌을 때 용돈으로 받은 꼬깃꼬깃한 5만원을 건네준 교회 할머니 권사님, 행상에서 돌아온 아들과 며느리를 위해 없는 형편에 소고기 배춧국을 끊여놓은 시어머니, 영업을 할 때 쉴 곳이 없어서 찾아간 미용실에서 여러 건의 계약을 해주고 편히 쉬라고 위로를 건네준 미용실 원장님 등 세상을 살아갈 힘을 준 이웃들의 존재가 참 감사하게 느껴졌다.  


 

작가를 존재하게 한 신께서 작가가 견디기 힘든 시련을 온 몸과 마음으로 견디어 낸 것처럼, 남은 생애는 작가가 좋아하는 글도 마음껏 쓰면서 작가의 꿈인 '장애인식개선'과 '장애인 기술 복지학교 설립'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으면 좋겠다. 우리 중에서 누군가 천사가 되어 그 꿈에 동참한다면 더욱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꿈꾸어 본다. 언제나 부정은 긍정을 몰고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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