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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프란츠 카프카 중단편집 Mr. Know 세계문학 43
프란츠 카프카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뚜렷한 불안과 은밀한 위로 

-어느 너의 이야기


 뚜-렷한 절망과 은밀한 위로-. 너는 입술을 달싹인다. 어디선가 보았던 문장이다. 그래, 올리버 색스의 <편두통>이라는 책이었지. 카프카의 문장은 너에게 그렇게 다가온다. 삶은 네 통제 아래에 있지 않다고, 너는 영원히 알 수 없다고, 너무나 분명하게 웅웅 울어댄다. 괴로워하는 사람의 모습은, 혹은 자신이 괴로운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의 모습은 너를 고통스럽게, 슬프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가오는 이기적인 위로가 있다. 세상에 괴로운 사람이 너 하나뿐은 아니야. 사람의 괴로움, 외로움, 그를 처절하게 녹여 쓴 글을 읽고 느끼는 위로. 세상 일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그저 무력한 것, 그러나 너만 그런 것이 아니야, 라는 것에서 너는 은밀한 위안을 찾는다. 다른 사람에게서 괴로움을 읽고 위로를 받다니, 너는 참 잔인하다고 생각하면서. 


 어느 날, 너는 책을 펼친다. 이미 몸이, 좀, 아프다. 수면 부족에, 몸살 감기에, 몸의 어딘가는 고장이 나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지끈지끈 아려 오는 머리를 붙잡고 <성>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외로움이 있다. 멀고 먼 낯선 동네에 도착한 이방인은 잔뜩 신경이 곤두서 있다. 피로와 어쩔 수 없는 경계심. 누군가 친절한 말을 건네준다면 훨씬 기분이 나아지련만. 그러나 아무도 이방인은 환영하지 않는다. 들여다 보는-기분 나쁜 관심과 불편한 눈초리, 퉁명스러운 전화통화 속에서 너는 길을 잃는다. 영문을 모른다. 초대 받아서 온 사람이 응당 기대할 만한 따뜻한 환영—환영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조심스러운 관심, 올바른 절차, 천천히-분명하게 섞여 들어가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희게 눈을 치뜨고 바라보는 사람들과 이상한 마을과 이상한 성과 흰 눈들은 너를 거부한다. 막막함 속에서 넌, 이게 뭐지, 막연한 피로에 휩싸인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잃지 않는다. 기대만큼은 되지 않지만 뭐라도 되는 것 같으니까. 처음이니까, 초반이니까, 아직 낯설 수도 있지. 그렇지? 그러나 밀려오는 짙은 피로감… 아주 조금 읽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K의 운명은, 그래, 법 앞의 시골 남자와 같이 될 것이라고, 그는 영원히 영문도 모른 채-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영원히 이방인으로 죽을 것 같다는, 절망에 휩싸인다. 아픈 날 읽기에는 좋은 책이 아니다. 몇 마디 달콤한 말로 너를 달래 주는 그런 책은 아니야. 나약한 너는 책을 덮는다. 푸른 잠이 너를 덮는다.


 다른 날, 너는 국도 위의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우리로 바뀐다. 마구 달리고, 소리치고, 뛰어오른다. 밤이 되면 아이들은 돌아가지만 너는 돌아가지 않는다. “바보가 어떻게 피곤해지겠어!” 너는 마꼰도의 불면과 기억상실을 생각한다. 쾅. 너는 다른 밤거리로 나간다. 너는 밝고 환한 집에서, “그림자와 같은 존재로 변하는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려고 한다. 쾅. 너는 짓눌리고 있다. 너는 “자신이 사라져 없어질 것 같은 느낌” 속에서 “자신을 무거운 덩어리라 여기고 이 모든 것을 참고 견디”려고 한다. 절망과 무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무슨 결심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을 실천하는 일은 얼마나 길고 고통스러운지? 쾅. 너는 다른 거리로 나간다. 이미 날은 저물었다. 어찌하여 아침은 오지 않는지! 긴긴 밤들과 저녁만 되풀이된다. 네 뒤에 한 남자가 따라온다. 너는 불안하다. 아무도 없는 거리보다 낯선 이와 함께하는 거리가 더욱 두려운 것은 너의 성품이 예민해서만은 아니다. 너는 정말로 불안한 말들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너의 예민함은 오히려 <관찰>하고 있는 시선을 어렴풋이 느낀다. 쾅. 또 밤이다. 너는 포기의 이유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무슨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혹은 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 오면 너는 불안해진다. 달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너는 온갖 상상을 하지만 행여나 나약한 네 살덩이가 다칠까, 긁힐까 두려워하며 관계맺기를 피한다. 쾅. 사실 너는 불안한 것이다. 사람을 이토록 섬세하게 묘사하고 읽어내는 너는 사실 잘 서 있지 못한다. 쾅. 너는 이미 지쳤다. 그러나 세상과 멀리 떨어지고 싶지는 않다. 너무 궁금하고, 어쩔 수 없이 지독하게, 사랑하기 때문에. 너는 세상으로 이끌려 들어간다. 쾅. 있음과 없음. 인디언은 모든 것을 비워내는 사람인가, 그러면 그를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없는 것을 버릴 수 있을까. 쾅. “그러나 보라. 그것마저 겉으로 보기에 그럴 뿐이다.”. 쾅. 


 너는 밀레나 B.를 위한 관찰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으슬한 느낌에 오소소 돋아난 것들을 털어 버린다. 뒤로 갈수록 점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너는 네가 알 수 없는 것들에서 불안함을 느낀다. 아무리 알고 싶어도, 손을 뻗어 보아도 세상은 안개처럼 뿌옇다. 알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 괜한 희망은 고문일 뿐이다. - 너는 언제 어디서, 영문도 모른 채 당한다-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견뎌낸다. ‘뚜렷한 불안과 은밀한 위로’. 너는 이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파악할 수 없는 세상은 너를 불안하게 하고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은 너를 절망하게 한다. 카프카는 너에게 불투명한 세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너는 그의 문장에서 사무치는 사랑을 찾는다. 바닥 없는 세상에서 자신마저 흐릿한데, “그녀가 어떻게 자신에 대해 놀라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그와 같은 사실에 대해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물으며 잿빛 세상의 사람을 그토록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에서 어쩔 수 없는 이끌림을 찾는다. 얼마나 닳고 닳도록 보았으면. 그렇게 꾹꾹 눌러 써서? 너는 그 처절한 사랑이, 세상을 향한 너의 이끌림과 닿아 있어- 위로를 받는다. 너는 울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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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의 내용은 본문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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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03.


미루어 놓았던 연말정산을 연초에나 하게 되었다. 2016년, 한 권 한 권 더해가던 '읽고 싶은 글 목록'은 이렇게나 길어졌는데, 정작 읽었던 책이 얼마나 되는지 표시해 보니 삼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나름대로 바빴다고, 그리고 읽고 싶은 책이 아니더라도 읽어야만 했던 책도 있다고 변명하더라도 사실 자랑스러운 성적은 아니다. 게다가 읽은 책 중에도 본격적으로 감상을 남긴 것은 몇 되지 않는다. 물론 저 책을 모두 읽겠다는 욕심은 아니었지만, 2017년은 좀 더 분발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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