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크리스마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3
쥬느비에브 브리작 지음, 조현실 옮김 / 열림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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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작가 쥬느비에브 브리삭(Genevieve Brisac)의 1996년작 '엄마의 크리스마스'는 제목부터 낯설다. 크리스마스는 분명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엄마의 크리스마스'라니 무언가 어색하다. 우리식으로 이야기하면 '엄마의 추석'이나 '엄마의 설날' 같지 않을까?

엄마 누크와 아들 으제니오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벌써부터 실랑이를 벌인다.


"우리 어디 갈 거야? 말 좀 해봐. 설마 우리 둘이서만 멀뚱멀뚱 보내는 건 아니겠지? 다른 사람들한텐 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데, 우린 도대체 어쩔 셈이야?"

"크리스마스 걱정은 마. 내가 다 준비해놨으니까. 깜짝 놀라게 해줄게. 너도 좋아할 거야."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픔을 주지 않는 엄마. 한없이 자애롭기만 한 엄마, 완벽한 엄마는 오로지 죽은 엄마밖엔 없을 거라고. 이제 크리스마스가 이틀밖에 안 남았군. 이 난국을 또 어떻게 넘긴다지?

사람들은 아픈 이들, 이미 죽은 이들 그리고 마지막 몸단장을 받는 이들 말고는 누구에게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내 아이로 태어난 게 행운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이미 저질러진 걸 어떡하니!"

나도 행복해질 가능성이 있긴 한가...... 내 영혼을 향해 질문을 던지면서 나는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자, 이제 뭘 먹어야 하지?" 으제니오가 또 시작했다.

- 굳이 크리스마스가 아니어도 끝임없이 엄마들을 압박하는 질문 아닐까?

모든 게 다 끝났을 때 자정이었다. 나는 만족했고 즐거웠다. 내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 아이가 물었다. "언제 와, 손님들은?" "글쎄, 이 한밤중에 올지 모르겠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미처 그 생각을 못 했던 것이다. 손님들 말이다. 갑자기 우리의 꿈이 와장창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완전히 망쳤다. 차라리 캠핑이나 갈걸." 아이는 내게 뽀뽀도 해주지 않고 발을 질질 끌며 방을 나가버렸다.

"크리스마스는 아무래도 잘못 주고받은 선물들의 창고인 것 같아."

이건 우리가 꿈꿨던 모습이 전혀 아니다. 생각하니 쓴웃음이 나왔다. 돌이킬 수 없이 멀어져버린 우리의 과거 속으로 빠져드니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는 건 무슨 까닭일까. 추억 때문에 울어야 할 것 같은 순간에도, 오히려 추억이 마음을 진정시켜 준다는 건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는 내 손을 잡은 채 잠이 들었다. '아들아, 네가 겁먹지 않도록 내가 끝까지 옆에 있어주긴 하겠지만, 우리 손가락이 떨어지면 우리도 헤어질 것만 같구나.'

"어쩜 너희 식구가 같이 만나서 올 수 있니! 원래 네 남편이 점심 먹으러 오기로 했거든. 널 놀래주려고, 너희 두 사람 오랫동안 못 만났잖아. 그러고 참, 너도 알겠지만, 정신과 의사랑 재혼한다잖니. 자기 아들한테 진짜 가정이 어떤 건지 알게 해주고 싶대. 그 이야기를 나한테 와서 하는데 나도 그게 모두에게 좋은 해결책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으제니오, 선택권은 너한테 있어, 네가 선택하면 돼.' 그러니까 으제니오가 곧 네 이야기를 꺼내더군. '그럼 엄마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내 아들의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네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거니?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현실에선 기쁨도 결국은 슬픔을 낳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으로부터 견딜 수 없는 불안이 생겨난다. 우리 집은 어떻게 되는 걸까?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끔 앞이 안 보일 때가 있다.


- 아들 으제니오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한다고 느끼면서도 때로는 세상에 엄마와 아들 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막막함. 그런데 막상 아들 으제니오가 떠날지도 모른다고 하니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은 엄마 누크의 삶.

불현듯 영화 올가미가 생각났다. 프랑스나 우리나라나 자녀가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지만 막상 그 짐을 벗어버리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은 무엇 때문일까? 사랑하는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존재마저 잃어버린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의 고단한 삶을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엄마는 동물들 중에 뭐가 제일 좋아?"
길을 걸어가면서 으제니오가 물었다. 크리스마스 전전날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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