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 Wunderbaren Jahre. Prosa (Paperback)
Kunze, Reiner / Fisher / 199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책 목록에는 이 책이 나와있지 않아 리뷰상품은 독일어 원문을 선택했지만, 사실 내 짧은 독일어 실력으론 원문은 어림도 없다. 그래서 빌려다 읽었던 번역본 정보를 "http://chon-young-ae.com/?mid=books&document_srl=387"에서 찾아 가져왔다.

 전영애 선생님 번역을 두고 누군가는 투박하다 하지만, 독일어 원문의 운율을 최대한 살리고자 노력한 점이 또 좋다. 

 사실 스스로가 아직 시에 대한 감상이나 평가를 내릴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을 아끼고자 한다. 그저 되새기고 싶은 시들을 남겨 두고자 한다.    

 

 

 

 

[유인물]

 "만약 가정한다면 말예요."라고 그애가 말했다. "아빠가 지금 유인물을 하나 만들 수 있다고 말예요. 그렇다면 거기다 뭐라고 쓰실 거예요?"
 내 두 눈썹이 한가운데로 모이니까 그애는 덧붙였다. "무슨 멍청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그저 그렇게요. 재미있잖아요."
 "쓴다고? 아무것도 안 쓰겠다."라고 내가 말했다. "유인물에 써서 사람들 가운데 돌려져야 할 건 아마 따로 있을 거다."
 "그럼 그건 무엇일까요?"
 "거기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생각을 좀 해봐야 될 것 같구나."
 "그럼 생각 좀 해보세요."라고 그애가 말했다.
 ......

> 유인물 제 1호
그리고 모든 것이 지나가면---그 모든 것이 저절로 멈춰지면......무리의 가운데 등장하여......집단 속에서 깃발을 흔드는 희열......그 다음에는 한 사람이 오리라, 그 사람은 마침 우뢰 같은 발견을 할지니 : 그는 외톨이 인간을 발견하리라. 그는 말할 것이다. 인간이라 불리우는 유기체 하나가 있으니 이 자가 중요하도다. 이 인간이 행복한가 아닌가 그것이 문제이다. 그가 자유롭다는 것, 그것이 목표이다. 집단은 무엇인가 부차적인 것이다......국가는 무엇인가 부차적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국가 만세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인간 만세!이다 / 쿠르트 투홀스키

> 유인물 제 2호
제 의견으로는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가치를 부여해야 하겠습니다. 즉 우리는......우리들의 가장 귀중한 자산인 젊은 사람들을, 우리 인간 전반을, 사회적 기구의 손상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들의 언어만 뒤죽박죽의 외국어나부랑이로 변하거나 변화될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자랄 때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 자명했었던 많은 개념들이 이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여유라는 개념입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하여 산보를 가야겠다는 한가로움이라는 개념. 자신을 닫거나 벤치에 따로 떨어져 앉아 무엇인가를 읽을 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여유라는 개념이지요. 읽되 그것이 가르침이 되지 않고도, 그것이 그 어떤 의무사항과 일치되느냐 아니냐를 질문받지 않고도요. ......그러니까 제 생각으로는......개개인에 대한 지나친 요구,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공동생활 속에서 자유며 여유를 면도하듯 싹 깎아내는 데 대하여 하나의 경고가 발해져야 하겠습니다. ......휴머니즘과 경직된 조직은 늘 상호모순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매우 큰 정신적 잠재력 하나를 남겨준 엄격한 제수잇교단조차도 그들의 조직에서 우리처럼 긴장되지는 않았었습니다....... / 아놀드 츠봐이크 1954년 드레스덴

>유인물 제 3호
 우리는......우리가 무엇인가가 '철석같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곳에서는 우리가 미망에 빠져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통찰에 순응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우리들 마음속의 그런 핵심적인 오류들을 있을 수 있는 일로 인정하는 겸손에, 인류가 선입견이라는 고통에서 해방되느냐 아니면 계속 그것에 시달리며 여위어 가느냐가 달려 있다. 회복의 기회는, 우리가 유년시절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갈 준비를 받을 때 경험했던 인내와 다정함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알렉산더 미춰얼리히

>유인물 제 4호
- 특히 청춘을 사과나무 밑에 누워서 보내려는 이상을 가진 젊은 사람들을 위하여
 날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나의 외면적 삶과 내적인 삶이 지금 살고 있고 또한 이미 죽은 인간들이 해 놓은 일에 바탕을 두고 있으니, 나는 내가 받았으며 또한 지금 받고 있는 것과 같은 정도로 주기 위하여 긴장된 노력을 해야 한다고. / 알버트 아인슈타인

> 유인물 제 5호
- 특히 참을성 없는 젊은 사람을 위하여
 무작정 들고 일어남으로써 혁명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해결을 가져옴으로써만 혁명을 하는 것이다. / 르 꼬르뷔지에

 

 

 

 

 

[장례]

   때는 소리없는 장례식의 시대이다. (한 프라하 시민)

 "장례식은 오늘 17시에 있습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은 수화기를 내려 놓아 버렸다. 장례식? 누구 장례식? 누구에게 전화해봐야 할지 궁리를 해본다. 그리하여 알게 되었다. A가 죽었다. 모톨(프라하 서쪽 끝지역) 화장장.
 모톨에 사는 사람들은 16시에 길을 떠났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A같은 사람이 죽으면 모두가 같은 시간에 거리를 가는 것이 권할 만한 일이 못된다는 것을. 경찰이 오해할 수도 있으므로. 하지만 도시 다른 끝에 사는 사람들한테는 모톨로 가는 것이 한결 힘이 들어서, 늦게야 도착할 것이다.
 경찰이 거리를 막고 화장터로 가려는 모든 차량을 교외며 인근 마을을 거쳐 우회하도록 유도하였다.
 B가 이야기할 것이다. 그는 5분을 허락받았다. B가 말했다. 좋습니다, 그거면 충분하지요. 화장터 앞에서 사람들은 그에게 말했다. 1분만 하시오! B가 말했다. 좋습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관 곁에서 그는 말했다. "A가 죽었습니다. 여러분 자리에서 좀 일어나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는 "고맙습니다."했다. 정확하게 1분이었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다. 유족들이 화장터를 나섰을 때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묘지 조명을 켜주지 않았던 것이다. 길은 산을 따라 아래쪽으로 나 있었고, 군데군데 계단이 한두개씩 나타났다. 그러나 그 길은 사람으로 가장자리가 둘러져 있었다. 계단이 나타날 때마다 한 계단 높이쯤 서있던 사람이 "계단입니다"라고 말했다. 유족 아무도 쓰러지지 않게끔.

 

 

 

[사격 명령]

"아버지한테 가요, 라면서 오토바이를 타고 나간 아이가 대체 왜 안 돌아오는 걸까, 대체 어디를 갔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점점 불안해졌어요. 그때 그들이 와서 말했지요. P시로 가야 된다고요. 그애는 국경을 넘으려 했던 겁니다. 그들이 잽싸게 잡았구요. 그래서 저는 다음 기차로 P시로 갔지요. 그 친구 벌써 일어났습니다, 라고 그들이 말하더군요. 내가 더 이상 자제를 못하여 눈물을 흘리자 그들은 말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부인. 아드님 게르하르트는 살아 있습니다. 식사도 잘 하고요, 지금은 자고 있습니다. 군복무 기간중에 이런 일이 있었더라면 더 고약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들고 마악 전문기능공 일을 시작하려는 참이었는데요, 월요일에 작업장에 투입되게 되어 있었지요...... 그후 월요일 오후 이곳의 그 사람들이 와서 저더러 화요일에 P시로 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케이크를 굽고, 장을 본 후, 먹을 것을 싸가지고 갔지요. 그랬더니 P시에서 그들이 이러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느냐, 우리 쪽 사람들이 정말 아무 말 않더냐. 그 친구 목을 맸습니다, 팬티로요. 그런데 어머니에게 몇 마디 쓸 말이 있으면 쓰라고 쪽지 하나를 주었는데 그애가 거절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자기 어머니한테 그럴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그 애를 보지도 못했습니다. 감옥에서 치르는 장례식 전에나 잠깐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내 줄 수 있는 것은 유골항아리뿐이었습니다." 

 

[같은 반 친구]
그애 생각으로는 대중들이, 그러니까 자기 친구들이, 자기가 일본에서 받은 천연색 엽서를 꼭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밤의 도쿄의 상점거리를 담은 엽서였다. 그애는 그 엽서를 학교로 가지고 갔고, 친구들은 이 이국적인 것을 보면서 이빨 사이에서 작은 풍선껌을 터뜨렸다.
쉬는 시간에 담임선생님이 그애에게 벌을 내렸다. 동급생 하나가 선생님한테 고자질을 했던 것이다. 그애가 학교지역내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위한 선동을 자행하고 있다고.

[떨쳐버릴 모래주머니]
물론 그애는 언젠가 친구들과 어울려 집단숙소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누구나 자기 재미있는 것을 할 것이고, 누구나 자기 재미있는 일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함께 할 것이다. 그애를 위하여 다른 사람들이 함께 빵을 자를 것이고(그곳에 빵 자르는 기계가 없는 경우), 함께 설겆이를 할 것이고(그곳에 설겆이 기계가 없는 경우), 아침이면 나선형으로 비비꼬인 침대 시트는 대충 어느 정도 사각형의 형태를 되찾을 것이다(그곳에서 사람들이 이부자리 정돈 같은 것에 가치를 두는 경우).
그러니 무엇하러 매사를 반듯반듯 마무리짓기를 익혀 자기 것으로 만들 것이며, 나중에는 다 쓸모없을 자기반성을 억지로 아이에게 두드려 박아 넣겠는가?

[동요의 근거]
E시에서, 그애 말이, 한 학생이 목을 맸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여러 학급의 소년들이 검정 완장을 찼는데 학교 지도부에서는, 완장을 두른다는 것은 반대태도 표명으로 평가될 것이라는 점을 학생들이 간파하게끔 만들었다. 그 학생은 청소년교구 회원이었으며 십자가를 지고 죽은 두상과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목의 쪽지를 남겼다. 졸업시험을 앞둔 학생들이 제일 먼저 완장을 떼어 버렸다. 졸업시험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기 때문에.
죽은 아이 학급이 아닌 다른 학생들 몇몇에게도 장례식 참석 허가가 내려졌다. 그러나 교장선생님 지시로 선생님들은 내린 허가를 도로 취소해야만 했다. 목사님이 교장선생님의 마음을 돌려놓는데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에 가입한 사람들은 죽은 학생에 대한 대화를 저지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장례식날, 수업시간 동안에는 학생감시체제가 도입되었고, 학교 교문은 잠겨져 있었다고 한다.

[중간 결산]
그애는 하느님이 그 부모에게 내려치는 주먹이다. 그러나 울 수 있는 주먹이다.
이 말도 안되는 은유와 더불어 살아가기.

[후방에서]
8월 22일 아침. 나의 아내는 하마터면 넘어질 뻐하였다. 현관문 앞에 글라디올러스 다발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이웃에 나이 지긋한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이따금씩 꽃을 갖다 주곤 했었다. "아마도 어제 저녁 그분들이 오셨다가 방해를 하지 않으려고 두고 가셨나봐요."라고 아내가 말했다.
오후에 아내는 꽃다발 셋을 안고 돌아왔다. 그러면서 "이건 일부일 뿐이에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꽃다발들은 아내가 일하고 있는 병원에서 들고 온 것으로 아내를 위하여 가져온 것들이었다. 아내 말고는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내가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었던 것이다.
(1968년 8월 20일 밤. 불가리아, 동독, 폴란드, 헝가리 및 소련군이 체코에 진입했음. 역자 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