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람은 살지 - 교유서가 소설
김종광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종광 작가의 ‘산 사람은 살지’는 아버지께서 몇 해 전에 작고하시고 홀로 남은 어머니를 위해서 쓴, ‘당신이 떠나기 전에’, ‘육칠월 해로가’, ‘팔구월, 고추 따다가’, ‘시월 다사다난’, ‘동지섣달 소 보듯’, ‘정이월에 떠나는’, ‘삼사월 코로나’, ‘오월, 풀도 살아보겠다고’라는 작품으로 구성된 8편의 연작소설이다.

당신이 떠나기 전에

어머니 ‘이기분(李基粉)’은 이름 모를 병을 앓으면서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그녀는 일기장에 ‘자식들, 새엄마 손에 구박받을까 참고 또 참았지요. 내겐 너무도 힘든 젊은 시절이었지요. 가슴에 멍이 든 내 지난 시절 하늘이나 알겠지요’라고 힘들었던 지난 세월을 토로한다. 그런 세월을 남편과 함께 버티면서 아들 둘, 딸 하나를 키워서 시집, 장가를 보냈는데, 남편 동창이 목구멍에 뭔가 있다면서 불편해하더니 식도암 3기 판정을 받는다. 탄광을 다니면서 농사를 짓던 남편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와중에도 모내기를 하는 자식들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다.

육칠월 해로가

일찍 부모를 잃은 남편 ‘김동창’은 중학교 졸업 후, 자기가 벌어 사는 고달픈 인생살이를 살았다. 스물아홉에 스물두 살인 ‘기분’을 만난 남편은 기분의 일기장에 이렇게 표현된다. ‘단 하루도 집을 마음놓고 떠나지 못하는 우리 남편, 병원과 한의원 문턱을 셀 수 없이 드나드는 아내를 고치느라 돈도 모으지를 못했지요’ 아무 것도 못 먹고 넋이 나간 것처럼 누워만 있던 남편은 아침나절에 예초기를 돌리고, 점심 때가 지나서 경로당 청소를 하라고 재촉을 해서 ‘기분’을 내보내고 유언도 못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지만, 남편은 홀로 남은 ‘기분’을 위해서 창고 뒤주에 돈뭉치를 남겨두었다.

팔구월, 고추 따다가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기분’은 아픈 몸을 이끌고 마늘도 심고 참깨밭도 매고 고추도 따고 양파도 심으면서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다. 자식들은 홀로 된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자주 내려와서 농사일을 돕지만, 동반자였고 친구였고 뒷배였고 지킴이였고 그 모든 것이었으며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었고 말을 해주는 사람이었던 남편의 빈자리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시월 다사다난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것인지 ‘기분’은 자식들 걱정하면서 먹을 것도 보내고, 여기저기 아픈 몸 때문에 병원에도 다니고, 오래된 집을 여기저기 수리하고, 벼수확도 하고 동네 대소사에도 마음을 쓰면서 살아가는 다사다난한 일상이지만 건강한 날은 다 가고 아플 날만 남았다.

동지섣달 소 보듯

‘기분’은 남편 총각시절 일기장을 보면서 지난 시절도 회상하고, 내년을 위해서 김장도 하고 여전히 병원을 드나들면서도 남편 무덤 주변의 은행나무와 두충나무를 포클레인을 불러 치웠다. 기분이 회상하는 남편은 도무지 행복한 마음을 가져보긴 힘든 인생이었다. 평생 다 합쳐 행복했던 날이 30일도 안 될걸. 기분도 마찬가지였다. 행복이란 게 있기는 한 걸까?

정이월에 떠나는

전 조합장, 심청댁, 전우치씨 등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등진다. ‘기분’은 90년대 3천만 원을 빌려 가고 갚지 않았던 남동생의 칠순을 맞아 복잡한 심사를 느끼기도 하고, 남편과 나란히 앉아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극을 보았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은 게 아닌데, 나도 하고 싶은 일, 꿈이 있던 젊음이 있었다. 늙고 병들고 망가진 모습, 나 자신도 싫다.’

삼사월 코로나

코로나가 전국을 휩쓰는 시간 자식들 쌀 떨어질까 걱정인 ‘기분’에게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동서들이 꿈에 자주 찾아온다. 코로나가 무섭지만 여전히 못자리도 하고 감자도 심고 밭농사도 준비한다. 가까이에 있는 작은아들과 동네에서 누구보다 믿고 의지하는 박사조카의 도움을 받으면서 수도공사와 전기공사까지 마무리한다. ‘7년 전 그렇게 끌탕했지만 어쨌든 7년이나 더 살았고 73세를 살고 있다. 남편 먼저 보내고 잘살고 있다.’

오월, 풀도 살아보겠다고

이제 남편 형제 6남 2녀가 모두 저세상 사람이 되었고, 배우자 중에서도 살아있는 사람은 요양병원 형님과 ‘기분’ 뿐이다. 기분은 남편 무덤의 풀을 뽑으면서 풀들도 저리 악착을 떠는데 산 사람이 못 살겠나, 살 것이다. 힘껏 살 것이라고 다짐한다.


시골에서 평생 살아오신 부모님의 삶을, 단편적인 어머니의 일기를 통해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형식으로, 복원해 낸 작가의 효심과 역량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평생 다 합쳐 행복했던 날이 30일도 안 될 것 같다는 시절을 살아내셨던 부모님 세대의 신산했던 삶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교유서가의 신작 '산 사람은 살지' 사전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다.

내게 너무도 힘든 시절이었지요. 가슴에 멍이 든 내 지난 시절 하늘이나 알겠지요. - P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